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어산지, 유죄 인정하고 석방 ‘빅 딜’···14년 도피 인생 끝

윤기은 기자 2024. 6. 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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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도피 생활···이날 구치소 나와
위키리크스 “국민의 알 권리 위해 혹독한 대가”
2011년 12월5일(현지시간) 위키리크스 사이트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가 런던고등법원에 출석하기 전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세기의 폭로자’라 불린 위키리크스 사이트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본명 줄리언 폴 호킨스·52)가 14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다. 그는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를 대량 유출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그간의 영국 구금 생활을 복역 기간으로 인정받기로 미국 법무부와 합의를 봤다.

AP통신은 24일(현지시간) 미국 법무부가 군사·외교 기밀문서 유출 등 혐의를 받는 어산지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그를 석방하는 조건의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을 했다고 보도했다.

미 검찰은 오는 26일 북마리아나 제도에 있는 미국령 사이판의 법원에서 어산지에 대해 62개월 형을 구형할 예정이다. 다만 어산지는 징역형 판결을 받더라도 바로 석방될 예정이다. 미 법무부가 어산지가 영국 교도소에 갇혀있던 기간을 복역 기간으로 인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이 사이판으로 정해진 이유는 어산지가 미국 본토에 가는 것을 반대하고 있으며, 그가 석방될 장소인 호주와 상대적으로 가까우면서도 미국 재판부가 있기 때문이다.

어산지는 2006년 전 세계 국가 기밀을 폭로하기 위한 인터넷 매체 ‘위키리크스’를 만들었다. 2010년 일어난 중동 등지의 민주화 혁명인 ‘아랍의 봄’도 이 사이트에서 정치 지도층의 적나라한 부패 사실을 공개하면서 촉발됐다.

어산지가 법적으로 문제가 된 시점은 2010년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의 외교·군사 기밀자료 수천 건을 폭로하면서다. 유출된 정보에는 미군 아파치 헬기가 로이터 통신 기자 2명을 비롯한 11명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살해한 사건 등 미군의 굵직한 비위 사실이 담겨 있었다. 호주 출신인 그는 미 육군 정보분석가 출신의 첼시 매닝을 통해 이 같은 기밀자료를 입수했다.

폭로 이후 어산지는 긴 도피 생활을 지속했다. 2010년부터 스웨덴 당국은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영국에 있던 그를 송환하려 했다. 그러자 어산지는 2012년 주영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해 망명했다.

그 사이 미국 정부는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간첩법 위반 등 총 18건의 혐의로 어산지를 기소했다. CNN 등 미 언론들은 그의 혐의가 모두 인정됐을 경우 최대 175년의 징역형이 나올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기소 이후 에콰도르 행정부는 2019년 어산지의 망명을 철회했다. 주영 에콰도르 대사관은 영국 경찰이 대사관에 들어오도록 문을 개방했고, 어산지는 영국 법원의 스웨덴 송환 명령에 응하지 않고 도주한 혐의로 체포됐다. 어산지는 체포 이후 이날까지 런던 남동부에 있는 벨마쉬 교도소에 갇혀 있었다. 미국 정부와 어산지는 영국 법원에서 범죄인 송환을 두고 지금까지 법정 공방을 벌여왔다.

미국 정부는 영국 법원에 어산지를 자국으로 송환해달라며 제소했고, 어산지 측과도 여러 차례 협상을 벌여왔다. 그러다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어산지의 기소를 중단해달라’는 호주 정부의 요청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뒤 협상은 급물살을 탄 것으로 알려졌다.

어산지의 폭로는 ‘국가 안보’와 ‘언론 자유’가 허용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관한 물음을 전 세계에 남겼다. 시민단체는 그의 폭로가 공익에 부합한다며 미국 행정부가 수정헌법 1조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미 행정부는 그의 폭로로 파병 군인이 위험해지고, 국가가 안보 위협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합의대로 재판이 마무리되면 내부고발 신화와 함께 세계적 주목을 받은 어산지의 도피행각이 끝난다. 미국, 유럽, 남미, 호주 등 여러 대륙에 걸친 갈등도 일단락된다.

위키리크스는 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성명에서 어산지가 이날 구치소를 나와 비행기를 타고 영국을 떠났다고 밝혔다. 위키리크스는 이번 합의를 환영하면서 “위키리크스는 정부의 부패와 인권 침해에 대한 획기적인 폭로 기사를 발행해 권력자들의 행동에 책임을 물었다”며 “줄리언은 편집장으로서 이러한 원칙과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고 말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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