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덕대 오석륜 교수 ‘한국인이 꼭 알아야 할 일본 시인‘ 출간
시인이자 번역가 오석륜 교수, 시마자키 도손(1872-1943), 기타하라 하쿠슈(1885-1942) 등 일본 시사(日本 詩史)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10명 소개
한국 근현대시의 풍요로운 작품들은 당대의 문화와 긴밀하게 얽혀 있기에, 저자는 “이 작업이 이루어지면 한일 양국의 시적 관련성 혹은 영향 관계를 규명하는 데도 적지 않은 바탕이 될 것이다. 그런 긍정적 효과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한국인이 꼭 알아야 할 일본 시인’에는 일본의 근현대를 대표하는 시인 열 명을 선별했다. 그 기준은 첫째, 각각 일본 시사(日本 詩史)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시인들이라는 점, 둘째, 이들의 작품이 정서적으로 한국인과도 잘 어울리며, 한국 시단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분명, 한국 시를 읽어온 독자들에게는 영향 관계 속에 놓인 일본 시의 묘미를 찾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저자가 한국 독자에게 알리고 싶은 시인들은 10명.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1872-1943),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 1885-1942),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 1883-1956),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郎, 1886-1942), 니시와키 준자부로(西脇順三郎, 1894-1982), 다나카 후유지(田中冬二, 1894-1980), 미요시 다쓰지(三好達治, 1900-1964), 아유카와 노부오(鮎川信夫, 1920-1986), 시라이시 가즈코(白石かずこ, 1931- ),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郞, 1931- )이다. 태평양 전쟁 이후(1945년)에 태어난 시인은 다루지 않았다.
시마자키 도손은 일본 문학사에서 근대시를 여는 시인으로 평가받으며 후대의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꼭 알아야 할 시인이다. 소설가 김동인이 스스로 시마자키 도손의 제자라고 밝혔을 정도로 그는 우리에게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낭만적 서정 시인으로 일본 근대시의 여명을 알리는 존재였고, 근대시의 일인자였다.
기타하라 하쿠슈는 일본 시사에서도 일본인에게서도 ‘국민 시인’으로 평가받는 존재다. 일본인들에게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후에 태어난 시인 중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친 사람을 한 명 꼽으라고 하면, 기타하라 하큐슈가 가장 많이 언급될 것이다. 그는 일본의 근대 이후의 시단에 시인으로서의 천재적 재능을 펼친 인물이었다. 한국 시단에 ‘모더니즘’이라는 문학사조를 알린 정지용은 당시 일본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 재학 중이었는데, 그때 맺어진 기타하라 하쿠슈와의 인연은 아직도 회자하고 있다. 지금도 정지용 시인의 고향 옥천군과 하쿠슈의 고향 야나가와시가 정기적인 교류를 행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두 사람의 인연을 말해 준다. 저자도 2019년 옥천군 관계자와 야나가와시를 방문하여 하쿠슈와 정지용의 시적 연관성을 살피고 온 적이 있다.
다카무라 고타로는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일본 근대시단에서 그 명성이 매우 높다. 그를 국민 시인의 반열에까지 올려놓는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각가로도 활동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다카무라 고타로는 일본 근대시사에서 극히 이례적인 예술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상주의적 경향과 독특한 시적 세계를 펼친 시인이라는 점에서 기억해야 할 시인이다.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일본 근대시에서 구어 자유시의 완성자로 알려져 있다. 근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여 ‘일본 근대시의 아버지’라는 호칭이 붙기도 한 시인이다. 일본 문학사에서 말하는 구어 자유시란 문어체로 쓰인 시가 아닌 시, 즉, 고전적인 말을 사용하여 지은 시를 가리키는 문어시에 대한 대립 개념이다. 다카무라 고타로에 의해 추진된 구어 자유시는 사쿠타로에 의해 그 완성을 보게 된다. 우리가 그의 시를 읽을 때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은 그가 단순히 구어 자유시의 영역을 넘어 ‘언어가 가진 음악성을 살렸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출간한 시집마다 새로운 시 형태에 자신만의 ‘독자적인 시론을 담아내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니시와키 준자부로는 일본 시단에 주지주의 시 보급자로서의 역할이다. ‘일본에 주지주의 시를 도입하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인물’, ‘근대시를 현대시로 변용시킨 최대의 시인’, ‘현대시의 대종(大宗)’과 같은 수식어가 주류를 이루는 것은 그의 문학사적 평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에게 특히, ‘대종’이란 호칭이 붙게 된 것은 일본 문학사에 큰 바탕이 된 인물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구어시의 완성자로 평가받으며 일본에 근대시의 뿌리를 내렸다면, 준자부로는 기존의 독자적인 쉬르레알리슴(surrealism) 이론을 전개하며 모더니즘 문학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준 인물이다.
