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채도 법정이자 보장… 추징금은 굴린돈의 1%였다[히어로콘텐츠/트랩]③-下
<3> ‘강 실장’의 사냥법(下)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 돈을 급한 피해자를 먹잇감으로 삼은 불법사채 조직 총책 ‘강 실장’은 스물셋에 처음 불법사채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뒤를 봐주는 폭력조직이나 전주(錢主) 없이 오직 휴대전화만으로 1000억 원대 불법대출을 굴린 강 실장의 수법은 ‘강 실장의 사냥법(上)’에서 볼 수 있다
● 총책의 아내
얼마를 빌려주고, 누구를 추심하고, 현금은 어디로 배달할지까지. 조직의 모든 의사 결정은 총무팀에서 이뤄졌다. 자금도 총무팀이 관리했다. 총무팀을 이끈 건 ‘강 실장’ 박성훈(가명·31)보다 7살 어린 아내였다. 조직 내부에선 ‘아 주임’으로 불렸다. 총무팀은 이 부부의 지인으로만 채웠다. 이들만 부부의 진짜 이름을 알았다.
법정에서 만난 아내는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죄송하다”, “모든 게 제 잘못”이라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조직원이 기억하는 모습은 달랐다. “악랄했죠. 총무팀 직원 중 아 주임만 전화로 ‘일 이따위로 할 거냐’고 막말을 자주 했거든요, 검거된 이후에야 걔가 총책 와이프라는 걸 알았죠.”
● 비대면 추심의 비밀
수금팀은 매일 낮 12시, 오후 2시, 4시, 하루 세 차례 실적을 보고했다. 부진하면 윗선에서 폭언을 들었다. 심지어 맞기도 했다. 내가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야 했다. 피해자보다 가족을 괴롭히면 더 빨리 돈을 받아낼 수 있었다.
단, 채무자를 직접 찾아가거나 물리력을 쓰진 않았다. 직접 만나면 흔적이 남아 붙잡힐 위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 배신의 왕국
박성훈은 민 실장 시절 조직원에게 감금돼 폭행당한 뒤 돈을 뺏긴 적이 있었다. 그 조직원은 박성훈의 중학교 선배였다. 300만 원만 빌려달라는 부탁을 박성훈이 거절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
강 실장이 된 박성훈은 조직원을 믿지 않았다. 조직 2인자인 서 이사에게도 본명과 나이를 숨기고 대포폰으로만 연락했다.
조직원의 배신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무렵 충북 진천에 있는 수금팀이 잠적했다. 강 실장 몰래 채무자 연락처를 빼돌려 따로 불법사채 조직을 꾸린 것. 강 실장은 인출팀을 언제라도 내칠 수 있는 채무자 출신으로 채웠다. 하지만 이들은 강 실장 조직처럼 치밀하지 못했다. 지인에게 현금 인출을 맡겼다가 흔적을 남기면서 2022년 11월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이 피해자 가족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한 지 2개월 만이었다.
그렇게 강 실장 조직의 존재가 드러났고, 경찰 수사는 윗선을 향했다.
● 가짜 총책들
수사망이 좁혀오자 강 실장은 ‘가짜 강 실장’을 내세웠다. 수거팀 조직원에게 거액을 주겠다며 거짓 자수를 요구했다. 그 조직원은 서울 한 경찰서에 제 발로 찾아가 “내가 강 실장”이라고 자수했다. 박성훈은 그에게 1000만 원 정도를 건네주고 경찰 출신 변호사도 소개해 줬다. 검찰 처분이 나오면 5000만 원을 더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킬 약속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거짓 자수가 탄로 났기 때문이다.
박성훈은 지난해 3월 검거됐다. 서울 서초구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오던 길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전날 필리핀으로 도주하려다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사실을 알고 변호사를 급히 찾았다고 한다.
