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급격한 연소로 연기 가득 차 … 42초 만에 ‘암흑 천지’ [화성 배터리 공장 화재 참사]

경찰·소방 등 9개 기관 합동감식
화재 확산·대피 경로 등 집중 점검
"기관 간 분석·공유 거쳐 추가 감식”
업체 대표에 중처법 위반 혐의 적용
경찰, 130명 규모로 수사본부 꾸려
2층 중앙복도서 시신 추가로 수습
사망자 23명… 한국인 5명으로 늘어

31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화성 배터리공장 화재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이 25일 이 업체 대표 등 5명을 형사입건했다. 경찰은 4시간 넘는 현장 감식에서 발화 장소와 피해자 사망 장소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는 이날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이 회사 본부장급 인사, 안전 분야 담당자, 협력관계인 인력공급업체 관계자 등 5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고 밝혔다.

고개 숙여 사과 25일 경기 화성 전곡산업단지 내 리튬전지 공장인 아리셀에서 박순관 에스코넥 대표(오른쪽)가 23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박 대표에 대해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도 적용됐다.

경찰은 또 당초보다 1시간가량 늦어진 이날 오전 11시50분쯤부터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합동 감식을 4시간10분가량 진행했다.

감식에는 경찰과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토안전연구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관리공단 등 9개 기관 40여명이 참여했다.

감식에선 다수의 근로자가 단시간에 고립돼 인명 피해가 커진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대피 및 화재 확산경로와 소화시설 등에 대한 점검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오석봉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발화 장소와 다수 피해자 발생 장소를 중점적으로 살펴봤다”면서 “추가 감식은 기관 간 분석과 공유를 마치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 감식과 별개로 중앙긴급구조통제단이 공개한 ‘경기도 화성시 공장화재 대응상황보고’에 따르면 배터리 폭발은 24일 오전 10시30분3초쯤 3동 2층에서 처음 일어났다. 주변에는 종이상자와 플라스틱 소재로 보이는 포장재로 쌓은 배터리 완제품이 가득 쌓여 있었다. 폭발과 함께 흰 연기가 피어오르자 작업자들이 최초 폭발 후 12초 뒤부터 주변에 쌓인 완제품들을 치우기 시작했으나 연쇄 폭발을 거쳐 오전 10시30분45초쯤 검은 연기가 실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배터리 하나의 작은 폭발이 작업장 전체를 농연으로 메우는 데까지 고작 42초가 걸린 것이다. 중앙긴급구조통제단은 보고서를 통해 원통형 배터리가 원인 미상으로 폭열, 폭발하면서 급격히 연소가 확대돼 다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이 사건 수사를 위해 형사기동대 35명, 화성서부경찰서 형사 25명, 과학수사대 35명, 피해자 보호계 25명 등 130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꾸렸다.

이날 오전 화재 현장에선 소사체 형태로 훼손이 심한 시신 1구가 추가로 발견됐다. 발견 장소는 불이 난 건물 2층을 가로지르는 중앙 복도로 대부분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형 작업장에서 수십m 떨어진 곳이다.

이로써 사망자는 23명으로 늘었다. 국적별로는 한국인 5명,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이다. 한국인 중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사람 1명이 포함됐다.

해당 사고 업체는 200억원대 규모의 보험에 가입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화성 아리셀 공장은 KB손해보험을 통해 가입금액 215억원의 재산종합보험과 DB손해보험을 통해 종합보험(49억원) 등에 가입했다. 이에 따라 이번 화재 보상은 대부분 KB손해보험에서 이뤄지고, DB손해보험이 기계 손실에 대한 보상 등을 분담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보험에서 인명 피해를 배상하는 ‘신체손해배상책임’의 보장 한도는 인당 1억5000만원이다. 다만 신체손해배상책임은 제3자의 신체에 손해를 입혔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회사 종업원에 대한 피해는 보상하지 않는다.

한편 이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자신을 경찰기동대 소속 경찰관이라고 밝힌 A씨가 “화성 화재현장에 방독장비 없이 근무했다”는 내부 비판글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경기남부청 관계자는 “화재 공장에서 근무지가 150m가량 떨어져 있는 등 현장 상황상 방독면을 착용하고 근무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KF94 마스크를 쓰고 근무한 직원들이 있었으나 이후 방진 마스크를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이번 화재는 전날 오전 10시30분쯤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발생했다. 이 불로 현재까지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화성=오상도 기자 sd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