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하의 베이징 리포트] 죽음의 동북아
“공장의 연기가 별을 덮어. 마을들 전부 연기에 묻혀. 어릴 적부터 강물은 맑지 않았고, 지금껏 돈과 질병을 바꿔 왔네. 이주할 수 없는 이들은 못이 됐네.”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 거주하면서 ‘난선’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농민공 래퍼 장팡자오(張方釗·27)의 랩 <공장>의 첫 소절이다. 그의 고향 자오쭤에서 촬영한 <공장>의 뮤직비디오는 지난 5월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공장>은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제대로 된 중국 랩”이란 찬사가 잇따랐다. 무명 래퍼 난선은 ‘허난 랩의 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공장>에는 폐허가 된 고향과 생계를 위해 분투하는 농민공, 더 좋은 환경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못해 자책하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허난성은 중국에서 대표적으로 가난한 지역이다. 못처럼 고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조금이나마 나은 삶을 찾아 할 수 있는 일은 ‘이주’였다
지난 16일 허난성 정저우에서 냉동 트럭 화물칸에서 질식해 숨진 8명의 여성 노동자들 역시 ‘못’이었다. 이들은 쇠고기 가공·포장 공장 노동자들로 초과근무 후 교통편이 끊겨 냉동 트럭 화물칸을 타고 귀가하다 참변을 당했다. 인근 농촌의 40~50대 여성들이었고 누군가의 엄마들이었다. 지난 24일 경기 화성의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로 목숨을 잃은 중국인들은 조금 더 멀리 이주한 이들이었다. 중국 매체 신경보에 랴오닝 출신 조선족이라며 진저위안(가명)이란 이름으로 소개된 그는 사건 당일 휴가를 내 출근하지 않아서 목숨을 건졌다. 그는 사망자 대부분이 배터리 포장과 용접 업무를 하던 30~40대 동북 지역 조선족 여성이라고 전했다. 시급은 9850원으로 최저시급 수준이라고 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세계 최고의 제조업 국가에서 어째서 임금이 낮아 한국으로 일하러 갔다 죽임을 당하느냐”고 물었다.
동북3성(랴오닝·지린·헤이룽장) 역시 허난과 마찬가지로 중국 내 임금이 낮은 지역이다. 구인광고 사이트를 보면 수산물 가공공장 등에서 한 달 동안 일해도 임금은 5000위안(약 10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불만도 접할 수 있다. 중국인들도 기피하고 있어 북한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사실이라면 중국 노동자들이 더 높은 임금을 찾아 빠져나간 자리를 기꺼이 낮은 임금으로 일할 북한 노동자들로 채운 셈이다.
배터리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날 입사 6개월 만에 전북 전주시의 한 제지공장에서 현장 실습생으로 일하다 숨진 19살 노동자의 생전 메모가 공개됐다. 메모에는 ‘일본어, 영어 등 다른 언어 공부하기’, ‘악기 공부하기’ 등의 소망과 “다른 사람 험담하지 않기”란 삶의 자세에 대해서도 적혀있었다. 지난달 23일 육군 12사단에서는 훈련병이 훈련 도중 소위 군기 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사망했다. 지난해 수해 구조 현장에서 숨진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 은폐 의혹도 진행 중이다.
동북아 죽음의 행렬에는 공통점이 있다. 보다 손쉽고 값싸게 사람을 쓰려다 죽음이 발생했고 죽음 후에도 잠잠하다는 점이다. ‘허난 랩의 신’ 난선은 유명해지자 부담을 느끼고 웨이보에 올렸던 사회 비판적 글들을 삭제했다. <공장>이 최대한 정치적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저우 냉동트럭 참변을 전하는 중국 당국과 언론은 차량 불법 영업에 집중했다. 한국은 언론 보도는 떠들썩하지만, 사건은 반복된다. 배터리 공장의 숨진 중국인 노동자 관련 기사에는 “같은 임금을 줄 것이라면 뭐하러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오겠느냐”는 날 선 댓글이 달린다.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해 숨진 이들을 위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조금 더 자유로운 정치 체제라는 자부심이란 무색하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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