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정부, ‘태평양전쟁 침몰 함선’ 유골 30년 만에 거뒀다

김소연 기자 2024. 6. 2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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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태평양전쟁(1941~1945) 당시 격전지였던 남태평양 '트럭섬'(현 미크로네시아 축 제도) 앞바다에서 30년 만에 유골을 수급했다.

요미우리신문은 25일 후생노동성이 지난 13일부터 트럭섬 주변 바다에 침몰된 함선을 조사한 결과, 총 17위의 유골을 수습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외국 바다에 있는 유골을 '수장'된 것으로 취급해 1994년 이후부터 수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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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트럭섬 앞바다 조사
당시 조선인도 대거 강제동원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지난해 태평양전쟁 당시 트럭섬 앞바다에 침몰된 함선을 조사한 내용을 보도했다. NHK 유튜브 갈무리

일본 정부가 태평양전쟁(1941~1945) 당시 격전지였던 남태평양 ‘트럭섬’(현 미크로네시아 축 제도) 앞바다에서 30년 만에 유골을 수급했다.

요미우리신문은 25일 후생노동성이 지난 13일부터 트럭섬 주변 바다에 침몰된 함선을 조사한 결과, 총 17위의 유골을 수습했다고 보도했다. 이달 27일까지 추가로 유골을 수습할 예정이다. 후생노동성은 유골을 일본으로 가져와 유전자 감정을 통해 신원을 조사할 계획이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 해군 기지가 있었던 트럭섬에는 1944년 2월17~18일 미 항모부대의 공격으로 40여척의 일본 함선이 격침됐다. 이 가운데 한 척인 ‘아이코쿠마루’에서 이번에 수습된 유골 17위 중 16위가 나왔다. 앞서 후생노동성은 아이코쿠마루에서 1980년 349위, 1994년 6위의 유골을 수습하기도 했다. 현재 트럭섬의 공식 명칭은 ‘축 제도’(Chuuk Islands)로 미크로네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4개 주 가운데 하나의 섬이다.

트럭섬은 조선인들도 대거 강제동원된 곳이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존된 미군 전투일지를 보면, 1946년 트럭섬에서 일본으로 귀환한 1만4298명 중 조선인이 3883명에 달했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조선인 희생자 유골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일본 정부는 외국 바다에 있는 유골을 ‘수장’된 것으로 취급해 1994년 이후부터 수습하지 않았다. 1994년 일본 국회 답변에서 “바다 자체가 전몰자의 영면 장소라는 인식도 있어 (수습은) 원칙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다이버들이 바다에서 전몰자 유골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린 사진이 확산되면서 ‘존엄성 훼손’ 논란이 커졌고, 일본 정부의 방침도 달라졌다. 2016년 ‘전몰자유골수집추진법안’이 일본 국회를 통과해 유골 수습이 일본 정부의 책임이 됐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은 군과 민간인을 합쳐 약 240만명이 외국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수습된 유골은 112만구에 달하고, 이 가운데 약 30만구의 유골이 바닷속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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