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칼럼] `이재명 카드` 버려야 진보가 산다
민주주의는 취약하다. '중우(衆愚) 정치'와 '다수의 횡포'(tyranny of the majority)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통치당하는 것이다. 민주정은 대중의 선호가 도덕이 되는 중우정치로 변질할 우려가 농후하다"고 했다. 중우정치(mobocracy·ochlocracy)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정치다. '다수의 횡포' 는 소수를 향한 다수의 폭주를 뜻한다. 19세기 프랑스 역사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다수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민주주의가 다수의 만능과 횡포, 이에 따른 입법·행정의 불안정, 여론 정치, 정부의 타락, 정치인의 포퓰리즘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행보는 이런 민주주의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장동 비리, 대북 불법 송금 등의 혐의로 4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 그는 지난 24일 당 대표직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연임 의사를 공식 표명했다. 당권을 쥐고 2026년 6월 지방선거에서 공천권을 행사한뒤 2027년 다시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노골화한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 전체를 위해" 당 대표 연임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그와 민주당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나라로, 민주주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첫째, 이 대표의 모든 행보는 국민이 투표로 선택한 윤석열 정부의 타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해병대 채상병 사건, 김건희 여사 명품 백 수수 등을 내걸고 윤 대통령 탄핵을 향해 폭주 중이다. 대통령 탄핵에 성공해야 자신의 살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22대 총선서 호위무사를 대거 공천해 여의도에 입성시킴으로써 당내에 철옹성을 만들었다. 당외에선 '개딸'로 대표되는 강성 팬덤 지지층을 권력 기반으로 활용한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을 동원한 마오쩌둥 수법 그대로다. 선전선동으로 감성에 치우치게 마련인 대중의 심리를 교묘히 활용하고, "이재명은 한다면 한다"며 반헌법적 행태도 불사한다. 그를 키워준 건 역설적으로 고집과 불통으로,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이슈들을 가래로도 못막게 만들어버린 윤 대통령 자신이다.
둘째, 이 대표에겐 경제 성장이나 발전 개념이 없다. 경제 정책은 '퍼주기'다. '부자 감세'를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재정 사정은 아랑곳 없이 부자들에게도 1인당 25만원씩 지급하자고 한다. 남아도는 쌀 보관과 처리에만 수조원이 드는데도 쌀 가격을 정부가 보장해줘 농업을 망치려 한다. 나랏빚이 늘어나도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 빚을 갚으면 될 것 아니냐는 주장조차 서슴지 않는다. 말은 그럴싸 하지만 나라를 망가뜨리는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셋째, 안보에 대한 무감각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무기나 포탄 조달을 위해 북한과 상호 군사지원협정을 맺었는데도 윤 정부가 외교를 잘못해서라고 주장한다. 50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한 북한이 침공하면 국민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답변은 내놓지 못한채, 문재인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밝힌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핵을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식이다.
이 대표의 행보는 국민들의 삶을 편안하게 하는 '안민'(安民)과는 정반대다. 사법 리스크 방탄만이 그의 관심사다. 171석이라는 의석을 악용해 입법부 장악, 행정부 무력화, 사법부 압박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전형적인 '다수의 횡포'다.
노무현 시절만해도 진보는 그렇지 않았다. 소외층을 따뜻하게 보듬고, 국익을 위해서라면 지지세력이 싫어하는 정책도 추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진보의 철학'은 사라졌다. 민주주의는 종북주의자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노동 현장의 민주화는 일부 대기업 강성 귀족 노조의 향유물이 됐다.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어질지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이 대표는 '마이 웨이'를 갈 것이다. 방탄이 안되면 장외투쟁을 벌이고 대통령 탄핵도 추진하면서, 대선때 결정적 '한방'을 모색할 것이다. 대한민국 진보는 도덕적 우위는 커녕 염치와 부끄러움 조차 모르는 집단으로 추락 중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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