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불안에 고개 드는 ‘핵무장론’…가능한지 따져봤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조약 체결로 러시아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사실상 용인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북러 정상회담의 후폭풍으로 안보 불안이 커지자 또다시 자체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데요,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 건지 전문가들과 꼼꼼하게 따져봤습니다.
■ 안보 불안에 고개 드는 '핵무장론'…미국 보수가 지원하는 이유는?
지난해 초 윤석열 대통령의 언급 등을 계기로 일각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대두됐지만, 워싱턴 선언과 한미 핵협의그룹(NCG) 출범을 통해 미국의 '확장 억제' 강화가 약속되자 수그러들었습니다.
그러나 북러의 밀착과 미국 대선 등 여러 변수로 안보 불안이 심화 되자 핵무장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최근 자체 핵무장을 포함해 북핵 대응 옵션 다각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목소리는 미국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보수 성향의 일부 학자와 트럼프 진영에서 특히 앞장서서 한국의 핵무장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한국에 넘겨서, 한미동맹의 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들의 논리는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지원해줘서, 북핵 위협에 대한 부담을 미국이 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차 위원은 "미국 사회 내에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고, 정확하게 얘기하면 매번 그 얘기를 하던 사람들이 또 하는 것"이라며 "한국에 호의적이라기보다는 한국 문제에서 손 떼야 한다는 취지"라고 밝혔습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트럼프가 재선되면 미국의 확장억제가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은 자체 핵무장 문제를 지금부터 고민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재선 시 주한미군 감축, 한미연합훈련 축소 등이 예상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핵개발을 추진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겁니다.
■ 한국이 '핵 가질 결심' 할 때 넘어야 할 첫 번째 장벽 'NPT'
핵 개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시작됩니다. NPT 10조 1항은 자국 안보에 비상사태 발생 시 3개월 전에 유엔 안보리 등에 설명하고 탈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설명을 들은 유엔 안보리는 한국이 NPT를 탈퇴할 수밖에 없는 비상 상황이라는 점을 추인해줘야 합니다. 1993년 북한도 이 10조 1항을 근거로 NPT에서 탈퇴하겠다고 했는데, 당시 유엔 안보리는 북한이 NPT 탈퇴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UN 안보리에서 결의안이 채택되려면 만장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거부권 행사가 나와선 안 됩니다.
만일 한국이 NPT 10조 1항을 근거로 탈퇴를 선언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이 한국의 NPT 탈퇴를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는 탈퇴를 막으려 할 거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그럼 중국과 러시아 주도로 한국에 대한 제재 결의안을 상정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때 만약 미국이 제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론적으로 한국은 유엔 제재를 피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이 한국의 핵 개발을 위해 '거부권'을 행사할 거란 전망도 일각에서 나옵니다. 정성장 센터장은 "현재 상황에서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의 제재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차두현 위원은 미국이 NPT 레짐을 무너뜨리면서까지 한국을 위해 거부권을 던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습니다.
한국의 핵을 용인해주면, 일본, 타이완, 사우디아라비아, UAE, 터키 등 안보 위협을 겪고 있는 많은 나라들이 모두 NPT 탈퇴를 요구할 것이고, 이른바 '핵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을 거란 분석도 있습니다.
■ 핵 개발 완성에 필요한 최소 1년 동안 제재 견뎌야
전문가들은 핵 개발에 필요한 기간을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1년이 지나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1년 동안만 제재를 견디면 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중국과 러시아, 유럽 주도의 제재가 시작되면 일단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건 원자력 발전입니다.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핵연료 수입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조성렬 경남대학교 초빙교수는 "우리나라에 원자력 발전소가 20개 이상 있는데, 전력 생산량의 30% 정도를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다"며 "안보리 제재를 받으면 일단 전력 생산부터 큰 타격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출과 금융에서도 즉각 타격을 입습니다. 차두현 위원은 "우리나라는 인도, 파키스탄, 북한과 상황이 다르게 개방된 체제이고 수출 의존도가 굉장히 높다"며 "금융, 무역 체제에서 1년 정도만 형식적인 제재를 받더라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소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핵 개발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핵탄두를 운송수단과 결합 시키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또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핵무기 생산시설을 어디에 건설할 것인지를 두고 엄청난 지역 갈등이 벌어질 거란 우려도 있습니다.
■ 일본처럼 '잠재적 핵 능력' 보유하는 방안은?
일본의 경우 핵무기는 없지만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유사시 단기간에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셈이라서 '잠재적 핵능력'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른바 '일본 모델'도 최근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이 역시 쉽지는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2035년에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향후 11년간 이 협정에 묶여 있어야 하는 데다, 11년 뒤에도 개정은 쉽지 않습니다.
조성렬 교수는 "2015년 원자력협정 협상 때 박근혜 정부가 핵 재처리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외교적 노력을 했지만 미국이 1도 움직이지 않았다"며 "당시 재처리가 아니라 '파이로 프로세싱'이라고 하는 대안까지 제시했지만,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이 우려하는 건 한국이 핵연료 재처리를 통해 핵 개발을 하는 건데, 지금처럼 한국 내에서 자체 핵무장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개정은 쉽지 않을 거란 분석도 있습니다.
■ "핵 정책은 장기적이고 치밀하게 물밑에서 진행해야"
전문가들은 핵 정책은 일단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핵무장을 위해 들여야 하는 비용과 과정을 국민들이 충분히 알고 선택해야 한다는 겁니다.
또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아주 장기적이고 치밀하게, 물밑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북한의 경우 1980년대부터 비밀리에 핵개발을 진행했고, 이스라엘 역시 1948년 건국부터 핵개발을 암암리에 추진해, 지금은 핵무기 보유에 대해 부인도 시인도 않는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안보 환경 변화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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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kj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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