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기 없는 전기차 충전소 ‘수두룩’… 주변엔 발화물질 ‘수북’ [화성 배터리 공장 화재 참사]

이정한 2024. 6. 2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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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리튬전지’… 안전은 무방비
전기차 火因 절반 ‘고전압 배터리’
금속화재는 화재 유형 분류 안 돼
D급 아닌 분말형 소화기 비치 많아
PM충전소 화재 설비도 관리 사각
뉴욕은 5개 이상 PM 보관 금지령
“리튬화재 땐 대응 말고 즉시 대피”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성 배터리공장 화재 참사’로 인해 불이 나면 폭발성이 강하고 진압이 어려운 리튬배터리의 안전문제가 재부각되고 있다. 리튬배터리는 전기차와 전동킥보드를 비롯한 개인형 이동장치(PM), 노트북 등에 들어갈 정도로 일반화돼 있지만, 화재 위험성이 높은 관련 시설의 안전기준은 미흡하다. 리튬배터리 화재가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배터리 화재에 특화된 안전·화재설비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세계일보가 서울 중구와 강서구에 있는 전기차·PM 충전소를 돌아본 결과 대부분 충전소는 소화기를 포함해 아무런 방화 설비가 보이지 않았다. 강서구 화곡동의 한 공영주차장 내 전기차충전소에는 차량 2대가 충전 중이었는데 주변에 소화설비는 마련돼 있지 않았다. 이에 더해 종량제 쓰레기봉투와 카시트 등 화재 시 불이 옮겨붙을 수 있는 무단 폐기물이 널브러져 있었다. 중구 신당동의 한 전기차충전소 주변에는 청소도구와 쓰레기봉투 등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화성 배터리공장 화재 참사’로 전기차와 전동 킥보드 등에 쓰이는 리튬 배터리 화재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2022년 경기 평택의 한 빌라에서 충전 중이던 전동 킥보드에 화재가 발생한 모습(왼쪽)과 지난해 4월 강원 춘천의 한 전기차충전소에 주차된 승용차에서 불이 난 모습. 연합뉴스·세계일보 자료사진
소화기 유무와 종류도 제각각이었다. D급(금속화재) 소화기가 걸려 있는 충전소도 있었지만 분말용 소화기만 놓여 있거나, 소화기가 아예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소방법상 화재유형은 일반화재(A급)와 유류화재(B급), 전기화재(C급), 주방화재(K급) 4가지로 구분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분말용 소화기는 A·B·C급에 모두 적응성이 있어 범용성이 높다. 다만 해당 분말소화기는 냉각 효과가 크지 않은 탓에 1000도 이상 온도가 오를 수 있는 금속화재를 진압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된다.

전기차 배터리는 화재의 주요 원인이지만 전기차충전소 화재설비 기준이 미비한 게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발생한 전기차 화재 94건 중 51건(54.3%)이 ‘고전압 배터리’가 원인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행정규칙인 전기설비기술기준과 한국전기설비규정(KEC)에 따라 전기차충전소 방진과 방수 등 전반적인 전기설비를 맡는다. 소방설비나 화재 안전기준은 소방청에서 관리하는데 전기차충전소 소방설비·화재안전 기준은 따로 없다는 게 소방청 설명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건축물에 고정된 소화설비를 구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기준 관련) 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있고 연구가 끝나면 시설 보강 등 관련 안전 조치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속화재에 따른 진압 방식 등 소방차 출동 매뉴얼은 준비돼 있다”고 덧붙였다.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후 진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도 “전기차충전소 관련 소화기 규정은 없어서 소화기 비치를 신경 쓴 적이 없다”고 전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과)는 “폐쇄공간이고 차량이 밀집된 지하주차장 충전소의 화재 위험성이 크다”며 “충전량 제한과 질식소화포 비치 등 여러 방안을 정부와 관련 협의회에서 준비하고는 있지만, 소방 화재유형에 없는 금속화재를 따로 구분해 특수 소화기 등 맞춤형 대응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화재보험협회(화보협)가 2022년 한국화재안전기준(KFS)을 제정하면서 ‘전기차 충전설비 안전기준’을 새로 넣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단순 권고에 불과한 상태다. 화보협은 “충전설비 인근에 약제 중량 3.3㎏ 이상인 분말소화기와 C급 화재에 적응성 있으며 약제의 중량은 2㎏ 이상인 가스계 소화기를 비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충전소가 실외에 있는 경우엔 아예 소방 관리 대상에서 빠져 있다는 점도 문제다. 소방청 관계자는 “지하주차장 등 옥내는 화재설비를 소방청이 담당하지만 실외의 경우엔 관리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실내보다 화재 위험성이 떨어지더라도 폭발성이 강한 배터리 화재 특성상 실외 화재설비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배터리 화재 위험이 있는 PM 충전소도 화재에 무방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각국이 PM 안전 관리 규정을 강화하는 추세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관련 규정이 미비한 실정이다. 미국 뉴욕시는 2022년 화재 위험성을 고려해 한 장소에서 5개 이상의 PM을 보관하거나 충전하는 걸 금지했다. 프랑스 파리시도 도심 내 공유 킥보드 이용을 금한 이유 중 하나로 ‘화재 위험성이 높다’는 점을 꼽았다. 김 교수는 “PM은 배터리 규격도 통일되지 않고 전용 충전기도 따로 없는 등 안전기준이 상당히 취약하다”고 했다.

특히 전동킥보드 등 PM은, 집 안에 놔두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최근 5년간 발생한 전동킥보드 화재의 49.7%(232건)가 주거시설에서 발생했다. 전동킥보드 화재로 지난해 1월 울산 공동주택에서 2명이 숨졌고, 같은 해 5월엔 경북 김천시 공동주택에서 11명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인세진 우송대 교수(소방방재학과)는 “리튬배터리 화재는 가정에서 대응하기 어렵다”며 “과충전을 막는 등 화재 예방이 우선이고 불이 나면 대응보단 대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설명했다. 미국방화협회(NFPA)도 PM 화재가 났을 땐 ‘불을 끄려고 하지 말고 즉시 대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NFPA는 전동킥보드나 전기자전거 등을 출구나 현관문 등에 보관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이정한·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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