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0억원 수주 대박 기대했는데...” 1년 지나 돌연 계약 해지 통보
공시 믿고 기다렸던 소액 주주들만 허탈
“공시 철회 기업은 선행 매매 조사해야”
코스닥 시장에서 대규모 공급 계약을 공시해 주가를 띄운 후 계약을 철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허술한 제도를 이용해 계약 상대나 정확한 계약 금액을 공개하지 않는 호재성 공시를 낸 후, 돌연 취소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뜬소문에 투자했다가 계약 해지 발표 후 주가가 급락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일 이차전지 장비 제조사인 하나기술은 작년 6월 26일 맺은 1724억원 규모의 수주 계약을 해지한다고 공시했다. 회사 연 매출의 1.5배가 넘었던 금액의 공급 계약이 무산됐다는 사실을 1년이 지나서야 공개한 것이다. 계약 해지 공시 이후 주가는 20% 넘게 하락해 25일 4만900원에 마감했다.
심지어 하나기술이 이번에 계약 해지 공시를 하면서 공개한 발주처는 구글에서 검색 결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중국 회사로 드러났다. 계약 발표 후의 과정이 깜깜이로 진행되는 동안 매출이 늘어날 거라 믿고 기다렸던 주주들은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1년 전 공시 당시 하나기술은 계약 상대의 영업 비밀 보호 요청을 이유로 아시아 지역 이차전지 제조사라고만 기재했다. 증권가에선 계약 상대가 전 세계 1위인 중국 CATL로 추정된다는 추측이 퍼졌다. 이런 소문이 퍼지면서 하나기술 주가는 한 달 만에 7만원대에서 13만원대로 치솟았다. 주가가 오르면서 싼값에 취득했던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투자자들이 급증했다. 전환사채란, 사전에 조건을 정해 발행사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특약이 붙어있는 채권이다.
하나기술 전환사채 보유자들은 공시 이후 3개월 동안 13차례에 걸쳐 255억원 규모의 주식으로 바꿨고, 전환한 주식을 바로 매도해 두 배 이상의 차익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공시 제도를 운영하는 한국거래소 측은 “판매·공급 계약 공시가 있으면 상장사에서 계약서와 발주처 정보 등을 받아 확인한다”면서 “검토 단계에서 회사가 요청한 경영상 비밀 유지 필요성이 인정되면 지정된 공시 유보 기한까지 거래 상대 비공개를 허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일판매·공급계약은 규정상 체결일 다음 날까지 공시해야 하기 때문에 거래소가 시간적으로 내용을 모두 확인하기엔 한계가 있다. 서류상 문제가 없으면 그대로 공시가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거래소가 투자자 보호는 뒷전에 둔 채, 제도 개선에 소극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강력한 사후 제재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판매·계약 공시 등을 철회할 경우, 내부 정보를 활용한 선행 매매 여부 등을 확인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4일까지 코스닥시장에서 단일판매·공급계약 공시 후 불이행·번복·변경을 이유로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상장사는 10곳에 달했다. 이 기간 전체 건수의 약 20%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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