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 인터뷰] 이상희 "송중기와 마법의 순간 경험…남편은 손편지 써줬어요"
조연경 기자 2024. 6. 25. 13:00
6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조연상 '로기완' 이상희 수상 인터뷰
백상예술대상과의 의미 있는 첫 인연이 꼬박 7년 만에 '럭키'한 결과로 다시 이어졌다. 딱 두 번 후보에 올라 두 번 수상한 타율 100%의 경이로운 기록. 5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연애담'으로 영화부문 깜짝 여자 신인연기상 주인공이 됐던 배우 이상희는 그로부터 7년이 지난 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으로 영화부문 여자 조연상을 품에 안았다. 올해 넷플릭스 영화로는 단 한 명의 후보로 유일하게 노미네이트 돼 수상까지 성공하는 쾌거를 더했다.
7년 전 화이트 수트를 입고 처음 백상을 찾아 어리둥절한 듯 하면서도 꽤나 덤덤하게 트로피를 받았던 이상희는, 이번엔 블랙 수트 맵시를 뽐내며 눈물을 펑펑 쏟아 보는 이들까지 울컥하게 만들었다. '로기완'의 선주를 만나 다시 백상 무대에 오르기까지 "짧은 순간 선주를 일궈낼 수 있게 만든 캐릭터들과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는 이상희는 "솔직히 마음을 내려 놓고 있었는데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며 이름이 각인 된 트로피를 끌어 안고 또 한 번 감격을 만끽했다.
'로기완' 개봉 직후 어떤 캐릭터보다 많은 호평을 받았던 이상희는 백상 수상으로 영화계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상 잘 줬다'는 평가를 얻게 만들었다. 특히 오열하며 결혼 사실을 깜짝 고백하고, 남편에 대한 마음을 표한 이상희의 소감은 어느 해보다 '사랑이 꽃피는 백상'의 도파민을 쭉 끌어 올리기도. 웨딩마치를 울리지 않은 채 혼인신고만 했기에 떠들썩하게 알리지는 않았지만 굳이 숨기지도 않았던 내용이다. 흡사 수상 무대에서 사랑 이슈를 발표하는 소설 속 주인공이 현실화 된 명장면이다.
7년 새 충무로와 백상이 아낌 없이 애정하는 배우로 성장하면서 동시에 브라운관과 OTT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다작 배우가 됐다. 모두가 인정하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불안을 다독이며 소중한 것들을 더 챙기는 긍정의 변화도 생겼다. "불안이 동력이었던 사람인데, 확실히 이전보다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는 이상희의 지금이다.
-7년 만이죠. 신인연기상에 이어 조연상까지 백상예술대상에 참석할 때마다 상을 받는 인연이에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요.(웃음) 저는 진짜 운이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이번엔 '후보 만으로도 영광이다'는 마음으로 참석 했거든요. 이젠 백상이 어떤 상인 줄도 너무 잘 아니까, 더 감격스러워서 계속 울었네요. 원래 잘 안 우는데. 하하."
-7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변화가 있었나 봐요.
"돌이켜 보면 처음 신인연기상을 받았을 땐 백상을 알았지만, 그게 어느 정도의 상인지 권위와 가치는 잘 몰랐던 것 같아요. 후보에 올라서 갔고, 상을 주셔서 얼떨떨하게 받았는데 시상식이 끝난 후에야 '아, 백상이 이런 상이구나'라는 걸 체감했어요. 주변에서 함께 기뻐해줬고, 진심을 마구 꺼내서 축하해줬고, 무엇보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연락을 받았거든요. 결혼할 때도 그렇게 안 받았는데. 하하.
그리고 저에게는 신기했던 모습이, 시상식장에 가면 저는 당연히 알지만 저를 모를 것 같은 선배님들이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를 해주시더라고요.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축하해요'였어요. 수상 전에 이미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후보에 오른 자체를 서로 축하하는 분위기였죠. '만약에 다시 백상에 오게 된다면, 그 땐 나도 꼭 '축하한다'고 인사해야지' 다짐했었는데, 올해 그 바람도 이뤄서 기뻤어요. 아는 얼굴도 이전보다는 많아졌고요."
-호명된 순간은 어땠나요. 그래도 예상과 기대를 조금은 하게 되지 않나요.
"사실 7일 연속 촬영을 하고 참석했던 상황이라 처음엔 피곤함이 긴장감을 이겼어요.(웃음) 워낙 쟁쟁한 선배님들과 함께 후보에 올라 어느 정도는 마음을 내려 놓고 있기도 했죠. '열심히 축하해주면서 즐기자' 했는데, 오히려 영화부문 신인연기상 발표 때 갑자기 엄청 떨렸어요. 몸이 기억하고 있었는지 제가 받았던 당시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러다 조연상을 발표하는 순간이 왔고, 막상 무대에 후보 얼굴이 뜨니까 살짝 받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속으로 '야, 너 진짜 웃긴다'고 했죠.(웃음) 그러면서 긴장도 됐고요. 옆에 앉아 있던 (송)중기에게 '중기야, 내 손 좀 잡아줘라!' 부탁해서 손을 잡아주고 있었거든요. 솔직히 중기도 제가 받을 줄 몰랐고, 저도 몰랐지만 응원은 하는 동지애였던 거죠. 하하. 근데 말도 안 되게 제 이름이 들린 거예요. 저보다 중기가 먼저 정신을 차려서 저를 일으켜 세워주고, 안아주고, 무대에 보내주기까지 했어요. 촬영 때도 그랬지만 너무 너무 고마웠어요."
-그래서 소감 때 송중기 씨 이름을 6번이나 언급 했나 봐요.(웃음) 수상 영상은 다시 돌려 봤나요. 말씀하신 것처럼 7년 전보다 더 감격해 하는 모습이었고, 얼굴이 눈물로 거의 뒤덮였죠. 그 모습에 김형서 씨와 라미란 씨도 눈시울을 붉혔는데,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컸어요.
