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돈 작가 ‘이름 도용’ 사과…개인사 무단 인용 의혹은 반박

임인택 기자 2024. 6. 2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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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따른 충격 고려 못해 사과”
판매 중단 등 후속 조처도 약속
김현지씨 개인사 무단인용은 부인
“스토킹 피해도 제가 직접 겪은 일”
정지돈 작가.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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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41) 작가가 소설 두 종에 이름, 개인사 등을 무단 인용했다고 의혹 제기한 김현지(35)씨에게 공식 사과했다. 소설 ‘야간 경비원의 일기’(2019, 현대문학)는 출판사에 판매 중단 요청, ‘브레이브 뉴 휴먼’(2024, 은행나무)은 출판사와 협의 전제로 가능한 모든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씨의 주장 일부는 적극 반박했다. 창작과 현실 윤리의 갈등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 작가는 25일 자신의 블로그에 “‘브레이브 뉴 휴먼’의 캐릭터 권정현지의 이름을 보고 김현지씨가 받을 충격과 아픔을 깊이 고려하지 못했다”며 “저의 부주의로 벌어진 일이며, 제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김현지씨에게 처음 보낸 메일에서 오해이며 흔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상처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점 역시 깊이 사과드리고 반성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야간 경비원의 일기’의 내용으로 받은 아픔에 대해서도 사죄한다”며 “제 부족함 때문에 김현지씨의 고통을 미리 인지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현지씨는 앞서 23일 정 작가 소설 두 종에 자신의 이름이 이니셜 내지 동명으로 등장하고, 과거 교제 때 정 작가와 나눈 스토킹 피해 경험, 가정사, 연애담 등이 무단 인용됐다고 주장했다. 지난달부터 정 작가와 이메일로 개별 교신하며 사과와 사실 인정 등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공론화됐다.

정 작가는 공식 사과와 판매 중단 등의 조처와 더불어 “오해와 잘못된 사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라며 ‘브레이브 뉴 휴먼’의 인물인 ‘권정현지’ 작명의 과정, 권정현지의 이야기가 김현지씨의 실제 삶일 수 없는 이유 등을 설명했다. 개인사 경우, 구체적으로 작중 인물과 어떤 삶이 일치하는지 언급되지 않았고, 정 작가 역시 권정현지에게 대중들이 보편 공감할 수 있는 특성을 부여했을 뿐이란 것이다. 김씨는 앞서 “사랑을 잘 모르는 어머니에게 헌신하고 가족을 유지해 보려고 평생 노력했던 저의 삶”이 소설(‘브레이브 뉴 휴먼’)에 담겼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자신의 스토킹 피해 경험이 반영됐다고 김씨가 언급한 ‘야간 경비원의 일기’ 속 해당 대목의 경우, 정 작가는 “제가 직접 현장에서 겪은 일을 실제 인물을 특정할 수 없게 변형해서 서술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 작가는 이메일로 소통하며 오해가 커진 경위도 언급했다. 그는 “제 의도와 무관하게 김현지씨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깊이 공감한다”며 “하지만 사실이 아닌 일을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이 사건으로 며칠 사이에 매우 큰 비난을 받고 있다. (…)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존엄 역시 무너졌다. (…) 하지만 저는 지금 당장 이루어지는 수습보다 진실을 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자신과 김현지씨의 블로그 글, 소설을 함께 대중이 살펴주길 당부했다.

정 작가의 글은 ‘현 상황에 대한 제 입장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아래 전문), 김현지씨 글은 ‘김현지, 김현지 되기’에서 볼 수 있다. 김현지씨는 24일 한겨레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피해를 알리는 과정에서 저에게 피해를 입증하라며 제 가정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거나, 지인이 쓰리섬이나 임신이 진짜인지 묻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현 상황에 대한 제 입장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정지돈입니다.

먼저 김현지씨에게 사과드립니다.

<브레이브 뉴 휴먼>의 캐릭터 권정현지의 이름을 보고

김현지씨가 받을 충격과 아픔을 깊이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부주의로 벌어진 일이며, 제 잘못입니다.