그는 검거 후에도 빠져나갈 궁리를 멈추지 않았다. ‘석 부장’을 강 실장으로 몰아갔다. 석 부장은 고교 시절 박성훈을 폭행했던 고향 선배였다. 그런데도 강 실장은 그를 핵심 측근으로 부렸다. 돈 앞에선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었다.
올해 2월 14일, 박성훈은 1심에서 징역 8년과 벌금 5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죄목은 범죄단체조직과 대부업법 위반 말고도 범죄수익은닉, 범죄도피교사 등까지 총 7개였다.
박성훈은 항소했다. 변호인은 “죄는 인정하지만 징역 8년은 너무 과하다”며 “가족 재산을 처분해 합의금을 마련했다”고 했다. 박성훈은 1심 선고를 앞두고 피해자 29명에게 10억 원의 합의금을 줬다. 항소심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나머지 피해자와 모두 합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 빙산의 일각
경찰은 8개월간 추적한 끝에 강 실장이 부린 조직원 80여 명뿐 아니라 대포폰, 대포통장 판매자까지 123명을 검거했다. 조직원 대다수는 20대였다. 조직폭력배는 없었다. 경찰이 압수한 대포통장만 300여 개. 그 명세로 파악한 피해자는 1000명이 넘었고, 불법 대출 규모는 1000억 원대로 추산됐다.
강 실장의 수익은 그중 최소 300억 원으로 추정됐다. 그는 월세 1800만 원짜리 서울 성동구 초고급 아파트인 트리마제에 살았다. 람보르기니, 벤틀리, 포르쉐, 벤츠, BMW 등 초고가 외제차 7대를 몰았다.
하지만 법원은 약 37억 원만 불법 대출 규모로 인정했다. 검경에 나와 진술한 피해자가 131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수사팀을 이끈 이정만 경감(현 정선경찰서 통합수사팀장)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피해자 대부분 연락이 닿지 않거나 진술을 거부해 모두 조사하지는 못했습니다.”
강 실장의 경우 대출 원금과 법정 최대 이자(연 20%)를 제외한 약 15억 원만 범죄 수익으로 판단됐다. 현행법에 법정 상한을 초과한 이자는 추징 대상이지만, 원금과 법정이자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그게 불법사채여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박성훈의 추징금은 고작 6억6635만 원이었다. 수익 배분을 정확히 알 수 없어 다른 공범과 똑같이 나눴다. 결국 강 실장은 대포통장에 기록된 불법 대출액의 1%도 내놓지 않게 된 것이다.
공범조차 ‘말도 안 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박성훈보다 먼저 재판받은 한 조직원은 억울하다고까지 했다. “제가 죄가 없다는 건 아닌데요. 저랑 박성훈은 재판부가 달랐거든요. 저는 검사가 구형한 그대로 추징금이 나왔는데, 박성훈은 절반 가까이 깎였더라고요.”
국세청은 지난해 11월부터 박성훈 일가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팀 이정만 경감은 “금을 사 모았다는 진술과 정황을 찾았지만, 끝내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박성훈 변호인 측은 이런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다. 그 정도 자산이 있다면 합의금을 마련하려고 가족 자산을 처분하겠냐”고 되물었다.
이 같은 입장을 전하자 한 조직원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조직이 가장 컸을 때 하루 수익이 1억4000만 원 정도였습니다. 조직 규모가 줄었을 때도 하루 8000만 원은 벌었습니다. 박성훈이 적어도 150억 원 이상은 챙겼을 겁니다. 금으로 월급을 준 적도 있어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불법사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불법사채로 돈 벌기가 그만큼 쉽다는 뜻이었다. 불법사채를 막지 못한 원인과, 한때 불법사채로 몸살을 앓았지만 지금은 달라진 일본의 이야기는 26일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4회에서 볼 수 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
(https://original.donga.com/2024/money1)
‘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
(https://original.donga.com/2024/money2)
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GKw-RO8lUHo)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
▽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
▽영상: 송유라CD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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