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공사에 ‘당한’ 윤 대통령…국정브리핑 한번으로 끝내라
정남구 | 논설위원
경제 문제에 대한 접근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을 나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한다. 취임 뒤부터 2023년 말까지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한 시기, 총선을 앞두고 2024년 1월부터 4월 총선 때까지 이어진 ‘민생토론회’ 주재 시기, 그리고 총선 뒤 ‘국정 브리핑’을 새로 시작한 이후다.
비상경제민생회의 시기 대통령은 ‘내가 나서서 경제를 챙긴다’는 자부심과 ‘상저하고’(2023년 하반기에는 경기가 회복된다)라는 자신감에 근거 없이 빠져 있었다. 대통령 지지층에 대한 보은으로 공격적인 감세를 강행했고,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며 정부 지출을 옥죄어 전 정부와 차별성을 강조했다. 경기는 생각처럼 빨리 회복되지 않았다. 고물가·고금리에 민생고가 갈수록 커졌지만 정부는 딴 곳만 보았다. 대통령과 여당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지가 분명해지고, 경제 문제 해결에 대한 무지와 무능이 여지없이 드러난 시기다.
총선을 앞두고 잇따라 연 민생토론회는 마치 ‘대통령은 바꾸지 않되, 대통령 선거를 한번 더 치르자’는 모양새였다. 지금까지 해온 일은 다 덮어두고, “정권을 잡으면 이런 큰일을 하겠다”는 식의 공약을 쏟아냈다. 그린벨트 해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노선 연장, 재건축 규제 완화 등 개발 공약을 쏟아냈다. 여당의 김포의 서울 편입 등 ‘메가 서울’ 공약에 등을 두드려주고,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상속세 개편 등 감세 공약을 더했다. 유권자들은 다시 속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그 많은 공약은 이제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 같은 숙제로 남았다.
총선 패배 뒤, 지지율이 20%대로 한 단계 더 추락한 윤 대통령이 6월3일 ‘국정 브리핑’이란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국민 앞에 섰다. 시각은 8분 전에야 공지됐고 내용도 미리 알리지 않았다. 그렇게 대통령은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대규모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탐사 시추를 승인했다’고 깜짝 발표를 했다.
한국석유공사에는 동해 석유·가스전 탐사 시추를 승인받아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석유공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무분별한 자원개발 투자로 막대한 손실을 봤다. 그 여파로 2023년 말 부채가 자산을 1조3486억원이나 초과한다. 1998년 7월 탐사 시추에 유일하게 성공한 동해1 가스전은 부존량이 적어 2021년 말 생산을 종료했다. 그해 정기국회에 석유공사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공사가 진행 중인 해외 사업 26건 중 탐사 단계인 사업이 7건인데 2018년을 마지막으로 탐사 시추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이후 신규 탐사 사업이 없었고, 진행 중이던 탐사 사업도 사업을 철수했거나 현지 사정으로 잠정 중단된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2007년부터 동해 탐사를 함께해온 오스트레일리아 기업 우드사이드가 조광권을 6년 앞서 포기하고 2023년 1월 조기 철수했다. 뭔가 조처가 없다면, 거센 구조조정 압력에 내몰릴 처지였다. 석유공사는 지난해 6월 심포지엄을 열고 ‘광개토 프로젝트’의 착수를 선포했다. 이 프로젝트의 세가지 목표 가운데 하나가 ‘체계적인 탐사작업 수행으로 최소 동해1 가스전 4배 규모(1조 세제곱피트) 이상의 신규 가스전 발굴’이다. 석유공사는 그 뒤 1년도 되지 않아 7개의 유망구조를 발견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국정 브리핑이란 행사를 만들어, 1곳에 1억달러가 든다는 시추공을 최소 5곳 뚫는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면서 거대한 풍선을 띄웠다. 정상적이라면 “최대 140억배럴이 묻혀 있을 수 있다”고 뻥튀기를 할 게 아니라 대규모 예산이 투입될 석유공사의 탐사 시추 계획이 합리적인 것인지 철저히 따져보는 게 먼저였다. 그러지 않았다는 게 속속 드러났다. 대통령은 당한 것이다.
1980년에 나온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에 푹 빠져 있는 윤 대통령이라지만 총선 참패 뒤 국정 수습 카드로 꺼내 든 게 박정희 감수성에 젖은 유전개발 띄우기라는 건 놀라운 일이다. 대통령에게 등 돌린 국민의 마음을 어찌 그리 모를 수 있는가. 이걸 보고 나는 이 정권에 어떤 기대나 희망을 거는 것은 이제 사치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국정 브리핑을 기획한 참모를 벌주고, 국민을 절망에 빠뜨릴 두번째 국정 브리핑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비상’한 경제 상황은 계속되고 대통령은 지금 막다른 길에 서 있다. 여전히 어깨에 잔뜩 넣은 힘을 빼고 국민 앞에 고개를 숙여야 길이 열린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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