"봤어요. 민망하더라고요. 하하. 평소의 저는 절대 그렇게 잘 우는 편이 아니에요. 진짜로. 어떤 사람은 억울해서 울고, 어떤 사람은 싸우면서 울고, 반대로 기쁠 때 우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어디서 혼나도 잘 안 울었거든요. 근데 이번엔 희한하게 무대로 걸어 나갈 때부터 눈물이 줄줄 흘렀고, 정신도 하나도 없었어요. 시상을 해준 (변)요한 씨가 '누나 축하해!'라고 하는데 그제서야 약간 정신이 들더라고요. 급하게 생각나는 말들을 했고, 모든 촬영을 함께 했던 중기를 비롯해 저에게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렸는데 결과적으로 그 사람(남편) 이야기 밖에 못한 것 같아 뒤늦게 미안한 마음도 생겼죠. 고마운 분들에게는 따로 다 연락을 돌렸어요."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요.
"그 자리에 서기까지 그간의 시간들이 확 지나가는 것 같았어요. 제가 독립 영화를 할 때도 조선족 역할을 맡은 적이 몇 번 있었거든요? 프랑스에 가서 불법 체류자 연기를 한 적도 있고요. '로기완'의 선주를 어느 날 갑자기 만난 것이 아니라, '선주의 과거가 된 친구, 선주를 닮은 친구를 경험했기 때문에 선주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를 스쳐간 과거 인물들이 후르르 다 떠오르면서 '자박자박 걸어 온 길들이 여기까지 오게 해줬구나. 설 수 있게 해줬구나' 싶었어요."
-깜짝 결혼 고백과 함께 남편 분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죠. 당사자의 반응은 어땠나요.
"집에서 실시간으로 다 챙겨 보고 있었더라고요. 그리고…. 편지를 써줬어요.(웃음) 집에 갔는데 편지가 있길래 읽고 잤던 기억이 나요. "
-7년 전 신인연기상을 받고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울산 식당에 가니 하루 종일 백상 영상만 나왔다고 했죠. 올해는 '(수상이) 힘들 것 같다' 말씀 하셨다고 했는데, 못지 않게 기뻐하셨을 것 같아요.
"동생에게 문자가 왔는데 '엄마 울고 불고 난리 났어'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다 끝나고 전화를 했더니 주무시고 계셨지만. 하하. 평소에 많은 표현은 안 하시는데 응원해주시는 건 항상 느껴요. 원래 경상도 분들이 본인 앞에서는 말을 안하고 없을 때 '아니 글쎄 내 딸이~' 하시잖아요. 그런 딸이 된 것 같아 저도 기분 좋아요."
-기억에 남는 축하 메시지가 있나요.
"이번에 좀 달랐던 건 모르는 분들도 너무 많이,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셨다는 거예요. 지금 한창 다음 작품 촬영을 하고 있는데, 현장에 가면 보조 출연자 분들이 오셔서 갑자기 '축하 드려요. 잘 봤어요' 인사를 해주시더라고요. 제 데뷔 초 시절도 생각나면서 감동하고 감사했어요."
-올해 영화부문 조연상을 함께 받은 김종수 씨와도 오래 전부터 남다른 인연이 있다고요.
"네. 울산에서 독립 영화를 하실 때부터 알았어요. 10여 년 전 서울로 자리를 옮길 땐 이사도 도와 드렸고요. 방 하나 있는 옥탑방이라 용달 이사를 하면서 친했던 후배 배우 둘이랑 같이 열심히 짐을 날랐죠. 아무래도 힘이 부족하다 보니까 남자들이 짐을 나르고 저는 거의 정리를 맡았는데 하다 보니 너무 더워서 땀이 쭉쭉 나는 거예요. '저 샤워 좀 하고 오겠습니다 선배님' 하고는 그 집에서 샤워도 했어요. 하하. 선배님이 '나도 아직 쓰지 않은 화장실을 네가 먼저 쓰는구나!' 하셨는데 아직도 가끔 생각나면 말씀 하세요. '얘가 나보다 먼저 우리 집 화장실 쓴 애'라고요.(웃음)
상 받고 내려와 백스테이지에서 선배님을 마주쳤는데 '애썼다'는 한 마디를 해주시는 거예요. 완전 뭉클했어요. 정말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분이라 마음이 더 남다를 수 밖에 없거든요. 내년에 선배님과 나란히 함께 하게 될 시상도 기대 됩니다."
-이상희에게 조연상을 안긴 '로기완'과 선주 이야기를 조금 해볼게요. 넷플릭스를 통해 작품이 공개 된 후 유독 선주에 대한 호평이 많았었죠. 표현하기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선택에 고민은 없었나요.
"여러 이유로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김희진 감독님은 독립 영화를 하던 시절에 '수학여행'(2010)이라는 단편으로 우리나라 독립 영화상을 거의 다 휩쓴 분이에요. 이후 'MJ'(2013)라는 단편도 봤고요. 그래서 저는 감독님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죠. 근데 독립에서 상업으로 넘어가기가 어렵잖아요. 내가 너무 손꼽게 잘 봤던 영화의 감독님, 특히 여성 감독님들이 오랜 시간 쉬고 계시면 관객으로서 아쉽기도 하고, 빨리 다음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런 분들이 굳이 상업이 아니어도 무언가 꾸준히 하신다고 하면 혼자 전우애를 느끼기도 하고요.
'로기완'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이 김희진 감독님이 그 김희진 감독님인지 먼저 확인했고, 그래도 대본이 안 좋으면 고민을 했겠지만 대본도 워낙 좋았거든요. 특히 선주의 텍스트들이 다 좋았어요. 선주의 대사와 상황 등 제가 무언가 딱히 더 할 것이 없겠더라고요. '쓰여져 있는 대로만 하면 되겠다' 싶었고, 감독님의 상업 영화 데뷔를 바로 옆에서 축하하고 싶었어요."
