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차라리 요리사를 뽑지”…육군 참모총장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선발 놓고 ‘와글와글’ [저격]

권선미 기자(arma@mk.co.kr) 2024. 6. 2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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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32] 지난 18일 육군 인트라넷에 한 부사관이 실명으로 육군 참모총장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선발 기준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댓글에는 실명으로 여러 부사관들이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등 군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은 일명 ‘노예사병’으로 불리던 공관병 갑질 문제로 공관병이 폐지된 뒤 해당 자리를 부사관이 대체하면서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번 육군 참모총장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선발 기준이 군 내부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육군 참모총장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자격 기준
상사급을 뽑는 해당 자리는 자격기준이 장기복무자로 체력 1급 이상자여야 하며 올바른 인성 및 품성, 책임감과 도덕성을 겸비한 자로 여기까지는 어느 군인에게나 요구하는 조건입니다.

그러나 우대사항이 △급양관리 실무 경험자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소지자 △양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소지자 △(요리)관련 분야 학위 보유자 △(요리)관련 분야 경연대회 수상자입니다.

공관근무지원자가 아닌 아닌 요리사를 뽑는 듯한 요건을 내건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해당 비판 글을 올린 부사관은 “군 생활을 하면 할수록 부사관은 부대의 잡일을 하는, 그저 용사 대신 활용할 수 있는 소모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댓글에서 한 원사는 “타군도 개인 공관을 위한 요리까지 가능한 ‘상사’급 편제는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밖에도 “그냥 셰프를 뽑는 것 같다” “밥해주는 요리사가 필요한 거냐” “공관병 인권문제로 없어진 직책을 부사관으로 대체한다는 발상이 기분 좋지 않다” “요리사는 쓰고 싶은데 그럴 예산이 안되니 부사관으로 우려먹겠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우리 부대는 취사병도 부족해서 힘들다”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한 부사관은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모집 공고에 이렇게 조리 관련 자격증이나 커리어만 적어서 올린 건 처음”이라며 “요리사를 뽑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군무원이나 민간조리원을 뽑아도 무방한 걸 왜 굳이 현역 부사관을 뽑으려는 건지 모르겠다. 미군도 장성급이 되면 민간 요리사를 둘 순 있어도 부사관을 따로 두고 시키진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 육군은 “공관에서 다양한 군사 외교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그럴 때 조리 등의 부분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역할 “시설물 관리, 지휘관의 공적 임무 수행 지원”
본지의 육군 문의 결과,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의 역할과 근거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2017년 공관병 폐지 후 2022년 국방부는 ‘장성급 지휘관의 지휘 여건 보장을 위한 관사 운영 지원 인원 운용에 관한 지시’를 하달했습니다.

지시사항에는 일부 장성급 장군에게 관사 운영과 운전 지원 부사관을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자료=연합뉴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의 역할은 시설물 관리와 지휘관의 공적 임무 수행 지원 두 가지 임무가 있다고 합니다.

육군은 “이 지시에 따라 각 군이 운영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공관 관리 업무에 ‘요리’도 포함되냐는 질문에 “개인적인 식사, 지인과의 식사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군 전문가들은 이번 육군참모총장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선발 기준이 국방부 지시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에게 요리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모든 비리가 시작되는 매우 적절치 않은 것”이라며 “식사 등은 본인이 해결하는 게 맞는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에게 요리 관련 업무를 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습니다.

군 법무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처럼 채용 기준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내부 규정을 어긋나는 것은 부당하다”며 “행정규칙, 규정은 내부 종사자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요리사를 뽑는 것도 아니고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역할) 규정이 있는데 사고 방식이 10~20년 전에 멈춰 있다”고 일침했습니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징계 대상이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최영기 법무법인 승전 변호사는 “요리 등 심부름을 시키는 행위는 사적 지시”라며 “사적 지시는 품위위반으로 징계대상”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기 싫은데 하도록 만들면 강요”라며 “이는 공개적으로 사적 지시도 할 것이고 강요도 할 것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는 부사관단의 자존심을 해하는 일”이라며 “일반 장교와 부사관은 관사 등에 갈 때 ‘나 좀 차로 태워달라’고 해도 사적 지시로 징계 받는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징계대상이며 군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일침했습니다.

