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 ‘화성 화재 참사’ 아리셀 공장, 사고 이틀 전에도 화재 발생…자체 진화 후 119 신고 안해
한국인 사망자 5명으로 늘어…중국 국적 17명, 라오스 1명
22일에도 배터리에 전해액 주입하는 과정서 불 붙어…소화기로 진화한 후 ‘자체 종결’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제 시조카가 공장 2층에서 일하는데 거기서 사고 났다잖아요. 전화도 계속 안돼요"
6월25일 오전 10시8분. 30여 명의 사상자가 나온 경기 화성시의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앞으로 달려온 A씨는 이같이 말하며 울분을 토했다. 함께 온 A씨의 시누이로 추정되는 한 여성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주저앉아 딸 이름을 목놓아 외쳤다. A씨는 "시조카가 (화재가 발생한) 어제도 아침에 출근한 것 같은데 연락이 안 되잖아요"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A씨의 시조카는 사고가 발생한 공장에서 근무한 40대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망자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운데 이들은 가슴을 부여잡고 "어떻게 해야 돼"라며 울부짖었다. 사망자 대부분이 시신 훼손이 심한 가운데 신원 확인이 어려워 유족들도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지 이튿날,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아리셀 공장은 여전히 화학물질이 탄 냄새가 풍겼다. 15초 만에 연쇄 폭발이 발생하면서 화마가 덮쳤던 공장 3동에는 검게 그을린 지붕이 녹아내려 앉았다. 외벽이 벗겨진 건물도 형체가 무너졌고, 떨어져 나온 벽은 구부려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캄캄한 내부는 철근만 앙상한 모습이었다.
지난 24일 오전 10시31분 시작돼 순식간에 번진 불은 이날 오전 8시48분쯤 완전히 꺼졌다. 이번 화재로 인해 현재까지 23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했다.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까지 수색 중이던 실종자 한 명에 대해 오전 11시34분 위치를 확인한 뒤 시신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기존 사망자보다 1명이 늘어난 것이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사망자 중 남성이 6명, 여성이 17명, 국적별로는 한국인이 5명, 중국 국적자가 17명, 라오스인이 1명이다. 이 가운데 시신의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최초 사망자인 50대 남성 B씨(한국 국적)와 소사체로 수습된 40대 남성 C씨로 2명뿐이다. C씨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근로자 명단 확인 등 수차례 확인 작업을 거친 뒤 사망자의 국적 분류까지 마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사망자와 실종자의 국적은 모두 파악됐으나,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사망자 2명뿐"이라며 "DNA 채취 등을 통해 전체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유족들은 참사 현장과 시신이 이송된 5개 장례식장, 경찰서를 떠돌며 가족의 행방을 찾았다. 현재 희생자의 시신은 화성장례문화원·송산장례문화원·화성중앙병원·함백산장례식장·남양유일병원 등 5곳에 분산 안치됐다. 그러나 시신의 훼손 정도가 심한 탓에 신원 확인이 안돼 현재까지도 빈소를 거의 꾸리지 못한 상태다. 희생자의 소지품 등 모든 게 소실된 가운데 유족들이 장례식장을 찾아도 신원 확인을 위해 DNA 채취 및 대조를 경찰서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인근 근로자 "폭발음 아직 생생 "…3일 전에도 화재?
이날 현장에는 아리셀 공장 인근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이들은 전날 사고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화재 현장에서 300미터 가량 떨어진 인근 공장에서 근무하는 50대 여성 남미숙(가명)씨는 "땅땅땅 기관총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며 "밖에서 총격전이 일어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남씨는 "너무 놀라서 잠깐 나와보니까 연기가 순식간에 퍼져 (공장 앞에 이어진) 도로를 꽉 채우고 저희 공장까지도 넘어왔다"고 회상했다.
한편, 아리셀 공장에서 리튬 배터리로 인한 화재가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리셀 관계자는 이날 오후 공장 앞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토요일이었던 지난 22일 오후에도 2동 1층에서 화재가 한차례 발생한 바 있다"고 밝혔다.
당시 불은 작업자가 배터리에 전해액을 주입하는 공정을 하던 중에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때 한 배터리의 온도가 급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했고, 이후 과열로 인해 불이 난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작업자가 이상 현상을 파악하고 해당 배터리를 별도 공간에 비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불이 다른 곳으로 옮겨 붙지 않고 작업자들에 의해 비치된 소화기로 자체 진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체 측은 이같은 상황에도 별도 신고 절차 없이 자체 종결했다. 아리셀 관계자는 "화재 사실을 실시간 보고받고 조치에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서 신고 절차 없이 생산을 재개했다"며 "화재 원인과 규모 모두 어제 화재와는 다른 경우"라고 해명했다. 업체가 119에 신고하지 않고 화재 사실을 쉬쉬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보고받고 조치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업체의 해명과 무관하게 당시 생산한 배터리에 전반적인 결함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전날 발생한 화재 역시 리튬 배터리 1개의 폭발로 인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면서다. 이에 따라 지난 22일 화재 사건을 자체적으로 종결하지 않고, 제품 검수 등 추가 점검을 했다면 이번 대규모 인명피해 사고는 막을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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