-감정적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엄마 역할이기도 했고요.
"처음에도 그랬지만 저는 여전히 엄마가 아니니까 당연히 미숙할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경험한 캐릭터만 연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엄마 역할도 계속 하다 보면 조금씩 깊어지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진짜 엄마가 되거나 나중에 지금의 저를 봤을 때 어떨 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지금은 그런 마음으로 연기하고 있어요. 선주도 그 과정에 있는 캐릭터의 일부라 생각했고요."
-선주는 비주얼부터 시선을 사로 잡은 인물이기도 하죠.
"헤어 스타일은 가발이었어요. 단편을 찍을 때도 그랬고, 드라마 '미스트리스' 때도 그렇고, 그 동안 조선족 역할을 맡으면 다 제 머리로 연기를 했었거든요. '로기완'의 선주는 좀 다르게 하고 싶어서 경험을 살린 아이디어를 냈어요. 한 10년 전 쯤, 그 땐 조선족은 아니었지만 탈북자 캐릭터를 중국 단동에서 찍은 적이 있는데, 한 달 정도 체류하면서 엄청 많은 조선족 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좋지 않은 약을 써서 그런지 머릿결이 딱 봐도 거칠고 푸석푸석 하더라고요. 그에 비해 제 머리카락은 아무래도 반질반질 하니까. '그 질감을 어떻게든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꼭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강하게 드렸고, '선주가 한 때는 멋을 냈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영화팀 의견까지 접목 시켜 투톤 염색으로 방향성이 잡혔죠. 감사하게 통가발을 제작해 주셔서 제 머리카락이 상할 일은 없었어요.
얼굴의 잡티, 버즘 같은 것들은 분장팀이 완벽하게 만들어 주셨고, 선주가 신는 신발이 몇 개 안 되는데 어느 날 의상팀이 가져 온 신발을 보고는 '어? 저 이거 중국에서 봤어요! 어디에서 구했어요?'라고 놀라기도 했고요. 외형이 이미 좋은 역할을 해주니까 선주를 연기하는 것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베테랑 제작진과 스태프 분들의 노고가 어마어마했어요. 진짜 대단한 팀이었습니다."
-송중기 씨와도 꽤 가까운 결속력이 생긴 것 같아요. 호흡은 어땠나요.
"선주는 로기완만 만나서, 저 역시 모든 부분에서 중기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받을 수 있었죠. 송중기라는 배우는 촬영 내내 뜨거운 온도로 로기완을 향해 달려 갔어요. 저는 로케이션을 진행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한 달 정도 체류했고, 중기는 4~5개월을 쭉 있었는데, 분명 지칠 법한 상황에서도 그 친구를 향해 다가가고 다가가는 모습이 저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고, 자극이 됐고, 어떤 면에서는 존경심이 들기도 했어요. 속 된 말로 (연기) 짬바가 거의 제 두 배 잖아요. '어떻게 지금까지 뜨거울 수 있을까?' 오랜만에 뜨거운 배우와 작품을 함께 하게 돼 좋았어요."
-공장 뒤뜰에서 두 사람이 마주한 신은 많은 여운을 남기기도 했어요. 요즘 쓰는 표현으로 두 배우의 '연기 차력쇼'를 보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저는 그 신에서 '마법의 순간'을 경험했어요. 선주가 일을 저지르고 정육 공장에 다시 찾아 오는 신인데, 원래 시나리오에는 기완이가 선주에게 엄청나게 화를 내는 것으로 설정돼 있었을 거예요. 사람들은 말리고, 기완이는 넘어져서 다치고. 우당탕탕 하는 신이었는데, 중기가 그 신 촬영을 앞두고 '못 하겠다' 하더라고요. 불편하다면서. 근데 저 역시 그 신을 그냥 버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PD님께 '촬영을 내일로 미뤄주면 안되냐' 부탁 드렸고, 고민하던 중에 그 날 찍어야 하는 분량이 조금씩 넘어가면서 해당 신은 다행히 다음 날 촬영으로 변경 됐어요. 해외 촬영이다 보니 한국처럼 유동적이지 못했고, 외국인 스태프들도 많아서 정해진 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했거든요.
하루의 시간이 생겼으니까, 중기랑 나랑 북한말 선생님까지 그 공간에 계속 머무르면서 어떻게 어울리는 방향으로 잘 만들어낼지 궁리하고 또 궁리했어요. 사실 저는 계속 새로운 대사를 생각하는 중기를 보면서 처음엔 '왜 기완이가 화가 안 나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믿었던 선주의 배신에 화가 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근데 중기가 '기완 입장에서는 자신을 온전히 감싸주고 있던 세계 밖으로 나와 불안한 세상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던 사람이 선주다. 어떤 행동을 했건 기완이라면 그 사람을 다치게 하느니 차라리 본인이 다치는 걸 원하지 않을까 싶다. 칼 들고 누나를 위협할 수도 있지만, 칼 끝이 본인을 향하게 만드는 사람이 기완이지 않을까'라는 해석을 내놓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막 울었어요. 대사 연습도 잘 못하면서 그냥 울었어요. '누나 왜 울어!' 하면 '저리 가~'라고 장난 치면서도 울었어요.
그리고 다음 날 그 신을 찍는데 중기 얼굴에서 전 날 그 말을 했던 기완이가 보이더라고요. 테이크도 많이 안 갔어요. 중기는 단 한 번에 끝냈고, 저는 제가 원해서 두 번 정도 더 갔던 것 같아요. 배우들이 작품을 하면서 뭔가 생각지도 못하게 얻는 마법의 순간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 순간이 그랬어요. 그 친구가 집요한 노력을 해줘서 어쩌면 우리 모두 만나지 못하고 지나갔을 수 있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 거잖아요. 둘이 '신기하다' 말하기도 했는데, 너무나 좋은 경험을 했고,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 준 중기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에요."