다나카 후유지는 상대적으로 일본 시단에서 그 비중이 약해 보이지만, 일본인이 좋아하는 시인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백석 시인에게 영향을 준 점을 고려하여 검토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향수’를 주제로 하거나 그와 관련된 것을 소재로 하여, ‘자연이나 생활에 바탕을 둔 시작(詩作)’에 천착해 왔다. 일본을 대표하는 ‘향수의 시인’으로서의 시적 매력과 함께 한국인이 다나카 후유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와 백석 시인과의 영향 관계 때문일 것이다. 백석이 습작기에 다나카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충분히 살펴볼 만하다.
미요시 다쓰지는 일본인에게서 기타하라 하쿠슈 이후의 ‘국민 시인’으로 불릴 만큼 그 지명도가 높다. 특히 한국과 한국인에 관한 작품을 다수 남겨 우리에게는 흥미로운 시인이고 연구 대상이다. 일본 문학사는 그가 일본의 문화적 전통에 충실한 정서와 섬세한 감각을 바탕으로 풍부한 서정성을 펼쳐 보였다는 점. 그리고 프랑스 근대시의 영향을 받아 주지적 경향의 작품을 보여 준 시인이라는 사실에 시적 위상을 부여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 시인에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이유는 한국인의 정서와도 잘 어울리는 서정성과 주지적 경향의 시 세계를 보여 주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및 한국인’과 관련된 작품을 다수 남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다쓰지와 한국과의 인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유카와 노부오는 한국에 일본 시가 잘 소개되지 않는 탓에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시인이다. 그러나, 일본 문학사에서 전후(戰後) 시단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유카와 노부오’라고 답하는 독자들이 상당히 많다. 무엇보다 그는 일본의 전후 시단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시 잡지 《황지(荒地)》의 이론적 지도자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태평양 전쟁으로 한때 단절된 현대시의 전개를 이론과 창작을 통해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헌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 문학사에 기여한 그의 문학사적 업적의 핵심이다.
시라이시 가즈코는 전후에 활동한 대표적인 여류 시인으로, 남성 시인이 표현하기 어려운 여성 특유의 감각이 돋보이는 점이다. 일본에서 그 인지도가 매우 높고 일본 시단과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시인이다.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활동하고 있는 이 시인의 시 세계가 보여 주는 가장 뚜렷한 특징은 ‘자유분방하다’는 것이다. 다양하게 시의 스타일을 시도하여 음악성도 있고 감각적인 작품도 많다. 또한, 해외 시인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일본에만 정주하지 않는 활동 성향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일본의 풍토로부터 초월한 신화적인 시적 세계는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자질을 개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라이시 가즈코의 시적 특성을 설명하는 표현의 하나는 그가 일본에만 마무르지 않고 수많은 해외 시인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시 세계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최근 타계한 한국의 김광림 시인과의 인연에도 주목하자.
다니카와 슌타로는 전후에 활동하고 있는 시인 중에서 가장 활발하고 인기 있는 시인으로, 그 인지도가 아주 높다는 점과 최근 한국의 신경림 시인과 함께 시집을 출간하여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카멜레온처럼 여러 작풍(作風)을 구사해온 이색적인 시인이라는 평가와 함께, 그의 시는 여전히 보통의 사람들이 쉽게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소통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책은 이러한 시인들의 각각의 특징을 토대로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각각의 시인의 대표작 혹은 시대적 특성을 반영하는 작품들이다.
저자는 “더 늦기 전에 한국인에게 ‘한국인이 꼭 알아야 할 일본 시인’을 엄선하여 그들의 시를 소개하고, 시 세계를 조명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소명의식 또는 의무감으로 책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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