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었지만…” 20년만에 고개숙인 밀양

■ 안병구 시장, 원로 등 80명과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과
“독립운동가 92명 배출한 고장
‘불의 항거’ 강한정신 가졌는데
이런 사건 발생한 것 부끄러워”

밀양=박영수 기자 buntle@munhwa.com

“밀양 여중생 사건 피해자분과 국민 여러분께, 늦었지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안병구(사진) 경남 밀양시장은 25일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지역 어른들이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이런 결과가 발생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안 시장은 이날 오후 밀양지역 원로, 유림,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 대표 80여 명을 대표해 20년 전에 벌어졌던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사과문을 발표한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은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밀양지역 남고생 40여 명이 여중생 등을 성폭행한 사건으로 밀양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건 발생 당시 수사 미흡 및 가해자에 대한 경미한 처벌 등으로 논란이 됐고, 사법 처리가 마무리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가해자 신상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이어졌다.

안 시장은 “최근 사건이 온라인에서 다시 재조명되면서 지역사회에서 미래세대를 위해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었다”며 “지역 원로들도 어른들이 나서 피해자와 국민에게 무조건 사과해야 한다고 해 오늘 밀양지역 각계 대표가 모여 사과문을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사과문에는 향후 성폭력 근절과 인권 친화적 도시 만들기 약속 등도 담길 예정이다.

20년 만에 사과문을 발표하게 된 것에 대해 안 시장은 “우리가 아이들을 잘못 가르쳐 큰 사건을 일으켰는데도 당시 수사와 재판이 울산에서 진행됐고 이후 가해자들도 타지로 떠나 지역사회가 제대로 사과할 기회를 얻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밀양지역 분위기와 관련, 안 시장은 “이 사건으로 지역사회는 의기소침해 있다. 계속 ‘밀양’이라는 지명이 거론돼 원로들은 물론, 지역사회 지도층이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 고민이 많다”며 “밀양은 특히 일제강점기 92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할 정도로 불의에 항거한 강한 정신을 보유한 곳인데 우리 지역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에 다들 부끄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 시장은 피해자 지원과 관련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는 한국 성폭력상담소가 모금운동을 하고 있어 우리도 밀양지역 성폭력상담소를 통해 최소한의 도움을 주기 위해 모금운동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경남경찰청은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최근 유튜브와 블로그 등 온라인으로 신상이 공개된 가해자나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 중 일부가 ‘사건과 무관하다’며 명예훼손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제기한 고소와 진정(110여 건)을 접수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