-해외 촬영은 힘들지 않았나요.
"저랑 (조)한철이 오빠 빼고 다 힘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하. 당시 부다페스트 날씨가 좀 우중충 했어요. 영화 분위기와는 어울렸지만 아무래도 쨍한 햇살이 잘 없어 영향을 좀 받은 듯 싶어요. 무엇보다 촬영은 늘 변수가 뒤따르는데, 진행 상황이 한국 만큼 부드러울 수는 없잖아요. 여유롭지 못한 시간에 체류 기간은 또 길었으니 다들 각자 역할을 잘해내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을 거예요. 해외 여러 현장을 다녀봤지만 우리나라만큼 영화 찍기 좋은 환경이 별로 없어요.
프랑스에서는 허가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스태프들이 아예 움직이지도 않더라고요. 잠깐만 가면 되는데 바닥에 깔린 어떤 벨트 하나가 없다고 안 찍어줘요. 표준 시간도 엄격하게 지키죠. '한 테이크만 더 갈게요!' 했는데 스태프들은 짐 싸서 'bye bye~ 내일 봐 상희!' 하면서 가요. 그것도 아주 해사하고 맑게 웃으면서. 남아있는 건 감독님과 촬영 감독님과 저 셋 뿐일 때도 있었죠. 과거엔 모든 것들이 낯설었는데 적응하니까 또 편하더라고요. '로기완' 현장은 워낙 준비가 잘 돼 있어서 어려운 것도 힘든 것도 없었어요."
백상예술대상과의 의미 있는 첫 인연이 꼬박 7년 만에 '럭키'한 결과로 다시 이어졌다. 딱 두 번 후보에 올라 두 번 수상한 타율 100%의 경이로운 기록. 5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연애담'으로 영화부문 깜짝 여자 신인연기상 주인공이 됐던 배우 이상희는 그로부터 7년이 지난 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으로 영화부문 여자 조연상을 품에 안았다. 올해 넷플릭스 영화로는 단 한 명의 후보로 유일하게 노미네이트 돼 수상까지 성공하는 쾌거를 더했다.
7년 전 화이트 수트를 입고 처음 백상을 찾아 어리둥절한 듯 하면서도 꽤나 덤덤하게 트로피를 받았던 이상희는, 이번엔 블랙 수트 맵시를 뽐내며 눈물을 펑펑 쏟아 보는 이들까지 울컥하게 만들었다. '로기완'의 선주를 만나 다시 백상 무대에 오르기까지 "짧은 순간 선주를 일궈낼 수 있게 만든 캐릭터들과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는 이상희는 "솔직히 마음을 내려 놓고 있었는데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며 이름이 각인 된 트로피를 끌어 안고 또 한 번 감격을 만끽했다.
'로기완' 개봉 직후 어떤 캐릭터보다 많은 호평을 받았던 이상희는 백상 수상으로 영화계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상 잘 줬다'는 평가를 얻게 만들었다. 특히 오열하며 결혼 사실을 깜짝 고백하고, 남편에 대한 마음을 표한 이상희의 소감은 어느 해보다 '사랑이 꽃피는 백상'의 도파민을 쭉 끌어 올리기도. 웨딩마치를 울리지 않은 채 혼인신고만 했기에 떠들썩하게 알리지는 않았지만 굳이 숨기지도 않았던 내용이다. 흡사 수상 무대에서 사랑 이슈를 발표하는 소설 속 주인공이 현실화 된 명장면이다.
7년 새 충무로와 백상이 아낌 없이 애정하는 배우로 성장하면서 동시에 브라운관과 OTT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다작 배우가 됐다. 모두가 인정하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불안을 다독이며 소중한 것들을 더 챙기는 긍정의 변화도 생겼다. "불안이 동력이었던 사람인데, 확실히 이전보다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는 이상희의 지금이다.
-7년 만이죠. 신인연기상에 이어 조연상까지 백상예술대상에 참석할 때마다 상을 받는 인연이에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요.(웃음) 저는 진짜 운이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이번엔 '후보 만으로도 영광이다'는 마음으로 참석 했거든요. 이젠 백상이 어떤 상인 줄도 너무 잘 아니까, 더 감격스러워서 계속 울었네요. 원래 잘 안 우는데. 하하."
-7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변화가 있었나 봐요.
"돌이켜 보면 처음 신인연기상을 받았을 땐 백상을 알았지만, 그게 어느 정도의 상인지 권위와 가치는 잘 몰랐던 것 같아요. 후보에 올라서 갔고, 상을 주셔서 얼떨떨하게 받았는데 시상식이 끝난 후에야 '아, 백상이 이런 상이구나'라는 걸 체감했어요. 주변에서 함께 기뻐해줬고, 진심을 마구 꺼내서 축하해줬고, 무엇보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연락을 받았거든요. 결혼할 때도 그렇게 안 받았는데. 하하.
그리고 저에게는 신기했던 모습이, 시상식장에 가면 저는 당연히 알지만 저를 모를 것 같은 선배님들이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를 해주시더라고요.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축하해요'였어요. 수상 전에 이미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후보에 오른 자체를 서로 축하하는 분위기였죠. '만약에 다시 백상에 오게 된다면, 그 땐 나도 꼭 '축하한다'고 인사해야지' 다짐했었는데, 올해 그 바람도 이뤄서 기뻤어요. 아는 얼굴도 이전보다는 많아졌고요."
-호명된 순간은 어땠나요. 그래도 예상과 기대를 조금은 하게 되지 않나요.
