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제대로 된 반성 못해” 밀양 80개 기관단체장, 20년 전 성폭력 사건 ‘대국민 사과’
경남 밀양지역 기관단체장들이 25일 20년전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전국을 떠들썩게 만든 ‘밀양 성폭력 사건’에 대해 고개를 숙이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밀양 지역 법원·검찰·경찰·교육 기관들은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 참여하지 않았다.
안병구 밀양시장과 허홍 시의회의장 등 80개 기관단체장은 이날 밀양시청 대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공동 사과문을 발표했다.
안 시장이 대표로 사과문을 낭독하고 시의회와 시민단체가 함께 피해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국민께 깊은 사과의 뜻을 전하며 머리를 숙였다.
공동 사과문 발표는 20년 전 성폭력 사건 논란의 중심에 있는 밀양시가 이대로 국민적 공분에 눈을 감고 또다시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이뤄졌다.
이에 밀양시는 지난 7일 ‘밀양 성폭력 사건’에 대해 대책회의를 열고, 유감을 나타내는 공식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안 시장은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올바르게 이끌어야 되는 어른들의 잘못도 크고, 그동안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를 하지 못한 지역사회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피해자 지원과 향후 대책에 대해 “그 무엇보다 피해자의 인권이 존중받고 보호받으며,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밀양지역 기관·단체, 종교계는 이 사건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자발적인 지원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지역 내 사찰, 교회, 천주교, 원불교 등 종교단체는 참회와 반성, 피해자의 치유를 위한 합동 예불과 기도회를 준비하고 있다.
향교·성균관유도회 등 유림단체는 고유제 개최 또는 학교 순회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윤리 의식을 고취한다는 계획이다.
밀양시 성폭력·가정폭력 통합상담소는 이달 말까지 피해자 회복 지원을 위한 성금을 모금해 한국성폭력상담소를 통해 피해자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안 시장은 “시민과 국민 여러분께서도 피해자의 조속한 일상 회복과 밀양시의 자정 노력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달라”고 말했다.
25일까지 밀양경찰서와 김해경찰서에 접수된 신상폭로 피해와 관련한 고소·진정은 140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 중 9명은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며 ‘허위 사실 작성자를 명예훼손으로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집단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사건과 무관한 자신들 사진이 방송에 사용된다며 삭제 요청 민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재까지 수사 대상자(피혐의자)는 53명이며, 이 중 11명을 특정해 수사하고 있다.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은 2004년 12월 밀양지역 고교생 44명이 울산 여중생 1명을 밀양으로 꾀어내 1년간 지속해 성폭행한 사건이다.
이달 초부터 맛집 TV프로그램에 등장한 인물이 온라인 공간에서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당시 사건이 재주목받았으며 ‘사적제재’ 등 논란이 일었다.
사건 당시 수사한 울산지검은 가해자 중 10명(구속 7명, 불구속 3명)을 기소했다. 20명은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나머지 가해자는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아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났다.
김정훈 기자 j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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