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129〉5공의 과학기술 진흥...기술진흥확대회의 설치
“기술만이 살 길입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재임 중에 늘 강조한 말이다. 전 대통령은 과학기술 진흥과 혁신만이 국가 경쟁력의 요체라고 확신했다. 전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재임 중 과학기술 진흥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5공화국 출범 후 정부출연연구기관 통폐합을 시작으로 가전업계의 숙원인 컬러TV 방영, 과학기술부문 5개년계획, 기술진흥확대회의 신설, 정보산업의 해 선포, 반도체공업 육성, 삼성반도체 사업 지원, 초고집적 반도체 공동개발, 제1회 퍼스널 컴퓨터경진대회. 국가기간전산망 사업 추진, 한국남극조약 가입과 남극과학기지 건설,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 제정, 소프트웨어개발 촉진법 제정, 서울올림픽 전산화 성공, 전전자교환기(TDX) 개발과 1가구 1전화 시대 개막 등 각종 과학기술정책을 숨가쁘게 추진했다. 일부 정책은 후유증도 있었다. 그러나 과학기술 진흥정책의 중단이나 좌고우면은 없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회고.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경제전쟁은 '과학기술전쟁'이었다. 과학기술이 낙후한 나라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선진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었다. 경제적 종속관계는 군사적·정치적 종속관계보다 더 무섭다. 경제적 종속에서 벗어나려면 앞선 과학기술을 따라잡아야 한다. 취임 후 내가 강조한 '기술만이 살 길'이라는 명제는 나 개인만의 신념이 아니라 국가적 과제였다. 나는 취임 초부터 과학기술진흥 중심의 국가발전 전략을 세워서 범국민적으로 기술발전 정책을 추진했다.”(전두환 회고록2)
1980년 12월 12일 오후 3시 취임 후 처음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은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에서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과학기술 혁신만이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입니다. 연구 여건이 어렵더라도 과학기술자들이 사명감을 발휘해서 세상에 없는 최신 기술과 첨단 제품을 개발, 우리 경제가 성장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1981년 10월 2일 전두환 대통령은 1982년도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시정연설에서도 “앞으로 과학기술 진흥과 기능인력 개발에 역점을 두겠다”면서 “과학기술 교육에서 기초과학과 실습교육을 강화하고 전문대학 기술교육을 내실화하겠다”고 밝혔다. 공업고등학교 출신인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10월 29일 과학기술처는 이례적으로 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 과학기술 부문 계획을 별도로 발표했다. 과학기술처는 “신기술에 대한 해외 합작투자를 통해 반도체, 컴퓨터, 유전공학 등 첨단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학기술처는 이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정보산업 육성 △연구개발 활동 기반 강화 △연구기술 인력 개발 △기업 기술개발 촉진 △핵심전략기술 토착화 △기초연구와 공공기술 개발 △원자력 기술개발 △산업설비 용역 산업 육성 △국제기술 협력 강화 △과학기술 풍토 조성 등을 중점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성철 당시 과학기술처 정보계획국장의 말. “이 계획은 국가기술 개발 역량을 결집, 고급인력을 대거 양성해서 핵심전략 기술을 토착화하고 과학기술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해 제2의 기술 도약을 이룩하자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1982년 1월 29일 오전 10시 전두환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1회 기술진흥확대회의가 중앙청 중앙회의실에서 열렸다. 이 회의의 설치는 전 대통령 지시였다. 5공화국 과학기술 진흥 정책의 첫 신호탄이었다.
회의에는 국무총리를 비롯해 각 부 장관과 국회·정당 대표, 경제단체장과 금융기관 대표, 연구기관과 학계 대표, 산업계 대표, 언론인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정오 전 과학기술처 장관의 생전 증언. “이 회의는 과학기술 진흥과 고급두뇌 양성이라는 국정 기조 아래 각 기업의 연구 상황을 구체적으로 점검해서 후속 대책을 매분기 열린 회의에서 수립했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 기업들이 혼연일체가 돼 과학기술 한국 구현에 주력했다.”