‘장성급 지휘관 지휘여건 보장을 위한 관사 운영 지원인원 운용에 관한 지시’
2022년 국방부는 ‘장성급 지휘관의 지휘 여건 보장을 위한 관사 운영 지원 인원 운용에 관한 지시’를 하달했다고 했습니다.

25일 국방위원회 소속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해당 문건에서, 관사근무지원 부사관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4조(편성 및 운용기준) 관사관리담당(부사관)은 영내·외 단독관사에 단독(1인)으로 거주하고 있는 장성급 지휘관을 대상으로 편성하며, 임무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관사 내·외부의 관리 및 유지 2. 관사관련 안전·보안 등 각종 상황의 유지 및 관리 3. 기타 지휘관의 공적 임무수행(작전지휘, 부대관리, 공식행사 등)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 중 관사 관리와 관련된 임무 제5조(사적운용 금지) 관사운영 지원인원 운용 간 임무 부여시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1. 지휘관의 공적 임무수행과 관련이 없는 임무는 부여할 수 없다. 2. 가족 및 개인 손님을 위한 모든 형태의 지원 임무는 부여할 수 없다.

제4조 편성 및 운용기준에서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은 ‘관사 관리’ 관련 업무만 하게 되어 있을 뿐, 요리와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공관병 폐지 및 민간인 대체 발표
2017년 군 지휘관 공관에 근무하는 공관병들이 지휘관과 가족들의 몸종처럼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이 공관병 제도를 폐지하고 민간 인력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시민단체 군인권센터에서 “박찬주 대장의 가족이 공관병, 조리병들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인권을 침해하고 갑질을 일삼았다”고 폭로한 데 따른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군 지휘관의 사생활 편의를 위한 지원을 세금을 들여 계속하겠다는 뜻이어서 논란이 지속됐습니다.

갑질 행태가 폭로된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 박찬주 대장은 2017년 8월 1일 전역의사를 밝혔습니다.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 박찬주 대장 [자료=연합뉴스]
국방부는 “송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행정·지원 병력을 민간 인력으로 대체하고 현역 장병은 전투부대로 보내겠다’는 군 개혁 방안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투부대에 있어야 할 부사관들이 병사 대신 공관근무지원 자리로 가게 된 것입니다.

잇따른 공관병 갑질 폭로
당시 장성급 군 지휘관 공관에는 근무병, 조리병 등 2~4명의 사병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 당국자는 “애초 공관병을 두는 취지는 지휘관들이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고 있는 형편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공관병 갑질 논란 [자료=연합뉴스]
그러나 지휘관이나 그 가족들이 공관병들에게 사적인 심부름이나 허드렛일을 시키고 폭언까지 하는 등 인권침해 사례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군인권센터는 육군 제39사단에서 벌어진 공관병 폭행 및 가혹행위 의혹을 제기했고, 이 일로 당시 사단장 문병호 소장이 보직해임됐습니다.

2015년에도 당시 최차규 공군참모총장이 본인은 물론 아들까지 운전병을 사적으로 부리다가 갑질 논란을 빚었습니다.

2005년에는 한 특공여단장과 부인이 비닐하우스 관리를 못하고, 멸치를 잘못 보관했다는 이유로 공관병을 폭행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민간인 대체 발표 때도 논란이었는데…부사관으로 대체
당시 공관병을 민간인으로 대체하라는 지시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병사를 지휘관의 사적 허드렛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공관병을 민간인으로 대체한다고 해도 ‘국가가 군 지휘관의 사생활 편의를 위한 지원까지 해야 하느냐’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대표는 “공관병을 민간인으로 대체하는 것에 그치면 사적인 심부름과 허드렛일을 하는 인력을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비용 역시 국가가 계속 부담하는 것”이라며 “국방부 장관의 공관을 제외한 장성급의 공관에 대한 인력 지원은 즉시 중단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자비로 가사도우미를 쓰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자리는 부사관으로 대체됐습니다.