"사실 7일 연속 촬영을 하고 참석했던 상황이라 처음엔 피곤함이 긴장감을 이겼어요.(웃음) 워낙 쟁쟁한 선배님들과 함께 후보에 올라 어느 정도는 마음을 내려 놓고 있기도 했죠. '열심히 축하해주면서 즐기자' 했는데, 오히려 영화부문 신인연기상 발표 때 갑자기 엄청 떨렸어요. 몸이 기억하고 있었는지 제가 받았던 당시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러다 조연상을 발표하는 순간이 왔고, 막상 무대에 후보 얼굴이 뜨니까 살짝 받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속으로 '야, 너 진짜 웃긴다'고 했죠.(웃음) 그러면서 긴장도 됐고요. 옆에 앉아 있던 (송)중기에게 '중기야, 내 손 좀 잡아줘라!' 부탁해서 손을 잡아주고 있었거든요. 솔직히 중기도 제가 받을 줄 몰랐고, 저도 몰랐지만 응원은 하는 동지애였던 거죠. 하하. 근데 말도 안 되게 제 이름이 들린 거예요. 저보다 중기가 먼저 정신을 차려서 저를 일으켜 세워주고, 안아주고, 무대에 보내주기까지 했어요. 촬영 때도 그랬지만 너무 너무 고마웠어요."
-그래서 소감 때 송중기 씨 이름을 6번이나 언급 했나 봐요.(웃음) 수상 영상은 다시 돌려 봤나요. 말씀하신 것처럼 7년 전보다 더 감격해 하는 모습이었고, 얼굴이 눈물로 거의 뒤덮였죠. 그 모습에 김형서 씨와 라미란 씨도 눈시울을 붉혔는데,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컸어요.
"봤어요. 민망하더라고요. 하하. 평소의 저는 절대 그렇게 잘 우는 편이 아니에요. 진짜로. 어떤 사람은 억울해서 울고, 어떤 사람은 싸우면서 울고, 반대로 기쁠 때 우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어디서 혼나도 잘 안 울었거든요. 근데 이번엔 희한하게 무대로 걸어 나갈 때부터 눈물이 줄줄 흘렀고, 정신도 하나도 없었어요. 시상을 해준 (변)요한 씨가 '누나 축하해!'라고 하는데 그제서야 약간 정신이 들더라고요. 급하게 생각나는 말들을 했고, 모든 촬영을 함께 했던 중기를 비롯해 저에게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렸는데 결과적으로 그 사람(남편) 이야기 밖에 못한 것 같아 뒤늦게 미안한 마음도 생겼죠. 고마운 분들에게는 따로 다 연락을 돌렸어요."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요.
"그 자리에 서기까지 그간의 시간들이 확 지나가는 것 같았어요. 제가 독립 영화를 할 때도 조선족 역할을 맡은 적이 몇 번 있었거든요? 프랑스에 가서 불법 체류자 연기를 한 적도 있고요. '로기완'의 선주를 어느 날 갑자기 만난 것이 아니라, '선주의 과거가 된 친구, 선주를 닮은 친구를 경험했기 때문에 선주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를 스쳐간 과거 인물들이 후르르 다 떠오르면서 '자박자박 걸어 온 길들이 여기까지 오게 해줬구나. 설 수 있게 해줬구나' 싶었어요."
-깜짝 결혼 고백과 함께 남편 분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죠. 당사자의 반응은 어땠나요.
"집에서 실시간으로 다 챙겨 보고 있었더라고요. 그리고…. 편지를 써줬어요.(웃음) 집에 갔는데 편지가 있길래 읽고 잤던 기억이 나요. "
-7년 전 신인연기상을 받고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울산 식당에 가니 하루 종일 백상 영상만 나왔다고 했죠. 올해는 '(수상이) 힘들 것 같다' 말씀 하셨다고 했는데, 못지 않게 기뻐하셨을 것 같아요.
"동생에게 문자가 왔는데 '엄마 울고 불고 난리 났어'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다 끝나고 전화를 했더니 주무시고 계셨지만. 하하. 평소에 많은 표현은 안 하시는데 응원해주시는 건 항상 느껴요. 원래 경상도 분들이 본인 앞에서는 말을 안하고 없을 때 '아니 글쎄 내 딸이~' 하시잖아요. 그런 딸이 된 것 같아 저도 기분 좋아요."
-기억에 남는 축하 메시지가 있나요.
"이번에 좀 달랐던 건 모르는 분들도 너무 많이,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셨다는 거예요. 지금 한창 다음 작품 촬영을 하고 있는데, 현장에 가면 보조 출연자 분들이 오셔서 갑자기 '축하 드려요. 잘 봤어요' 인사를 해주시더라고요. 제 데뷔 초 시절도 생각나면서 감동하고 감사했어요."
-올해 영화부문 조연상을 함께 받은 김종수 씨와도 오래 전부터 남다른 인연이 있다고요.
"네. 울산에서 독립 영화를 하실 때부터 알았어요. 10여 년 전 서울로 자리를 옮길 땐 이사도 도와 드렸고요. 방 하나 있는 옥탑방이라 용달 이사를 하면서 친했던 후배 배우 둘이랑 같이 열심히 짐을 날랐죠. 아무래도 힘이 부족하다 보니까 남자들이 짐을 나르고 저는 거의 정리를 맡았는데 하다 보니 너무 더워서 땀이 쭉쭉 나는 거예요. '저 샤워 좀 하고 오겠습니다 선배님' 하고는 그 집에서 샤워도 했어요. 하하. 선배님이 '나도 아직 쓰지 않은 화장실을 네가 먼저 쓰는구나!' 하셨는데 아직도 가끔 생각나면 말씀 하세요. '얘가 나보다 먼저 우리 집 화장실 쓴 애'라고요.(웃음)
상 받고 내려와 백스테이지에서 선배님을 마주쳤는데 '애썼다'는 한 마디를 해주시는 거예요. 완전 뭉클했어요. 정말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분이라 마음이 더 남다를 수 밖에 없거든요. 내년에 선배님과 나란히 함께 하게 될 시상도 기대 됩니다."
