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50년 기술, 정말 안전한가? [전국 프리즘]
김규현 | 전국부 기자
지난 22일 오후 ‘웹(Web)발신’으로 시작하는 한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제목은 “월성 4호기 사용후연료저장조 저장수 미량 누설”.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있는 “월성원전 4호기에서 사용후연료저장조 냉각계통의 열교환기 이상으로 미량의 저장수가 해양으로 누설되었음을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에서 알림 소식을 신청한 사람을 대상으로 보내는 단체 문자다.
문자에는 “누설된 삼중수소와 감마핵종은 연간 배출제한치 대비 미미한 수준이며, 이번 누설로 주민유효선량은 평상시와 비슷한 정도이다. 추가적인 누설은 없으며, 상세 원인을 점검한 후 필요한 조처를 수행하겠다”는 내용도 덧붙어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긴 문자 내용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미미한 수준” “평상시와 비슷”이라는 문구를 보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한수원 누리집에서 원전 소식 알림 신청을 해두면, 매주 각 원전의 운영 정보, 사고 소식을 보내준다. 이번 문자도 늘 오던 정기 문자 가운데 하나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문자 내용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누설된 ‘사용후연료저장조 저장수’란 원자로에서 연료로 쓰인 뒤 배출된 사용후핵연료를 식히기 위한 물을 말한다.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열과 방사능 때문에 두꺼운 콘크리트 저장조 안에서 물로 식힌다. 저장수 역시 사용후핵연료와 직접 닿는 물이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을 갖고 있다. ‘사용후연료저장조 저장수’라는 그럴듯하고 어려운 이름을 붙였지만, 쉽게 풀어 말하면 ‘핵오염수’다. 한수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 바다로 누설된 핵오염수는 약 2.3톤이라고 한다. 한수원은 누설된 양이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지만, 애초에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되는 물질이었다. 핵오염수가 바다로 누설된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더구나 한수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누설 원인과 정확한 누설량, 누설 경로 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자세한 내용은 알림 문자만 봐서는 전혀 알 수 없다.
한수원 누리집을 보면, 원전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꾸준히 발생한다. 지난 3월 월성 3호기에서는 전원 공급 차단기에서 불이 나 원자로가 자동으로 멈췄다. 지난달에는 신월성 2호기 원자로냉각재펌프가 자동으로 멈췄고, 지난 12일에는 한울 6호기에서 터빈 윤활유 저압력으로 터빈과 발전기를 수동으로 정지시켰다. 다행히 외부로 방사선 누출은 없었고, 내부 시스템에 따라 발전소를 정지하는 등 안전한 상태를 유지했다.
정부는 2038년까지 신규 원자력발전소(1.4GW급) 3기와 아직 개발도 마치지 않은 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건설하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지난달 발표했다. 여기에 대구시가 앞장서 군위군에 680메가와트(㎿)급 소형모듈원전을 짓겠다고 지난 17일 한수원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 자리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은 안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무지의 소치”라며 일축했다. 군위군 주민들은 이날 뉴스를 보고서야 동네에 원전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알았다고 했다.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19일 반대 기자회견을 열자, 대구시는 20일 입장문을 내어 “지난 50여년 동안 안전하게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해온 한수원의 혁신형 소형모듈원전을 선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형모듈원전은 냉각수와 방사성 물질 사이에 접촉이 없도록 설계돼 방사선이 외부로 유출될 수 없다고 한다. 물론 현재까지는 개발 단계이며, 아직 안전성을 검증할 심사 기준도 없다.
이달 초 통화했던 경주 양남면 한 70대 주민의 말이 떠오른다. “기자 양반, 원전 저기 자꾸 사고가 나. 언론에서 좀 떠들어가 원인 규명을 해줘. 불안해가 몬 살겠다.” 평생 원전 옆에 산 주민들도 매일 불안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었다. 한수원의 50년 기술은 주민들을 충분히 안심시킬 수 있을 만큼 안전할까. 정부와 대구시가 군위 주민들의 우려를 진정성 있게 듣는 자세가 먼저 필요해 보인다.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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