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대 7 원구성’ 수용한 與…입법독주 막을 마지막 카드는?
“거부권 정국엔 국민 피로도…野 독주에 역풍 불 수도”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국민의힘은 (7개 상임위원장직을) 줄 때 받아먹길…"
민주당이 국회 11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선점한 뒤 국민의힘에 남은 7개 상임위원장을 받으라며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했던 이 발언이 현실이 됐다. 상임위 핵심인 법제사법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을 두고 여야 협상이 끝내 결렬되자 국민의힘은 남겨진 7개 상임위원장을 수용하기로 했다. 남은 7개 상임위원장이라도 받느냐,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넘기고 전면 투쟁에 나서느냐의 갈림길에서 현실론을 택한 것이다. 안보와 경제에 관련된 상임위라도 가져와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계산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빈손' 성과에 사의를 표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원내에서 대야 투쟁 강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당으로선 '대통령 재의요구(거부)권' 외에는 거야의 입법 독주를 막을 마땅한 카드가 없는 상황이다. 21대 국회처럼 '단독입법→거부권' 국면이 이어질 경우 국민 피로도만 높일 것이라는 부담도 크다.
與 '국회 보이콧' 철회했는데…野 '2특검+4국조' 압박 시동
국민의힘은 지난 24일 의원총회를 통해 '국회 보이콧'을 중단하고 민주당이 남겨놓은 상임위원장직(▲외교통일위원회 ▲정무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정보위원회 ▲국방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을 받기로 결정했다. 22대 국회가 개원한지 25일 만이다. 보이콧 만으로 더 이상 민주당의 입법 독주와 청문회 강행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또 당내에서도 입법권이 없는 특별위원회 활동에 한계가 있다는 불만이 제기돼왔다.
그간 국민의힘은 국회 원구성 협상에서 관례상 법사위원장·운영위원장은 여당이 맡아야 한다고 촉구하며 보이콧을 이어왔다. 이들은 차선책으로 법사위원장·운영위원장을 여야가 1년씩 번갈아 가며 맡는 안까지 함께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요지부동으로 국민의힘 제안을 모두 거절해왔다. 결국 대야 협상을 주도한 추경호 원내대표는 초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책임을 지는 의미로 표면적 원내대표직 사의까지 표명했다.
추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이 상임위에서 그들 입맛대로 모든 것을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께 돌아갈 것"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이를 막아야 한다는 집권여당의 책무가 제 가슴을 때렸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폭주를 막기 위해 국회 등원을 결심했다. 7개 상임위원장을 맡아 민생 입법에 집중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관련해 대통령실도 복수 매체를 통해 "충정 어린 결단"이라고 평가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국민의힘이 원내로 복귀해도 과반의석을 독점하고 있는 민주당의 독주를 막을 카드가 별로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상임위의 의결 법안을 한 번 더 심의하는 권한을 가진 법사위원장은 물론, 대통령실을 피감기관으로 둔 운영위원장 자리를 야권에 넘겨줬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등 주요 상임위원장도 넘어가면서 방송개혁 등 주요 현안의 주도권도 민주당이 쥐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이미 '2특검+4국조(국정조사)' 카드를 꺼내며 정부여당을 향한 공세에 나섰다. 이들은 앞서 야권 단독으로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어 의결시킨 '채상병 특검법'을 7월 초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또 21대 국회에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폐기시킨 '노란봉투법'도 야당 단독으로 상임위에 상정된 상태다. '방송3법' 등 폐기된 쟁점 법안들도 25일 상임위 회의를 통해 일부 부활을 앞두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은 운영위 권한을 바탕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 추진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야권은 오는 7월1일 운영위 회의를 열어 대통령실을 상대로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과 김건희 여사 의혹을 한꺼번에 추궁할 방침이다. 여기에 김 여사 일가가 연루된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은 물론, '방송 장악'과 '동해 유전개발 의혹' 국정조사 등 '2특검·4국조' 내용을 각 상임위에서 동시 추진하면서 윤석열 정부 심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강대강 대치' 21대 국회 데자뷔…"7개 상임위서 민생 성과 내야"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여당으로선 대통령의 '거부권'만이 민주당 독주를 막을 유일한 대안인 셈이다. 이미 대통령실도 지난 11일 민주당이 주요 상임위원장직을 단독 선출한 것에 대해 "민주당이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 민주주의 본령을 외면하고 힘자랑 일변도의 국회 운영을 고집한다면, 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의 명분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며 '거부권 정국'을 예고했다. 21대 국회에서 나타난 '강대강 대치' 국면의 데자뷔인 셈이다.
연이은 '거부권' 행사가 정부여당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한 두 번이지 자주 할 수 없다"며 "총선 민심을 엄중히 받들어 거부권 행사도 앞으로 선별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로선 야당 입법 독주를 막을 방법이 없다"며 "지금 여야 관계는 사실상 '정치내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그나마 7개를 가져간 국민의힘은 현실적으로 잘한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여당이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이 있을까. 박 평론가는 "현재 가지고 있는 상임위 7개를 통해서라도 윤석열 정부에서 이뤄내야 할 민생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카드"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히려 여당이 성과를 만들수록 '민주당의 의회 독주'가 국민들에게 역풍을 받을 수 있다"며 "그러니 야당과 싸우지 말고 '국민과 같이 갈' 생각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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