-이상희에게 조연상을 안긴 '로기완'과 선주 이야기를 조금 해볼게요. 넷플릭스를 통해 작품이 공개 된 후 유독 선주에 대한 호평이 많았었죠. 표현하기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선택에 고민은 없었나요.
"여러 이유로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김희진 감독님은 독립 영화를 하던 시절에 '수학여행'(2010)이라는 단편으로 우리나라 독립 영화상을 거의 다 휩쓴 분이에요. 이후 'MJ'(2013)라는 단편도 봤고요. 그래서 저는 감독님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죠. 근데 독립에서 상업으로 넘어가기가 어렵잖아요. 내가 너무 손꼽게 잘 봤던 영화의 감독님, 특히 여성 감독님들이 오랜 시간 쉬고 계시면 관객으로서 아쉽기도 하고, 빨리 다음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런 분들이 굳이 상업이 아니어도 무언가 꾸준히 하신다고 하면 혼자 전우애를 느끼기도 하고요.
'로기완'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이 김희진 감독님이 그 김희진 감독님인지 먼저 확인했고, 그래도 대본이 안 좋으면 고민을 했겠지만 대본도 워낙 좋았거든요. 특히 선주의 텍스트들이 다 좋았어요. 선주의 대사와 상황 등 제가 무언가 딱히 더 할 것이 없겠더라고요. '쓰여져 있는 대로만 하면 되겠다' 싶었고, 감독님의 상업 영화 데뷔를 바로 옆에서 축하하고 싶었어요."
-감정적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엄마 역할이기도 했고요.
"처음에도 그랬지만 저는 여전히 엄마가 아니니까 당연히 미숙할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경험한 캐릭터만 연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엄마 역할도 계속 하다 보면 조금씩 깊어지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진짜 엄마가 되거나 나중에 지금의 저를 봤을 때 어떨 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지금은 그런 마음으로 연기하고 있어요. 선주도 그 과정에 있는 캐릭터의 일부라 생각했고요."
-선주는 비주얼부터 시선을 사로 잡은 인물이기도 하죠.
"헤어 스타일은 가발이었어요. 단편을 찍을 때도 그랬고, 드라마 '미스트리스' 때도 그렇고, 그 동안 조선족 역할을 맡으면 다 제 머리로 연기를 했었거든요. '로기완'의 선주는 좀 다르게 하고 싶어서 경험을 살린 아이디어를 냈어요. 한 10년 전 쯤, 그 땐 조선족은 아니었지만 탈북자 캐릭터를 중국 단동에서 찍은 적이 있는데, 한 달 정도 체류하면서 엄청 많은 조선족 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좋지 않은 약을 써서 그런지 머릿결이 딱 봐도 거칠고 푸석푸석 하더라고요. 그에 비해 제 머리카락은 아무래도 반질반질 하니까. '그 질감을 어떻게든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꼭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강하게 드렸고, '선주가 한 때는 멋을 냈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영화팀 의견까지 접목 시켜 투톤 염색으로 방향성이 잡혔죠. 감사하게 통가발을 제작해 주셔서 제 머리카락이 상할 일은 없었어요.
얼굴의 잡티, 버즘 같은 것들은 분장팀이 완벽하게 만들어 주셨고, 선주가 신는 신발이 몇 개 안 되는데 어느 날 의상팀이 가져 온 신발을 보고는 '어? 저 이거 중국에서 봤어요! 어디에서 구했어요?'라고 놀라기도 했고요. 외형이 이미 좋은 역할을 해주니까 선주를 연기하는 것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베테랑 제작진과 스태프 분들의 노고가 어마어마했어요. 진짜 대단한 팀이었습니다."
-송중기 씨와도 꽤 가까운 결속력이 생긴 것 같아요. 호흡은 어땠나요.
"선주는 로기완만 만나서, 저 역시 모든 부분에서 중기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받을 수 있었죠. 송중기라는 배우는 촬영 내내 뜨거운 온도로 로기완을 향해 달려 갔어요. 저는 로케이션을 진행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한 달 정도 체류했고, 중기는 4~5개월을 쭉 있었는데, 분명 지칠 법한 상황에서도 그 친구를 향해 다가가고 다가가는 모습이 저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고, 자극이 됐고, 어떤 면에서는 존경심이 들기도 했어요. 속 된 말로 (연기) 짬바가 거의 제 두 배 잖아요. '어떻게 지금까지 뜨거울 수 있을까?' 오랜만에 뜨거운 배우와 작품을 함께 하게 돼 좋았어요."
-공장 뒤뜰에서 두 사람이 마주한 신은 많은 여운을 남기기도 했어요. 요즘 쓰는 표현으로 두 배우의 '연기 차력쇼'를 보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저는 그 신에서 '마법의 순간'을 경험했어요. 선주가 일을 저지르고 정육 공장에 다시 찾아 오는 신인데, 원래 시나리오에는 기완이가 선주에게 엄청나게 화를 내는 것으로 설정돼 있었을 거예요. 사람들은 말리고, 기완이는 넘어져서 다치고. 우당탕탕 하는 신이었는데, 중기가 그 신 촬영을 앞두고 '못 하겠다' 하더라고요. 불편하다면서. 근데 저 역시 그 신을 그냥 버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PD님께 '촬영을 내일로 미뤄주면 안되냐' 부탁 드렸고, 고민하던 중에 그 날 찍어야 하는 분량이 조금씩 넘어가면서 해당 신은 다행히 다음 날 촬영으로 변경 됐어요. 해외 촬영이다 보니 한국처럼 유동적이지 못했고, 외국인 스태프들도 많아서 정해진 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했거든요.
