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론물리학 권위자 중국행, 이 암울한 현실 방관할 건가
오는 8월 정년 퇴임하는 이기명 고등과학원 부원장이 중국 베이징 수리과학 및 응용연구소로 자리를 옮긴다. 이기명 부원장은 우주의 기원을 찾는 ‘초끈이론’ 전문가로 한국을 대표하는 이론물리학자다. 2006년 ‘국가 석학’에 선정됐고, 2014년에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그가 중국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유는 한국에서 더는 연구할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고등과학원은 그를 ‘석학교수’로 남아 있도록 하고 싶었으나 예산 부족으로 무산됐다고 한다. 과학계의 석학에게 맘 편히 연구를 계속할 자리 하나 내주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담하다.
이공계의 암울한 현실은 그뿐 아니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뜬금없는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여파로 연구 중단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R&D 예산이 삭감된 사업 중 연구수행 기간이 1년 넘은 ‘계속과제’가 있음에도 예산이 줄어든 사업이 175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전년 대비 90% 넘게 예산이 깎인 경우도 있고, 일부는 결국 연구가 중단됐다. 감염병 백신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사업도 그간 16억원을 쏟아부었으나 중단됐다. 돈을 들여 하던 연구를 땅에 묻어버린 셈이다. 이미 투자된 연구·개발 사업이 중단되면 연구자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연구를 더 계속할 수 없는 인재들은 해외로 떠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들의 외국행을 말릴 명분도 없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에 따르면 한국의 두뇌유출 지수는 지난해 4.66점으로 조사 대상 국가 중 36위다. 2020년 5.46점(28위)보다 3년 만에 1점 가까이 낮아졌다. 2010년 이후 이공계 인력의 연평균 국내 유입은 4000명, 국외 유출은 4만명 정도라는 통계도 있다. 한국이 고부가가치형 산업구조로 전환하면서 ‘중진국의 함정’을 벗어나는 데는 R&D 투자 확대가 큰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은 과학기술로 선진국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나라에서 이공계 인재들이 실험실을 나와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뒤늦게 방침을 바꿔 내년 R&D 예산을 원상복구하겠다고 밝혔지만, 올해의 ‘보릿고개’를 넘기 힘든 인재들은 ‘탈한국’을 결행하고 있다. 내년까지 기다리다간 무너지는 연구 현장을 지탱하기 어렵다. 중단된 연구과제 복원 등 이공계 긴급 지원을 위해 ‘R&D 추경’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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