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쓸모없다고 해도 멈추지 않는 이유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었다. 10층까지 걸어가야 했다. 반절쯤 올라갔을 때였나, 어느 집 앞에 빈 페트병과 알루미늄 캔 더미 사이에 그림 한 폭이 버려져 있었다. 액자 한쪽이 망가진 상태였다. 누가 볼세라 그것을 들고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베트남에 있는 후에 왕궁(Hoàng thành Huế)을 자수로 표현한 그림이었다. 흰 아오자이를 입은 두 사람이 왕궁을 바라보고 있다. 노을이 진 하늘에 네 마리의 새가 둘씩 짝지어 날아간다.
벌어진 액자 틈을 순간접착제로 붙였다. 벽에 걸었더니 보기 좋았다. 후에 왕궁은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가 기거했던 곳이다. 베트남전쟁 때 미국의 폭격으로 건물 대부분이 불타 사라졌다. 나는 그 고궁에 가본 적이 있다. 잡초가 무성한 빈터를 지나 석병마용(石兵馬俑) 사이를 걸었다. 그것들은 오랫동안 무덤을 지키고 있다. 책상 앞에 앉으면 고궁이 보인다. 누군가 버린 그림이 벽에 걸려 있다. 해묵은 풍경이 나를 바라본다.
세상에는 좋은 작품이 너무나 많다. 책이 가득한 도서관에서 강의할 때면 꼭 그 사실을 수강생들에게 상기시킨다. 내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저 책들을 읽는 게 더 낫다고 말한다. 나는 금방 잊힐 거라고, 대부분의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 더는 읽히지 않는다고, 잊힌 나는 왕년을 돌아보며 이 순간을 그리워할 거라고 털어놓는다. 이 세상에는 잊힌 이야기가 무수히 많다.
첫 책을 받아 들고 쓰레기가 그득한 원룸에서 엉엉 울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집은 엉망이 됐다. 퇴근하고 그대로 뻗어 잠드는 때도 많았다. 글은 언제 썼을까. 아주 옛일처럼 느껴져 도무지 모르겠다. 몇몇 친구와 작은 호프집에서 조촐하게 책거리를 했다. 그날 찍은 사진을 보면 나는 책을 손에 쥐고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활짝 웃고 있다.
고백하건대 그 책이 이 세상을 뒤흔들 줄 알았다. 세상을 휘저은 오래된 책들처럼 반향을 일으킬 거라고 장담했다. 그런 치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내 글이 쓸모 있다고 굳게 믿은 시절을 지나 회의에 빠지는 시기에 이르렀다.
내가 처음 가입한 팬클럽은 ‘요조스쿨’이라는 싱어송라이터 요조의 팬클럽이었다. 싸이월드 카페를 들락거리며 게시물을 열심히 읽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을 읽고 감상문을 쓰는 이벤트가 기억난다. 밤새워 글을 썼지만 등수 안에 들지는 못했다. ‘요조’라는 이름은 <인간 실격>에서 따왔다. 주인공 이름이 오바 요조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와 함께한 《My Name is Yozoh》(마이 네임 이즈 요조)와 첫 정규 앨범 《Traveler》(트래블러)를 들었을 때 소설 속 주인공의 성격과 그의 음악이 대조된다고 느꼈다.
그런데 요조의 두 번째 정규 앨범 《나의 쓸모》를 들으며 오바 요조가 떠올랐다. 그는 표제작인 <나의 쓸모>에서 존재 이유를 묻는다. “사실 내가 별로 이 세상에 필요가 없는데도” 살아가는 이유를 묻는다. 피아노 반주에 전자기타 소리가 뒤섞이며 곡은 점점 고조된다.
정규 1집과 정규 2집 사이의 먼 거리를 헤아린다. 두 눈을 감고 사막을 건너는 한 사람이 그려졌다. 산다는 것에 관해 묻다보면 막막해진다. 하지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질문하지 않는 철학적 진공 상태에 빠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외로워지지 않으려면 계속” “앞으로든 뒤로든”(<안식 없는 평안>) 걸어야 한다. 잊힐 것이 뻔하더라도 써야 하고 쓸모없더라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이십 대에 부른 노래를 다시 부르는 삼십 대의 요조에게 뭉클한 마음이 드는 것은 그가 아득한 물음을 품고 계속 노래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지인 시인
유튜브 링크 : 요조 <나의 쓸모> 스페이스공감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6mh8q45jBjI
*너의 노래, 나의 자랑: 시를 통해 노래에 대한 사랑을 피력해온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최지인 시인의 노래 이야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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