최영환 전 과학기술처 차관(당시 과학기술처 진흥국장)도 “기술진흥확대회의는 5공의 기술 드라이브 정책을 강력히 뒷받침한 주력 엔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수출입국을 뒷받침한 '월례무역진흥확대회의'와 견줄 수 있는 국가적 행사였다”고 회고했다.
기술진흥확대회의는 1987년까지 모두 12회 열렸다. 회의는 전 대통령의 강력한 과학기술 진흥 의지를 바탕으로 각 부처와 기업들이 기술혁신과 고급두뇌 양성에 적극 참여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정부는 1984년부터 기술진흥심의회를 설치·운영했다. 과학기술처 장관이 위원장직을 맡고 관련 부처 차관과 각계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1987년까지 모두 15회 열려 기술혁신 시책과 범부처 간 협조체제를 정립했다.
1983년 1월 29일. 과학기술처는 1983년을 '정보산업의 해'로 선포했다. 정보화 시대를 향한 담대한 도전이었다.
이정호 과학기술처 장관은 이날 오전 10시 열린 기술진흥확대회의에서 “세상은 제3의 물결인 정보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산업을 중심으로 한 정보산업이 엄청난 미래산업으로 등장하고 있다”면서 “반도체, 컴퓨터, 정밀화학, 유전공학 등 핵심 전략기술 개발에 올해부터 5년 동안 3000억원을 집중 투자해서 1980년대 말 일부 기술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했다.
1984년 4월 22일 서울 잠실 실내 체육관에서 국내 최초로 제1회 퍼스널 컴퓨터 경진대회가 열렸다. 이 행사는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실이 기획하고 추진했다. 시·도 예선자만 6300여명에 달했다. 예선을 통과한 초·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일반인 등 300명이 본선에서 기량을 겨뤘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전국에 경진대회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시·도별, 기업체, 행정 부처까지 자체 경진대회를 열어 정보화 발걸음을 재촉했다. 경진대회는 6회까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개발센터에 이어 시스템공학연구소가 주관했다. 1996년부터는 한국정보올림피아드로 명칭을 변경했다. 컴퓨터 경진대회는 컴퓨터 사용 확산과 정보화 촉진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1983년 7월 22일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국가기간전산망 계획'을 보고받았다.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이 일은 대통령이 추진하는 사업으로 생각하고 적극 추진하시오.”
이 사업은 국가 정보화의 새 지평을 여는 일이었다. 그동안 부처별 기관별로 각자 운영하던 전산화 사업을 행정망, 금융망, 교육연구망, 국방망, 공안망 등 5개 기간전산망으로 통합 운영하는 거대 사업이었다. 이 일도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실이 앞장섰다. 이를 위해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1986년 1월 한국전산원(현 NIA) 개원, 5월 12일 국가기간전산망과 정보화사회 촉진법을 제정했다.
정부는 1986년 12월 31일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법률 3920호)을 제정, 공포했다. 이 법은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창작 의욕 고취와 공정한 거래를 유도했고,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촉진했다. 1987년 12월 4일에는 소프트웨어개발촉진법을 제정, 공포했다.
1987년 7월 15일 오전 10시 청와대 대회의실에서는 전 대통령 주재로 제1회 국가전산화확대회의가 열렸다. 회의에는 김정렬 국무총리, 김성진 전산망조정위원장, 각 부 장관과 차관, 국회 상임위원장, 경제4단체장, 산업계와 언론계 대표, 전산 전문가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전 대통령은 이날 “정부는 정보화 고속도로로 불리는 국가전산망 구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다가올 정보화 시대에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국가전산화 사업을 신속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 대통령은 “전산화 사업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이용자에 대한 컴퓨터 교육”이라면서 “모든 국민이 컴퓨터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이를 잘 이용할 수 있도록 국민 컴퓨터 교육을 효과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은 우리나라를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우뚝서게 한 기념비적 사업”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전 대통령의 정책 의지는 초지일관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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