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 매뉴얼 없고 관리도 소홀···또 禍 키운 '안전불감국'

세종=박신원 기자 2024. 6. 2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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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배터리공장 참사 '예고된 人災'
고온·수증기 만나면 폭발하는데
일반화학물질 분류 안전기준 無
금속화재는 화재유형 분류 없고
전용소화기 있어도 차선책 불과
적재기준 없어 3.5만개 한 곳에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토안전연구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관리공단 등 관계자들이 25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 화재 현장에서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낸 경기도 화성시의 아리셀 공장이 처음부터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 당시 현장에 금속화재를 끌 수 있는 전용 소화기가 비치돼 있지 않았고 3만 5000개의 리튬전지가 한 곳에 적재돼 있었기 때문이다. 1차전지는 2차전지보다 화재 발생 가능성이 적다는 인식 탓에 안전관리 규정이 미비하고 점검도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5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현재 리튬 사고에 대응하기 위한 소관부처가 명확하지 않다. 환경부의 ‘화학사고 위기대응 매뉴얼’ 등은 유해 화학물질이 대기나 수계로 유출돼 인명·환경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리튬을 비롯한 일반 화학물질과 관련한 사고는 소방 당국을 중심으로 대응이 이뤄지고 있다. 리튬은 별도의 안전기준도 없다. 환경부는 이날 사고 현장에서 화학물질 유출 등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점검과 지원 방안을 모색했으나 관리 매뉴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특히 이번 화성 참사는 일반적인 배터리 화재로 알려진 리튬이온 2차전지 화재와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화성 1차전지 배터리 화재처럼 리튬에서 발생한 불은 금속화재(D급)로 분류된다. 이런 D급 화재는 현재 소방법상 화재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은 상태다. D급 화재 진압을 위한 소화기 비치나 매뉴얼 개발도 미흡하다. 국내에는 D급 화재 전용 소화기가 개발돼 있지 않다. 해외에서 개발된 D급 화재 소화기를 수입할 수는 있지만 이것 역시 화재 초기의 작은 규모 불꽃만 진압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게다가 사고 당시 현장에서 사용된 소화기는 D급 화재 전용 소화기가 아닌 일반적인 화재 현장에서 사용하는 분말소화기였다. 이 소화기는 일반화재(A급), 유류화재(B급), 전기화재(C급), 주방화재(K급) 등을 진압할 수 있지만 D급 화재를 진압할 수는 없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D급 화재 전용 소화기가 있기는 하지만 그리 효과적이지 못해 작은 화재만 진압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D급 소화기를 현장에 갖다 놓더라도 차선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1차전지가 2차전지보다 화재 가능성이 적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져 안전관리가 소홀하게 이뤄진 것도 화재를 키운 원인이다. 통상 인화성 또는 발화성 성질을 가지는 위험물은 화재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봐 ‘위험물안전관리법’에 따라 지정 수량을 정해놓는다. 지정 수량 이상의 위험물을 한데 모아 저장하지 않도록 법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리튬전지는 위험물로 분류되지 않아 지정 수량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화성 공장 2층에만 리튬전지 3만 5000개가 보관되고 있었고 한 개의 배터리에서 발생한 불이 다른 배터리로 옮겨붙으면서 피해가 커졌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그간 빈번하게 발생해온 배터리 화재는 대부분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2차전지 화재였고 1차전지 화재는 거의 발생하지 않아 관리가 소홀했다”며 “한 번의 사고로 인해 피해가 커질 수 있는 만큼 대응책을 마련해 놓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리튬전지 발화처럼 물로 진화할 수 없는 금속화재 대응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금수성 물질(물과 접촉했을 때 발화하거나 가연성가스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는 물질)과 물과의 접촉’으로 인한 화재는 지난 5년(2019년~2024년 6월) 사이 144건 발생했다. 특히 지난해(28건)의 경우 화재 건수가 2013년(12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모든 금속화재는 전용 소화기나 마른 모래, 팽창질석 등의 소화 용구로만 진압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흔한 사례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방 당국조차 평소에 마른 모래 등을 충분히 보관하지 않다 보니 화재 발생 시 사설 제조 업체의 모래를 조달해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관련 예산 지원도 부족하다. 올해 소방청의 ‘소방안전 기술개발(R&D)사업’ 예산은 총 221억 8200만 원으로 전년(260억 5200만 원) 대비 14.9% 감소했다. 올해 ‘ESS·수소시설 화재 안전기술 연구개발사업’ 예산은 6억 원으로 전년(34억 2500만 원) 대비 82.5% 급감했고 ‘국민위해인자에 대응한 기체분자식별·분석기술개발사업’ 예산은 지난해 19억 원에서 올해 4억 7000만 원으로 75.3% 줄었다.

세종=박신원 기자 shin@sedaily.com김창영 기자 kcy@sedaily.com장형임 기자 j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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