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국물 세 숟갈 뜰 때쯤… 진한 고깃국 맛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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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문화부에서 신춘문예 담당자로 일할 때다.
일행이 원해 별수 없이 들러 평양냉면을 주문했다.
멀건 냉면을 앞에 두고 '그래 얼마나 맛있나 두고 보자'하는 생각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냉면이지만 국물은 그리 차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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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문화부에서 신춘문예 담당자로 일할 때다. 심사위원으로 온 이순원 소설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둘다 고양시 일산에 사는 것을 알게 됐다. 동네 얘기를 하다 그가 집 근처에 양각도라는 유명한 평양냉면집을 아느냐고 물었다. 벙싯 웃으며 ‘다음에 가볼게요’ 답했지만,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평양냉면을 싫어했다.
유독 평양냉면에 관해서는 알은척하는 이들이 많다. 면을 흩트리지 말고 국물부터 먹어야 한다는 둥 겨자를 뿌리면 먹을 줄 모르는 거라는 둥 면요리 하나 먹는데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그 꼴이 얄미워 괜히 평양냉면까지 멀리했다.
그러다 두 달 전쯤 우연히 그 식당에 갔다. 일행이 원해 별수 없이 들러 평양냉면을 주문했다. 멀건 냉면을 앞에 두고 ‘그래 얼마나 맛있나 두고 보자’하는 생각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첫술엔 ‘역시나 밍밍하군’ 두 번째 술엔 ‘나쁘지 않은데’ 그러다 세 번째 술엔 ‘뭐야 너무 맛있잖아!’
처음 슴슴하게 느껴졌던 국물이 이내 진한 고깃국으로 바뀌는 경험은 정말이지 신기했다. 짠맛은 은근하고 육향은 깊어 나도 모르게 계속 숟가락질을 했다. 반쯤 비웠을 즘엔 면발에서 나온 메밀의 구수한 맛도 났다. 담백함 속에 숨은 맛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달까. 냉면이지만 국물은 그리 차갑지 않다. 약간 시원한 정도인데 일행의 말로는 그 덕에 육향이 잘 나는 것이라고 한다.
백미는 국숫발이다. 후루룩 면치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찰기가 있으면서 툭툭 쉬이 씹힌다. 면발이 꽤 두툼해 입안 가득 욱여넣고 씹는 맛이 좋다. 평양냉면 초심자가 즐기기에 더할 나위가 없다. 양은 또 얼마나 많은지, 점심으로 한 그릇 먹고 나면 늦은 저녁까지 든든하다. ‘국수는 금방 배 꺼진다’라는 말이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다.
첫 만남에 평양냉면과 사랑에 빠졌다. 두 달 새 일곱 번쯤 양각도에 들렀다. 요즘은 변주해 먹는 재미가 있다. 식초, 겨자를 뿌려 먹거나 곁들여 나오는 장아찌를 면발에 싸 먹는다. 고춧가루를 양껏 뿌려 먹는 것도 매력적이다.
그러니 잘난 척하는 사람이 죄지, 평양냉면이 무슨 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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