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좇는 탈주자·멈추려는 추격자… 숨 막히는 몰입감

송은아 2024. 6. 2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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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남'이 재규어처럼 직진한다면 '현상'은 맹수가 아닌 공작처럼 아름답게 날개를 펼치고 쫓는 느낌으로 가고 싶었다."

이 영화는 남한으로 가려는 북한군 중사 규남과 그를 막아야 하는 보위부(체제 보위 기관) 장교 현상의 추격전을 담았다.

어린 시절부터 알던 사이인 현상은 규남을 오히려 영웅으로 만들어준다.

직선으로 질주하는 규남과 달리 구교환이 연기하는 현상은 북한 체제에 갇힌 문제적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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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구교환 주연 영화 ‘탈주’
남한 가려는 북한군 중사, 그를 막는 보위부 장교의 추격전
입체적 인물·세련미 돋보여… 이데올로기 아닌 인간에 초점
이제훈, 몸무게 50㎏대 만들고, 탈북 청년한테 발음도 교정
구교환, 피아니스트 꿈 포기한 체제 갇힌 장교 완벽히 소화

“‘규남’이 재규어처럼 직진한다면 ‘현상’은 맹수가 아닌 공작처럼 아름답게 날개를 펼치고 쫓는 느낌으로 가고 싶었다.”

다음달 3일 개봉하는 영화 ‘탈주’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의 설명이다. 이 영화는 남한으로 가려는 북한군 중사 규남과 그를 막아야 하는 보위부(체제 보위 기관) 장교 현상의 추격전을 담았다.
영화 ‘탈주’는 남으로 가려는 북한군 규남을 통해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꿈을 향해 움직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월남·귀순 병사’ 하면 틀에 박힌 이미지가 떠오른다. ‘탈주’는 이런 예상과 달리 ‘재규어와 공작의 질주’라는 비유가 어울리는 작품이다. 쫓고 쫓기는 이들의 절박함과 속도감을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추격전에 머물지 않고, 영화의 질문을 인생 전반으로 확장해 꿈과 자유의지의 소중함을 설파한다.

‘탈주하려는 자’인 규남은 휴전선 인근 북한 부대에서 10년 복무 후 제대를 앞둔 중사다. 규남이 비무장지대(DMZ) 지뢰밭을 넘으려 준비하던 중 다른 병사가 먼저 귀순을 시도하다가 발각된다. 규남도 공모자로 몰린다.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장교 현상이 파견된다. 어린 시절부터 알던 사이인 현상은 규남을 오히려 영웅으로 만들어준다. 그럼에도 규남은 탈북 의지를 꺾지 않고 직진한다.

이 영화의 세련미는 입체적인 인물에서 나온다. 배우 이제훈이 연기하는 규남은 도망치는 입장임에도 당당하다. 규남이 탈북하는 이유는 배고픔이 아니라 ‘마음껏 실패할 자유’를 갖고 싶어서다. 그는 체제가 정해준 운명이 아닌 꿈을 향해 미지의 땅으로 달려간다.

그를 잡으려는 현상 역시 북한 방첩기관의 간부이지만 현대적인 인물이다. 권력의 작동방식을 잘 이용하지만, 체제와 사상을 믿진 않는 듯하다.
배우 이제훈과 구교환의 연기는 두 인물의 매력을 탄탄하게 살린다. 이제훈은 북한군이 되기 위해 식사량을 줄였다. 몸무게를 60㎏ 아래로 만들었다. 먹은 게 적어 머리가 핑 돌아 당분을 섭취할 때면 ‘규남이라면 이러는 게 맞을까’ 고민했을 정도로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만난 그는 “스스로를 갈아 넣지 않으면 규남을 진실되게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이게 나를 몰아붙이는 마지막 작품이라는 심정으로 저를 내던졌다”고 말했다.

이제훈은 도주 장면에서 들판과 산길을 숨이 멎을 정도로 뛰느라 무릎을 다쳤다. 2년 전 촬영했음에도 지금까지 계단을 오래 내려오면 무릎이 아프다. 최근 비무장지대(DMZ)를 통해 탈북한 20대 청년으로부터 발음, 어휘도 모두 교정받았다.

직선으로 질주하는 규남과 달리 구교환이 연기하는 현상은 북한 체제에 갇힌 문제적 인간이다.
이날 같은 카페에서 만난 구교환은 “영화 시작과 끝에 현상의 얼굴이 다르다”며 “왜 이 인물의 얼굴이 바뀌는지 궁금해 도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현상은 러시아 유학파 피아니스트로 국제대회를 휩쓸었지만 지금은 꿈을 접었다. 구교환은 “현상은 피아노만 생각하고 싶어하지만 여러 이유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그래서 본인이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에게 계속 납득시키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는 통상 북한을 다룬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 남북관계나 이데올로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이 감독은 “귀순 병사의 사연을 그리고 싶진 않았다. 우리와 언어, 생김새가 비슷한 북한을 배경으로 인간 자체의 근원적인 얘기를 다뤄 보려 했다”고 설명했다.

‘탈주’를 볼 때는 이런 연출의도를 감안하는 것이 좋다. 이 작품은 현재 북한 20대의 언어를 꼼꼼히 분석한 후 일부러 조금씩 다르게 만들었다. 감독에 따르면 “관객이 꿈에서 북한에 간 것 같은 느낌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현상의 꿈이 피아니스트인 만큼 이 영화에서는 음악을 듣는 즐거움도 있다. 라흐마니노프와 쇼팽 등의 곡이 주요하게 쓰인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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