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소소칼럼]

김예윤 기자 2024. 6. 2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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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선정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1위’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지난주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혹시 짬 날 때 둘러볼 곳이 있을까 ‘자카르타 여행’을 검색해봤다. 여행지로서의 자카르타는 악평이 자자…아니 그냥 평이 없었다. 단어를 ‘여행’에서 ‘출장’으로 바꾸자 후기가 쏟아졌다. 최악의 교통체증 경험과 비즈니스호텔 숙박 후기가 대다수였다. 정말 일만 하다 오는 곳인가 보구나, 싶었다.

유튜브 〈EBS 교양〉 채널 캡처.

유튜브에서 하릴없이 내리던 스크롤을 멈춘 건 이 문구였다.

‘CNN 선정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1위.’

언젠가 미국 CNN 방송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1위’로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인 ‘른당(Rendang)’을 꼽았다는 것이다. ‘CNN에 따르면…’ 해외 매체를 인용할 때 이곳이라면 안심하고 쓰는, 미국 유수의 방송사. 른당을 소개하는 콘텐츠 열에 예닐곱은 저 문구를 앞세우고 있었다.

소고기를 코코넛 밀크에 재우고 마늘, 생강, 레몬그라스 같은 향신료로 만든 커리 소스를 부어 장시간 조린 요리라. 글로만 먹어도 입 안에서 부드럽고 달짝한 인도네시아식 갈비찜이 느껴지는 듯했다. 백종원 아저씨까지 이렇게 말했다니 꼭 먹어봐야 할 것 같았다. 출장지에서 할 일이 생겼다.

이럴 리 없는데…

출장 셋째 날 점심. 드디어 ‘세계 1등’ 음식을 접할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나라로 치면 뷔페식 기사식당쯤인 곳이었다. 열대성 스콜이 퍼붓는 정오, 반(半) 노천 식당의 공기는 덥고 눅눅했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그 온도와 습도를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담아 강렬한 향신료에 굽고 튀긴 음식들이 담겨 있었다. 사실 아주 먹음직하게 보이진 않았다.

이리저리 안전해 보이는 음식들을 고르던 중 눈에 익은 음식을 발견했다. 적갈색 양념에 조려진 소고기. 른당을 담는 내게 동행한 현지 교포가 덧붙였다.

“그게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래요.”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현지 식당에서 먹은 른당. 왼쪽 위 적갈색 양념 소고기 덩어리.

이럴 리 없는데. 자를 때도 고깃결이 거칠다 싶었는데 입 안에서 씹히는 고기가 질겼다. 짰다. 그나마 맵싸한 맛에 먹을수록 밥반찬 역할은 톡톡히 해줬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문장으로 맛을 잘 표현해내지 못한다. 어느 나라의 전통 음식을 ‘맛없다’고 깎아내리기도 좀 그렇다. 다만 확실하게 느낀 건 이 음식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데 동의하긴 어렵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이 사실이 순순히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무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데 이렇게 쉽게 무너질 리 없어. 여긴 딱 봐도 대단한 맛보다는 끼니 해결하는 식당이잖아. 진짜 잘 요리한 른당은 뭔가 다를거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레스토랑에서 나온 른당

그렇게 희한한 미련을 안고 다음 날 저녁 식당을 정하는 데 신중을 기했다. ‘수준급 른당을 맛볼 수 있다’는 코멘트에 시내에 꽤 값나가는 식당을 찾았다. 정갈하게 담겨나온 른당은 과연 전날보다 훨씬 맛있어 보였다. 부드러워 보이는 살코기를 집었다.

맛있었다. 물론 맛있었다. 따뜻했고 양념도 촉촉하고 간도 덜 셌다. 하지만 ‘세계 1등’을 주기엔 여전히 아리송했다. ‘엄마가 압력밥솥에서 푹푹 쪄낸 갈비찜이 훨씬 부드럽고 맛있는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함께 간 동행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문득 궁금해져서 이 화려한 수식어가 달린 원문 기사를 찾아봤다. 2011년 CNN이 페이스북에서 진행한 ‘세계 최고의 음식’ 설문조사다. 3만5000명이 투표에 참여한 일종의 인기 투표였다.

재밌는 건 1위뿐 아니라 2위도 나시고랭, 인도네시아 음식이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당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어릴 때 즐겨 먹던 음식으로 른당을 말했는데, 이때 SNS를 많이 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이 투표에 대거 참여했다’는 해석을 달았다.

진위는 알 수 없지만 1, 2위를 한 국가 음식이 차지했다니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다소 미심쩍은 설문 결과다. 그걸 모르고 같은 음식을 두 번 도전하면서 나는 어떤 경험을 하고 싶었나. ‘세계에서 가장 맛있다는 음식을 먹었는데, 참말로 맛있더라’는 말할 거리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음식뿐인가. ‘세계 3대 노을 명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20선’ 따위의 누가 시작한 지 모를 구전을 도장 깨기를 하면서 뿌듯해하던 장면들이 스친다.

인도네시아에서 른당은 맛이나 위상이나 우리의 제육볶음과 갈비찜 사이로 보면 된단다. 평범한 어느 날 밥상의 메인 반찬일 때도, 생일이나 명절 잔칫상 음식인 날도 있었을 테다. 그렇다면 그들의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른당이 맞을 듯도 하다.

마치 내게 죽기 전 다시 먹고 싶은 ‘세젤맛(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꼽으라면 내가 좋아하는 감자가 두툼하게 들어간 엄마의 된장찌개, 친구들과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던 학교 앞 분식집 떡볶이 같은 것들을 이야기할 것처럼.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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