하루의 시간이 생겼으니까, 중기랑 나랑 북한말 선생님까지 그 공간에 계속 머무르면서 어떻게 어울리는 방향으로 잘 만들어낼지 궁리하고 또 궁리했어요. 사실 저는 계속 새로운 대사를 생각하는 중기를 보면서 처음엔 '왜 기완이가 화가 안 나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믿었던 선주의 배신에 화가 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근데 중기가 '기완 입장에서는 자신을 온전히 감싸주고 있던 세계 밖으로 나와 불안한 세상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던 사람이 선주다. 어떤 행동을 했건 기완이라면 그 사람을 다치게 하느니 차라리 본인이 다치는 걸 원하지 않을까 싶다. 칼 들고 누나를 위협할 수도 있지만, 칼 끝이 본인을 향하게 만드는 사람이 기완이지 않을까'라는 해석을 내놓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막 울었어요. 대사 연습도 잘 못하면서 그냥 울었어요. '누나 왜 울어!' 하면 '저리 가~'라고 장난 치면서도 울었어요.
그리고 다음 날 그 신을 찍는데 중기 얼굴에서 전 날 그 말을 했던 기완이가 보이더라고요. 테이크도 많이 안 갔어요. 중기는 단 한 번에 끝냈고, 저는 제가 원해서 두 번 정도 더 갔던 것 같아요. 배우들이 작품을 하면서 뭔가 생각지도 못하게 얻는 마법의 순간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 순간이 그랬어요. 그 친구가 집요한 노력을 해줘서 어쩌면 우리 모두 만나지 못하고 지나갔을 수 있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 거잖아요. 둘이 '신기하다' 말하기도 했는데, 너무나 좋은 경험을 했고,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 준 중기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에요."
-해외 촬영은 힘들지 않았나요.
"저랑 (조)한철이 오빠 빼고 다 힘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하. 당시 부다페스트 날씨가 좀 우중충 했어요. 영화 분위기와는 어울렸지만 아무래도 쨍한 햇살이 잘 없어 영향을 좀 받은 듯 싶어요. 무엇보다 촬영은 늘 변수가 뒤따르는데, 진행 상황이 한국 만큼 부드러울 수는 없잖아요. 여유롭지 못한 시간에 체류 기간은 또 길었으니 다들 각자 역할을 잘해내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을 거예요. 해외 여러 현장을 다녀봤지만 우리나라만큼 영화 찍기 좋은 환경이 별로 없어요.
프랑스에서는 허가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스태프들이 아예 움직이지도 않더라고요. 잠깐만 가면 되는데 바닥에 깔린 어떤 벨트 하나가 없다고 안 찍어줘요. 표준 시간도 엄격하게 지키죠. '한 테이크만 더 갈게요!' 했는데 스태프들은 짐 싸서 'bye bye~ 내일 봐 상희!' 하면서 가요. 그것도 아주 해사하고 맑게 웃으면서. 남아있는 건 감독님과 촬영 감독님과 저 셋 뿐일 때도 있었죠. 과거엔 모든 것들이 낯설었는데 적응하니까 또 편하더라고요. '로기완' 현장은 워낙 준비가 잘 돼 있어서 어려운 것도 힘든 것도 없었어요."
-신인연기상 수상 인터뷰에서 '다시는 돈 때문에 연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더라고요. 연기를 시작하고 잠시 원래 직업이었던 간호사로 돌아간 시간이 잠깐 있었죠. 이제는 포기는커녕 너무 성장한 배우가 됐는데, 스스로는 어떻게 달려 왔다고 생각하나요.
"열심히 했어요. 지금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 중이고요. 그래서 여전히 연기를 좋아하지만 제 삶도 잘 살려고 해요. 예전에 선배님들이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는 말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 땐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고, 막연하게 '이런 것 아닐까' 추측했는데 그 의미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마음 공부를 꽤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웃음) 노력을 많이 하다는 건, 욕망이 가득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어요. 그 만큼 바라는 것이 있다는 뜻이니까. '너 욕심쟁이구나' 하면서도 '난 맨날 이 마음이랑 싸워야 하는구나' 싶죠. 욕심이 들어가는 순간 연기는 되게 별로가 된다고 생각해서 그 타협점도 찾고 있어요."
-긍정적 영향의 중심에 남편이 있는 것 같아요. '나는 너랑 결혼하고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됐어'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연기를 할 때 불안이 동력이던 사람이었어요. 결혼할 때 식도 안 올렸는데, 제 삶이랑 연기를 완전히 분리하고 싶었거든요. 신인연기상 트로피도 울산 부모님 댁에 있고, 집에는 배우로 찍은 사진도 없어요. 이상희의 인생을 살아가는 나에게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요. 그렇게 불안을 끌어 안고 지냈는데, 이 사람과 결혼하고는 마음이 안정 되는 걸 느꼈죠. 근데 그게 연기에는 또 좋지 않은 것 같은 거예요.
한석규 선배님께서 '천문'을 찍을 때 한 번 찾아간 적이 있어요. '저 요즘 너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요. 그래서 연기도 발연기로 하고 있습니다. 연기가 잘 안 돼요'라면서 '이렇게 살면 삶은 편안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배우인 저에게는 이게 맞나 싶어요'라고 했을 때, 선배님께서 그런 이야기 해주셨어요. '계속 불안한 채로 할 수는 없다. 결국, 좋은 사람이 좋은 연기를 해 상희야. 그 과정을 좀 지나서, 네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지고, 좋은 사람이 되어가면 너의 연기도 지금보다 좀 더 좋아질 거야' 살아갈 수록 그 말이 많이 생각나요.
