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별 최저임금 논의 본격화…"차별 조장"vs"자영업자 어려워"(종합)
경영계 "소상공인·자영업자, 최저임금 못 줄만큼 어려워"
심의 법정기한 이틀 남았는데…5차 전체회의도 '빈손'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는 문제를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 간 줄다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 회의실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기 위한 5차 전체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부터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차등) 적용'이 논의됐다.
다만 심의가 가뜩이나 더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날 아무런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
노동계 "업종별 최저임금 구분은 차별 조장"
최저임금법 4조는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적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다만 이 규정에 따라 구분 적용이 이뤄졌을 때는 최저임금제 시행 첫해인 1988년이 유일하고, 1989년부터 단일 최저임금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노동계에 최저임금 구분 적용은 '레드라인'이다.
노동계는 구분 적용이 '저임금 노동자 임금을 사회적 최저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려 생활을 보장한다'라는 최저임금 취지를 완전히 무너뜨린다고 주장한다.
5차 전체회의에서 근로자위원인 이미선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한국 사회가 저임금과 양극화로 희망을 잃는 가운데 사용자 측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줄 수 있도록 논의하자고 한다"며 "최저임금은 모든 노동자의 생활 안정과 적정임금 보장을 위해서 존재하지, 특정 업종·지역·성별·연령을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부위원장은 최저임금법이 제정되던 1986년 11월 27일 당시 국회 보건사회위원회 회의록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정부 측도 업종 등에 따라 최저임금을 달리 정하는 것은 최저임금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고, '전 산업 일률적 최저임금 보장'이 목표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보다 경제 규모도 생산량도 적었던 40년 전에도 모든 노동자가 차별 없이 최저임금을 받는 것이 최저임금법 취지라고 말했는데 이제 와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에 동의할 국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계는 최근 입법조사처가 내놓은 최저임금 보고서도 주목했다.
입법조사처는 지난 2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저임금법 규정을 고려해도 최저임금제 목적·취지·구조를 볼 때 현재 최저임금액보다 더 낮은 최저임금을 설정하려면 보다 구체적인 통계와 법률상 명시적 조항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주요 외국 사례를 보면 일반적인 최저임금보다 더 높은 최저임금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업종별 최저임금이 운영된다"며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려면 외국 사례를 참고해 단일 최저임금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라고 권고했다.
근로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입법조사처 보고서를 거론하며 "(사용자가)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법 준수 의지와 기업규모 등으로 다양하기에 (입법조사처도) 차등 적용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어려움은 공감하나 이분들의 경영난의 근본적 원인이 최저임금은 아니다"고 말했다.
류 사무총장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경영난 원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 자영업 비율과 이들을 향한 임대료 횡포, 프랜차이즈·카드 수수료, 대기업의 무분별한 출점으로 인한 과당경쟁에 있다"고 주장했다.
경영계 "자영업자 인건비 감당 못하는 현실 반영해야"
경영계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급여력'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최저임금 고율 인상 누적과 일률적 적용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현재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렵다"라면서 "숙박업과 음식업은 주휴수당까지 반영하면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미만율이 50%를 넘는다"라고 말했다.
류 전무는 "최저임금이 중위임금 50%를 넘지 못했을 때는 구분 적용 필요성이 적었지만, 이미 5년 전에 중위임금 60%를 넘었다"며 "올해는 현재 최저임금을 감당하기 힘든 업종이라도 반드시 구분 적용하고 최저임금을 안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사용자위원인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취약 사용자 집단'으로 지칭하면서 "이들은 최저임금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여건에서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 본부장은 "노동계는 최저임금 구분 적용 시 취약 사업자 집단에 고용된 근로자 생계 보전이 안 되는 문제를 지적하지만, 이는 정부가 정책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법정기한 이틀 전…내년 최저임금 수준 요구안도 안 나와
최저임금 구분 적용 논의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2019년도 최저임금을 정한 2018년 최저임금위에서는 출석위원 23명 중 14명이 반대, 2019년에는 27명 중 17명, 2020년에는 27명 가운데 14명이 반대해 부결됐다.
2021년에는 15명이 반대, 11명이 찬성, 1명이 기권했고 2022년에는 16명이 반대, 11명이 찬성했으며, 작년에는 15명이 반대, 11명이 찬성했다.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은 각각 반대와 찬성으로 갈리고, 공익위원이 결과를 가르는 형태로 표결이 진행돼왔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는 심의 기간이 역대 최장이었던 작년보다 더디다.
최저임금 법정 심의 시한이 27일까지인데, 아직 구분 적용 여부도 정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이 원하는 최저임금 수준도 제시가 안 됐다.
최저임금위는 이날 최저임금 구분 적용에 대해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해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이인재 최저임금위 위원장은 경영계에 다음 전원회의까지 최저임금 구분 적용과 관련해 '구체적인 안'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또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에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최초 제시안'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전원회의는 27일 오후 진행된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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