처음 김현지씨에게 보낸 메일에서

​오해이며 흔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상처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점 역시 ​

깊이 사과드리고 반성합니다.

또한 <야간 경비원의 일기>의 내용으로 받은 아픔에 대해서도 사죄합니다.​

제 부족함 때문에 김현지씨의 고통을 미리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출판사에 판매 중단을 요청하겠습니다.

<브레이브 뉴 휴먼> 또한 출판사와 협의 하에 가능한 조치를 모두 취하겠습니다.

사과와 후속 조치만 언급하고 싶으나, ​

추가적으로 전달이 필요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오해와 잘못된 사실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1. 권정현지의 이름

소설 속 캐릭터인

권정현지의 이름을 지은 과정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브레이브 뉴 휴먼>은 204X년 인공자궁이 상용화된 미래를 다룹니다.

​국가는 국민들이 기증한 정자와 난자를 수정해

​“체외인”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냅니다.

​체외인은 가족이 없는 존재로 국가 기관에서 공동양육됩니다.

체외인은 성인이 되면 사회로 방출됩니다.

유년 시절에는 고유식별번호(CLR-70-397851)가 이름으로 부여되지만

성인이 되면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짓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체외인은 아미, 에드, 리젠쿠이, 권정현지 등입니다.

저는 이 인물 중 권정현지가 양성쓰기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가족이 없는 자신의 존재를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성쓰기를 하면

외국 이름을 가진 다른 체외인 캐릭터와 대비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권김현영 선생의 이름에 제 이름 "정지"돈을 합쳐 권정현지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김현지씨에게 보낸 메일에서 권김현영 선생의 이름을 말한 것은

작명 과정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현지씨는 권김현영 선생이 곧 권정현지라고 오해했습니다.

권김현영 선생은 소설 속 캐릭터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양성쓰기를 표현하기 위해 이름을 변형한 것이니 다른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2. <브레이브 뉴 휴먼> 속의 인물과 가족사

​권정현지의 이야기는 김현지씨 개인의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합니다.

이름의 유사성 때문에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과 전개, 디테일 등

모든 것을 비교해봤을 때 어떤 점이 같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김현지씨는

“사랑을 잘 모르는 어머니에게 헌신하고 가족을 유지해 보려고 평생 노력했던 저의 삶.”

이 소설에 고스란히 그려졌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내용만으로는 무엇이, 어떻게 일치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김현지씨가 말한 내용은 <브레이브 뉴 휴먼>과 다를 뿐 아니라

고유한 개인의 삶에 대한 설명이라고 보기도 힘듭니다.

김현지씨가 자신의 삶과 같다고 인용한 소설 속 장면에서,

권정현지는 미래의 공동양육시설에서 탈출합니다.

그는 친구인 아미와 함께 난자 기증자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권정현지를 생명 경찰에 신고하고, 아미와 권정현지는 붙잡혀 이송됩니다.

권정현지는 난자 기증자를 엄마라고 부르지만 그는 엄마가 아니며,

​이 장면 이후 소설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체외인에게는 엄마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 권정현지 캐릭터는 제가 인공자궁을 다룬 여러 소설에서 여러 형태로 변주한 캐릭터입니다.

소설이 실제 삶과 일치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선 구체적인 설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런 설명 없이 자신의 삶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저로서는 납득하기 힘듭니다.

저는 <브레이브 뉴 휴먼>에서 김현지씨의 삶을 쓰지 않았습니다.

인공적인 존재인 권정현지에게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특성을 부여했을 뿐입니다.

3. <야간 경비원의 일기>의 '스토커' 챕터

​이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독자들이 알아야 할 정보이기에 사실 그대로 씁니다.

김현지씨가 블로그에 인용한 '스토커' 챕터는

제가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이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제가 타인의 삶을 무단으로 도용한 것이 되고 맙니다.



​소설에서 표현된 사건은 제가 직접 겪은 일을

실제 인물을 특정할 수 없게 변형해서 서술한 것입니다.

