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 美조선소 인수에 허 찔린 HD현대重?…MRO 놓고 또 충돌

허인회 기자 2024. 6. 2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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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력 없는 MOU”…HD현대重, 계획 수정 불가피
폴란드·호주서도 수주 경쟁…日은 원팀으로 승부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놓고 경쟁 중인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HD현대중)이 해외에서 묘한 관계가 됐다. HD현대중이 업무협약(MOU)을 맺은 미국 조선소를 한화오션이 인수했기 때문이다. 해당 조선소를 발판 삼아 미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 시장에 진출하려했던 HD현대중의 계획 수정은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다. 

먹거리를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두 기업의 경쟁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수주를 위해 컨소시엄 등 협력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감정의 골 때문에 서로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화그룹은 지난 20일(현지 시각)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21일 밝혔다. 사진은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 전경 ⓒ한화그룹 제공

HD현대중과 MOU 체결한 조선소를 한화가 인수

한화그룹의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가 방산업계에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한화는 지난 21일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인수 금액은 총 1억 달러(약 1380억원)로,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이 지분을 각각 60%, 40%씩 나눠 갖는다.

필리조선소는 상선을 전문적으로 건조하며 미 해군 수송함의 수리·개조 사업도 맡고 있다. 이번 인수로 한화가 미국 상선 및 방산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 함정 산업 생태계 쇠퇴로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문턱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필리조선소가 MRO 수주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한화는 기대하고 있다. 미 함정 MRO 규모는 연간 20조원 수준이다.

이번 인수는 방산업계 경쟁자인 HD현대중으로선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HD현대중이 지난 4월 미국 정부의 함정·관공선 MRO 사업에 대한 MOU를 체결한 곳이 필리조선소이기 때문이다. HD현대중은 올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당시 MOU에 대해 "필리조선소에 함정 설계를 지원하고 기자재 공급하는 이 협력을 기반으로 미국 내 미국 관공선 또는 미국 함정을 신조 건조, MRO 사업 등에 직접 참여가 가능하게 됐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아울러 이 MOU를 기반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 MRO사업을 더 고도화시키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한화오션의 인수로 인해 상황이 다소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두 기업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개념설계 유출사건을 놓고 고소·고발을 하는 등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리조선소를 매개로 협력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일단 한화오션은 향후 협력 여부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매도인 측으로부터 HD현대중과의 MOU는 구속력이 없는 형태(non-binding/non-exclusive)의 합의 문건이란 확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다만 HD현대와 K-방산 수출 및 내수시장에서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인수 이후에도 법과 원칙에 따라 국익을 위해 협력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협의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왼쪽 둘째)이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성 장관(오른쪽 둘째)에게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야드와 건조 중인 함정을 소개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홈페이지 캡처

해외서도 수주 경쟁…'원팀' 구성한 일본 넘을 수 있나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업계에선 HD현대중이 미국 내 다른 조선소와의 협력을 추진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카를로스 델 토로 미국 해군 장관은 한화의 필리조선소 인수를 놓고 지난 20일 성명을 통해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미국 해안에 들어오는 첫 번째 한국 조선업체로 한화를 맞이하게 돼 기쁘고, 한화가 마지막 한국 조선업체가 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월 토로 장관은 HD현대중 울산 본사를 방문해 조선 및 특수선 야드를 둘러보기도 했다.

두 기업은 현재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수주 경쟁을 펼치고 있다. 당장 닥친 격전지는 폴란드다. 현재 폴란드 정부는 잠수함 3척을 도입하는 '오르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사업 규모는 3조3500억원 수준이다. 이르면 내달 상위 3개 업체를 선정한 후 내년 상반기 우선협상대상자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업계에선 지나친 경쟁이 국익에는 마이너스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10조원이 걸린 호주 함정 프로젝트 수주전에서 빈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호주 정부는 두 기업을 포함한 5개 조선 기업에 총 11척의 군함 가운데 먼저 건조할 3척의 계획안 제출을 요구한 상태다. 이에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은 미쓰이중공업과 한팀을 이뤘다. 하지만 한국은 HD현대중과 한화오션이 각각 입찰에 참가할 전망이다.

조선업계에선 최초 3척 수주 결과에 따라 나머지 8척 호위함 수주도 사실상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터라 국내 기업간 컨소시엄 구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두 기업간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아울러 제출 시한이 임박한 탓에 협력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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