공관병 없앤다더니 부사관 배치한 軍 [자료=연합뉴스]
민간인으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도 논란이었던 공관병 자리를 은근슬쩍 부사관으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2023년 관사 관리 담당 부사관 신설
그렇게 2023년부터 육·해·공·해병대 장군의 공관 관리 임무를 전담하는 관사 관리 담당 부사관 보직이 신설됐습니다.

여단장급 이상 장성급 지휘관 가운데 사단장급 이하는 중사, 군단장급 이상은 상사가 공관 관리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관사 내·외부 관리와 유지, 관사 관련 안전과 보안 상황 유지·관리 등이 주요 임무인데, 영내·외 구분 없이 단독 관사에 혼자 거주하는 지휘관 모두에게 담당 부사관이 편성됐습니다.

장군 공관 관리뿐만 아니라 기존에 장군 운전병이 맡았던 임무도 앞으로는 부사관이 전담해 맡게 됐습니다.

사단장급 이하는 하사, 군단장급 이상은 중사가 운전 담당 부사관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지휘관 단독 거주 여부와 관계없이 편성됐습니다.

시행 전 국방부는 “장성급 지휘관의 공적 임무수행을 보장하고 부대 지휘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관련 조치를 시행하게 됐다”며 “2023년 6월 중간평가 등 후속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공관병 베란다 감금’ 박찬주 전 육군대장 아내, 벌금 400만원 확정
2022년 9월 ‘공관병 갑질 논란’의 당사자인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의 아내 A씨에게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대전법원 전경 [자료=연합뉴스]
공관병을 베란다에 가둬놓는 등 감금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것입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A(63)씨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한 원심(2심) 판결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이를 확정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난 2017년, 군인권센터가 처음으로 폭로해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군인권센터는 “A씨 등 박 전 대장의 가족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공관병의 인권을 침해하고 갑질을 일삼았다”고 밝혔습니다.

다육식물이 냉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공관병을 베란다에 약 1시간 동안 감금했다는 내용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재판 결과, 1심에선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2020년 6월, 1심을 맡은 대전지법 논산지원 형사 1단독 이정호 판사는 “감금 시기와 지속 시간 등에 대한 공관병의 진술이 부정확하고, 일관되지 않는다”며 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이 판결은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혔습니다.

지난 6월, 대전지법 형사항소 5부(재판장 이경희 부장판사) 는 A씨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피해자는 당시 상황과 A씨의 태도에 대해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며 “증인 진술 일부도 피해자 증언과 일치한다”고 밝혔습니다.

2심 판결에 대해 당시 A씨 측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대법원의 판단을 통해 결백을 증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대법원도 2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유죄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공관근무지원 제도 실효성 고민해야”
이런 선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육군 참모총장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 선발 기준 논란이 재차 제기된 것은 권위적인 군 조직 문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또 시대가 바뀐 만큼 공관근무지원 제도의 실효성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때가 됐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최영기 변호사는 “근본적으로 군 문화를 바꿔야 한다. 지휘관은 대우 받는 자리가 아니고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부대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라며 “참모나 부관은 필요하지만 관사 관리 같은 개인적인 허드렛일을 하는 자리는 군인의 업무 영역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문근식 특임교수는 “공관을 본인과 가족들이 관리할 수 있을 만큼 크기를 줄여야 한다”며 “공관을 으리으리하게 지어놓고 국민 세금으로 관리비를 낭비하고,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을 운영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행태”라고 지적했습니다.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은 원래 목적대로 공관 관리만 전념하게 하고, 군사 외교상 연회가 열릴 때는 민간인을 활용하면 된다”며 “필요하면 군사 외교 활동에 필요한 예산을 별도로 책정하는 게 맞는다.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에게 요리를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여진다”고 말했습니다.

김민석 의원은 “공관병 제도가 폐지된 이후 도입된 공관근무지원 부사관제도는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불합리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함이었다”며 “군의 개혁에 앞장서야할 장성들이 오히려 기존의 폐단과 악습을 부사관에게 전가하여 유지하려 한다면, 이제는 공관근무지원 제도의 실효성 자체를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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