그래서 제 연기의 동력이 결혼 전과 지금 달라졌어요. 그 때는 불안이 동력이었다면, 지금은 조금 다른 것을 추구하게 됐어요. 소중한 어떤 것들, 계속 추구해야 할 가치들. 감정도 좋은 사람이 됐다가 괴팍한 면도 보였다가 아주 널 뛰었는데, 확실히 전보다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남편이 '가까운 사람, 소중한 사람에게 잘하라'는 말도 자주 하거든요. 남편 덕분에 많이 바뀌었고 그 변화가 나쁘지 않아요."
-'자유를 잃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유명하지 않지만 좋은 작품을 많이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을까요.
"이미 자유는 많이 잃었고요. 하하. 과거에 말했던 자유는 오로지 저를 위한 것들이었어요. 순간의 충동과 욕망 그런 것들인데, 그것 말고 지켜야 할 것들이 생기면서 자유를 적당히 잃었고, 잃어버린 그 안에서 남은 자유를 지키려 하고 있죠.
유명도 해야겠더라고요. 유명해져야 좋은 작품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진리를 하면서 깨우치고 있어요.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 같아요. 조금 더 많이 보이는 사람에게 좋은 작품이 가는 길도 많을 테고요. 순전히 좋은 작품을 하고 싶은 욕심인데,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작품을 하고 싶고, 지금까지는 다행히 잘 하고 있다고 다독이고 싶어요."
-배우로서 꼭 남기고 싶은 캐릭터도 있을까요.
"이전에는 '없다'고 했어요. 언젠가 충분히 다 만나지 않을까 했던 거죠. 근데 조금 더 빨리 만나고 싶은 캐릭터들이 생겼어요. 호러, 스릴러, 장르물 쪽으로 아주 '명확하게 세고 미친 사람'을 꼭 해보고 싶어요.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지금과는 또 다를테니까. 빠른 시간 안에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열심히 했어요. 지금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 중이고요. 그래서 여전히 연기를 좋아하지만 제 삶도 잘 살려고 해요. 예전에 선배님들이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는 말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 땐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고, 막연하게 '이런 것 아닐까' 추측했는데 그 의미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마음 공부를 꽤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웃음) 노력을 많이 하다는 건, 욕망이 가득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어요. 그 만큼 바라는 것이 있다는 뜻이니까. '너 욕심쟁이구나' 하면서도 '난 맨날 이 마음이랑 싸워야 하는구나' 싶죠. 욕심이 들어가는 순간 연기는 되게 별로가 된다고 생각해서 그 타협점도 찾고 있어요."
-긍정적 영향의 중심에 남편이 있는 것 같아요. '나는 너랑 결혼하고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됐어'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연기를 할 때 불안이 동력이던 사람이었어요. 결혼할 때 식도 안 올렸는데, 제 삶이랑 연기를 완전히 분리하고 싶었거든요. 신인연기상 트로피도 울산 부모님 댁에 있고, 집에는 배우로 찍은 사진도 없어요. 이상희의 인생을 살아가는 나에게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요. 그렇게 불안을 끌어 안고 지냈는데, 이 사람과 결혼하고는 마음이 안정 되는 걸 느꼈죠. 근데 그게 연기에는 또 좋지 않은 것 같은 거예요.
한석규 선배님께서 '천문'을 찍을 때 한 번 찾아간 적이 있어요. '저 요즘 너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요. 그래서 연기도 발연기로 하고 있습니다. 연기가 잘 안 돼요'라면서 '이렇게 살면 삶은 편안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배우인 저에게는 이게 맞나 싶어요'라고 했을 때, 선배님께서 그런 이야기 해주셨어요. '계속 불안한 채로 할 수는 없다. 결국, 좋은 사람이 좋은 연기를 해 상희야. 그 과정을 좀 지나서, 네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지고, 좋은 사람이 되어가면 너의 연기도 지금보다 좀 더 좋아질 거야' 살아갈 수록 그 말이 많이 생각나요.
그래서 제 연기의 동력이 결혼 전과 지금 달라졌어요. 그 때는 불안이 동력이었다면, 지금은 조금 다른 것을 추구하게 됐어요. 소중한 어떤 것들, 계속 추구해야 할 가치들. 감정도 좋은 사람이 됐다가 괴팍한 면도 보였다가 아주 널 뛰었는데, 확실히 전보다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남편이 '가까운 사람, 소중한 사람에게 잘하라'는 말도 자주 하거든요. 남편 덕분에 많이 바뀌었고 그 변화가 나쁘지 않아요."
-'자유를 잃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유명하지 않지만 좋은 작품을 많이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을까요.
"이미 자유는 많이 잃었고요. 하하. 과거에 말했던 자유는 오로지 저를 위한 것들이었어요. 순간의 충동과 욕망 그런 것들인데, 그것 말고 지켜야 할 것들이 생기면서 자유를 적당히 잃었고, 잃어버린 그 안에서 남은 자유를 지키려 하고 있죠.
유명도 해야겠더라고요. 유명해져야 좋은 작품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진리를 하면서 깨우치고 있어요.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 같아요. 조금 더 많이 보이는 사람에게 좋은 작품이 가는 길도 많을 테고요. 순전히 좋은 작품을 하고 싶은 욕심인데,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작품을 하고 싶고, 지금까지는 다행히 잘 하고 있다고 다독이고 싶어요."
-배우로서 꼭 남기고 싶은 캐릭터도 있을까요.
"이전에는 '없다'고 했어요. 언젠가 충분히 다 만나지 않을까 했던 거죠. 근데 조금 더 빨리 만나고 싶은 캐릭터들이 생겼어요. 호러, 스릴러, 장르물 쪽으로 아주 '명확하게 세고 미친 사람'을 꼭 해보고 싶어요.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지금과는 또 다를테니까. 빠른 시간 안에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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