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정부, ‘태평양전쟁 침몰 함선’ 유골 30년 만에 거뒀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일본 정부가 태평양전쟁(1941~1945) 당시 격전지였던 남태평양 '트럭섬'(현 미크로네시아 축 제도) 앞바다에서 30년 만에 유골을 수급했다.
요미우리신문은 25일 후생노동성이 지난 13일부터 트럭섬 주변 바다에 침몰된 함선을 조사한 결과, 총 17위의 유골을 수습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외국 바다에 있는 유골을 '수장'된 것으로 취급해 1994년 이후부터 수습하지 않았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인도 대거 강제동원
일본 정부가 태평양전쟁(1941~1945) 당시 격전지였던 남태평양 ‘트럭섬’(현 미크로네시아 축 제도) 앞바다에서 30년 만에 유골을 수급했다.
요미우리신문은 25일 후생노동성이 지난 13일부터 트럭섬 주변 바다에 침몰된 함선을 조사한 결과, 총 17위의 유골을 수습했다고 보도했다. 이달 27일까지 추가로 유골을 수습할 예정이다. 후생노동성은 유골을 일본으로 가져와 유전자 감정을 통해 신원을 조사할 계획이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 해군 기지가 있었던 트럭섬에는 1944년 2월17~18일 미 항모부대의 공격으로 40여척의 일본 함선이 격침됐다. 이 가운데 한 척인 ‘아이코쿠마루’에서 이번에 수습된 유골 17위 중 16위가 나왔다. 앞서 후생노동성은 아이코쿠마루에서 1980년 349위, 1994년 6위의 유골을 수습하기도 했다. 현재 트럭섬의 공식 명칭은 ‘축 제도’(Chuuk Islands)로 미크로네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4개 주 가운데 하나의 섬이다.
트럭섬은 조선인들도 대거 강제동원된 곳이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존된 미군 전투일지를 보면, 1946년 트럭섬에서 일본으로 귀환한 1만4298명 중 조선인이 3883명에 달했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조선인 희생자 유골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일본 정부는 외국 바다에 있는 유골을 ‘수장’된 것으로 취급해 1994년 이후부터 수습하지 않았다. 1994년 일본 국회 답변에서 “바다 자체가 전몰자의 영면 장소라는 인식도 있어 (수습은) 원칙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다이버들이 바다에서 전몰자 유골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린 사진이 확산되면서 ‘존엄성 훼손’ 논란이 커졌고, 일본 정부의 방침도 달라졌다. 2016년 ‘전몰자유골수집추진법안’이 일본 국회를 통과해 유골 수습이 일본 정부의 책임이 됐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은 군과 민간인을 합쳐 약 240만명이 외국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수습된 유골은 112만구에 달하고, 이 가운데 약 30만구의 유골이 바닷속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화성 첫 발화 CCTV…손으로 배터리 옮기려 시도, 35초 사이 연쇄폭발
- 성모병원 ‘휴진’ 유예…정부, 사직 전공의 ‘9월 복귀 특례’ 검토
- 박민 KBS 사장도 행방불명…증인 불출석 탓 고발 수순
- 세계 1위 안세영 “올림픽이 그랜드슬램 마지막 퍼즐…모든 걸 바치겠다”
- 참사 이틀 전 “불났다” 말했는데…아내 잃은 남편 “그때 119 불렀다면”
- 프랑스 총선 D-6…밀리는 마크롱 “극우·극좌 승리하면 내전”
- 국힘 첫 참석 ‘날 선’ 법사위…“의사진행 방해 시 퇴장시키겠다”
- 북한 오물풍선 수도권에 100여개 추락…“위험 물질 없어”
- 파리바게뜨 회장님 파란 수의 입혔다…노조 파괴·부실 수사와 싸운 7년
- 서울 학생인권조례 결국 폐지…조희연 “대법원 제소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