[송혁기의 책상물림]한국어 교육과 한자 교육
은은한 장미 향기처럼 소박하면서 매력적인 도시, 불가리아 소피아에 와 있다. 30년 역사의 소피아대학 한국학과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는 귀한 기회를 얻어서, 삼만리 길도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어를 배워 K팝을 부르는 것이 관심사인 학생들에게 고전문학을 진지하게 소개하는 일이 가능할지 걱정이었는데, 끝까지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는 모습이 참 고맙고 놀라웠다. 시대와 언어를 넘어 공감을 주는 문학의 힘을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소피아대학과 세종학당의 교원들이 참여한 간담회 자리에서 지원이 더 필요한 부분을 묻자, 현지인 교원이 꺼내는 첫마디가 한자 교육에 대한 수요였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어휘력이 중요해지는데, 한자를 모르면 무작정 암기할 수밖에 없어 학생들이 힘들어한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교원들도 한국어의 정확한 구사를 위한 한자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입을 모았다. 삼만리 너머 불가리아에서 예기치 않게 한자 교육 이야기를 들으며, 출국 전 읽은 한 학생의 답안지가 떠올랐다.
성실히 수업 듣고 중간고사도 괜찮게 치른 학생인데, 기말고사 답안지에는 장문의 편지가 쓰여 있었다.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갔을 때 자기 나라의 문화를 설명하며 자부심을 보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문화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 경험으로 시작해서, 이런 말이 이어졌다. “눈앞에 놓인 간단한 한자조차 프랑스어보다 더 어려운 외계어로 보였습니다. 한국의 교육과정을 나름대로 충실히 이수했는데…. 왜 저는 한국인으로 태어나 외국어만 공부하며 자랐을까요?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뿌리인 한문에 까막눈인 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답안지에 대한 답장 격의 e메일을 보냈다. 그 부끄러움은 학생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부디 너무 실망하거나 자책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는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데, 모국어의 한 축인 한자를 전혀 배우지 않고도 우수한 성적으로 공교육을 이수할 수 있는 현실이 과연 정상일까? 소피아의 장미 향기마저 문득 씁쓸하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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