물론 변형의 정도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변형이 적절한가에 대한 기준도 매우 다를 것입니다.

겪은 일은 모두 쓸 수 있다는 식의 창작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대부분의 문학작품에는

작가 본인의 경험이 포함될 수밖에 없으며,

이 경험에는 언제나 타인이 함께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많은 작가들이 있는 그대로 쓰지 않고,

디테일을 바꾸고 변형합니다.

하지만 제 3자가 인지할 수 없을만큼 충분한 변형을 거쳐도

상처 받는 사람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역시 문제 제기를 받은 즉시

사과와 후속 조치를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소설 발표와 출간 직후인 5년 전이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문제 제기를 받았더라도 저는 조치를 취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상황과 판단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록을 남깁니다.

4. <야간 경비원의 일기>와 <브레이브 뉴 휴먼>의 유사점

김현지씨는 두 소설이 자신의 삶을 도용했다는 근거로 두 소설 사이의 유사점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유사점 대부분은 자의적 해석이거나 사실 관계가 맞지 않습니다. 소설 속 인물 구도는 저의 다른 작품에도 일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한 두줄의 문장만으로 설명 되긴 힘듭니다.

아래는 김현지씨의 블로그에서 캡처한 내용입니다.

​(생략)



내용을 정정드리면

<야간 경비원의 일기> 는 동시대가 배경이며 디스토피아와 관련이 없습니다.

위와 같은 항목에선 무엇이 유사한지 파악하기 힘듭니다.

이 외에도 다른 많은 항목들이 있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김현지씨의 블로그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5. 메일

저는 김현지씨와 5월 23일부터 12차례 메일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 메일은 편집된 형태로 김현지씨의 블로그에 올라와 있습니다.

메일 속 제 어투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안이 심각한데 무슨 말투냐 등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한 반응에 공감합니다.

맥락을 모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저는 김현지씨와 2019년 초에 헤어졌습니다.

김현지씨는 이후 종종 저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대부분 호의를 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답을 한 적도 있고 하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언제나 그를 존중했고 늘 건강하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5월 23일 문제제기 메일을 받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했고,

최대한 친밀하고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제 의도가 잘 전달된 것 같진 않습니다.

이후 메일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도

​제 의도는 계속해서 오해 받았습니다.

저 또한 김현지씨가 요구하는 내용과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과문 닉네임을 "현지"라고 해달라는 요구가 특히 그랬습니다.

제가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소설 속에서 "권정현지"라는 이름으로 현지가 언급되는 것과

사과문 속에서 닉네임으로 "현지"가 언급되는 것의

층위가 명백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받은 법률 자문도 마찬가지 의견이었습니다.

자칫하면 제가 사과하는 상대의 실명을 공표하는 일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김현지씨에게는 다른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메일로 소통하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처음과 같이 모든 사안을 수용하는 것을 포기하고

메일로 소통을 주고 받는 것 역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메일 전문은 파일로 첨부했습니다.

몇몇 모티프만으로 개인의 삶이 도용됐으며,

소설 속 인물이 실제 인물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제 실수나 잘못에 대한 변명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언제, 어떤 식으로든 제기 될 수 있기 때문에,

수용하는 쪽과 제시하는 쪽 모두 더 섬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현지씨는 블로그에

​제가 두려움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인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의도와 무관하게 김현지씨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깊이 공감합니다.



​사과로 마음이 풀린다면 몇번이나 사과할 수 있습니다.

​출고 정지와 같은 요구도 모두 수용하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일을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안위를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이 사건으로 며칠 사이에 매우 큰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일들이 취소되었습니다.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존엄 역시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사과와 인정만이 사태를 진정시키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당장 이루어지는 수습보다 진실을 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글과 김현지씨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 모두를 꼼꼼히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문제 삼은 소설의 내용도 잘 살펴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억측과 비방이 아닌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사과나 인정이 두려운 게 아니라,

진실이 아닌 일이 진실이 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앞으로 있을 일도 정직하고 책임감 있게 임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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