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국가인권위원장 인선은 국격의 문제다
인권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발견·갱신·확장되는 개념이다. 국가인권위는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하고자 만들어진 독립기구다. 그런데 최근 인권위의 존재 이유를 훼손하는 일들이 이충상, 김용원 두 인권위원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상임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충상 위원은 국민의힘이 추천하고, 김용원 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했다.
지난 3월11일 인권위 전원위원회 회의를 방청하며 이충상, 김용원 두 위원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날 전원위원회 회의에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 제출할 독립보고서 심의안건이 상정됐다. 사실 이 안건은 2월, 제4차 전원위에 상정됐지만 이충상, 김용원 두 위원의 의도적인 회의 지연과 막말로 파행되면서 논의하지 못해 재상정된 것이다. 그런데 두 위원은 또 안건과 상관없는 억지 주장으로 시간을 지연했고 회의 시작 4시간 이상 지난 후에야 안건심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방청인들은 회의장에 함께 있는 이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 없는 두 위원의 회의 진행에 경악했고, 그들이 안건과 관련해 쏟아낸 말들은 차마 믿을 수 없는 충격 그 자체였다.
김용원 위원은 “일본군성노예제 타령할 거면 중국에 의한 성노예제, 반인륜적 범죄도 지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타령?’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 단어는 일본군성노예제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지 않고는 쓸 수 없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는 30년 이상 수많은 피해생존자들의 용감한 증언과 역사적 검증, 평가를 통해서 그 실체가 확인되어 이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전 지구적 상식이다. 그럼에도 김용원 위원은 거침없이 역사부정 언어를 사용했다. 한편 이충상 위원은 “인구절벽 때문에 나라 전체가 폭삭 망하게 생겼다”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최저임금 예외 정부정책에 대해 차별’이라고 기술한 보고서 내용을 문제 삼았다.
두 위원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부정하고 외교와 국방문제로 치환하려 했고, 이주가사노동자에 대한 국적·인종차별과 노동착취 논리를 반복·재생산했으며,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한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계획이 성차별 개선을 위한 것이라는 등 인권위원 본분을 망각한 망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결국 독립보고서는 3월25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내용은 삭제하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이주가사노동자 권리,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와 성평등정책 퇴행, 형법 제297조 강간죄 개정 등 여성인권 개선 관련 주요 법·제도 개선 권고들도 대폭 축소하여 수정·제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인권위의 핵심 역할 중 하나는 국제인권규범의 국내이행 강화이다. 행정·사법·입법부가 국제인권규범을 잘 준수·이행하는지 모니터링하고 촉진하는 역할이다. 이번 독립보고서 채택과정을 보면 김용원, 이충상 두 위원은 인권위의 존재 이유, 인권위원의 역할을 부정하고 있다. 역할을 부정하는 사람에게 그 역할을 수행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김용원, 이충상 두 위원이 곧 임기가 만료되는 인권위원장 자리를 욕심낸다는 소문이 들린다. 인권위원으로 자질이 있는지 충분히 검증하지 못하고 추천한 것과 이미 국민적 판단이 내려진 무자격자를 추천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인권위원장 인선은 국격의 문제다. 국제사회에서 또다시 개망신당하고 싶지 않다면 김용원, 이충상 두 위원은 절대 안 된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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