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19세 청년 노동자의 ‘쓰러진 꿈’
2016년 5월28일, 서울 구의역에서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군(19)이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열차에 치여 숨졌다. 스크린도어 수리는 2인1조로 해야 한다. 1명이 열차 진입 여부를 감시하고 나머지 1명이 작업해야 안전하다. 그러나 김군은 혼자 작업하다 변을 당했다. ‘고장 접수 1시간 이내 현장 도착’이라는 원·하청 계약에 맞춰 작업하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김군 가방에선 미처 먹지 못한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이 발견됐다. 이 컵라면은 청년노동자의 고달픈 노동을 증언했다.
2018년 12월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김용균씨(24)가 석탄 운송용 설비를 점검하다 컨베이어에 끼여 숨졌다. 점검구 보호 덮개를 닫고 2인1조로 작업해야 했지만 어느 것도 되지 않았다. 작업장에선 컵라면, 탄가루 묻은 수첩 등이 발견됐다. 김씨의 생전 사진이 특히 강렬했다. 작업복, 작업모, 방진마스크 차림의 김씨가 “비정규직 이제는 그만 /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힌 종이를 든 이 사진은 ‘위험의 외주화’를 고발했다.
지난 16일 전북 전주시 팔복동의 한 제지공장 3층 설비실에서 A군(19)이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A군은 6일간 멈춘 기계를 점검하러 설비실에 간 터였다. 전남 순천시 한 특성화고를 졸업한 그는 현장실습을 거쳐 6개월 전 정직원으로 입사했다. A군 역시 2인1조 등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채 일하다 변을 당했다고 유족은 말한다. 유족이 공개한 A군 메모장은 19세 노동자의 꿈과 계획, 다짐으로 빼곡하다. 그가 정한 2024년 목표는 ‘남에 대한 얘기 함부로 하지 않기’ ‘하기 전에 겁먹지 않기’ ‘기록하는 습관 들이기’ ‘구체적인 미래 목표 세우기’ ‘친구들에게 돈 아끼지 않기’ 등이다. 채 피우지 못한 꿈과 착한 심성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진다.
일상의 때가 묻은 유품이 사회 부조리의 고발장이 되는 사회는 불행하다. 생명으로 충만한 그 일상성이 죽음과 충돌할 때 감정의 진폭은 커진다. 그렇게 커진 감정의 진폭은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비슷한 죽음이 반복되는 사회는 더욱 불행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정제혁 논설위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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