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폐지가 답이다[시평]

2024. 6. 2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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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論
경영권 공격 소송만 부추길 것
특별배임죄 폐지 실효성 없어
자본시장 규모도 저평가 배경
세계에 유례없는 한국 배임죄
시장 선진화 이루려면 없애야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관계 부처와 협의 없이 특별배임죄 폐지를 언급하자 후폭풍이 거세다.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도 확장하려는 정부안(案)에 재계가 반대하자 이 원장이 그 대안으로 배임죄 폐지를 언급한 것이다. 재계의 반대 이유는, 상법 제382조의3에 주주를 명시하면 대표소송이나 배임죄 처벌 사례가 급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법과 형법의 주관 부처가 법무부여서 이 원장의 말이 어느 정도 구체화될지는 몰라도 배임죄 전문 검사 출신인 정권 실세의 발언인 만큼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크게 4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 충실의무 대상에 포함된 주주란 소액주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주주와 이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현재는 이사에게 ‘회사’ 대상 충실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이 ‘회사’의 개념에 주주가 당연히 포함되므로 실익은 없으면서 부작용만 초래하는 불필요한 법 개정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반면, 정부는 ‘회사’에는 대주주만 포함되므로 ‘주주’라는 단어를 추가하면 소액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도 발생해 우리 자본시장이 선진화할 것으로 본다. 그 취지는 이해된다. 그러나 법 적용 시 대주주와 소액주주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이 돼야 하는지 궁금해진다. 물론, 소수주주권 행사 요건과 관련해 상법이 3, 1, 0.5, 0.01% 등과 같은 주식보유 최저 비율을 정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이 보호 대상의 범위를 정한 기준은 아니다. 개정 취지를 살리려면, 최소한 어느 정도 주식을 가진 주주에 대해 이사가 추가로 충실의무를 부담해야 하는지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잖으면 2대 주주 이하부터의 무차별적인 경영권 공격이 극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상법에 ‘주주’를 명시하면 우리 자본시장이 선진화될 수 있는가. 어느 나라든 아무리 자본시장이 선진화돼도 회사 상대 소액주주의 소송과 견제가 많으면 경영권이 불안해 기업의 성장은 물론 현상 유지도 어려운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소액주주 보호를 강화해도 우리 자본시장이 선진화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셋째, 이사에게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과하는 대신 반대급부로 상법상의 특별배임죄만 폐지하고 형법상 업무상배임죄 규정은 존치하면 폐지 전후 무엇이 달라지는가다. 법리상 특별배임죄 규정을 폐지해도 형법에 배임죄와 업무상배임죄 규정이 있는 한 기업인 상대 배임죄 기소는 언제든 가능하다. 양형 기준도 형법상 업무상배임죄나 상법상 특별배임죄 모두 10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이어서 특별배임죄 폐지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넷째,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으로 ‘회사’ 외에 ‘주주’를 추가하는 경우 대표소송이나 업무상배임죄 처벌이 실제로 대폭 증가할 것인가이다. 현행 규정상 주주 개인이 손해를 봤어도 회사에 이익이 되면 대표소송을 제기하거나 업무상배임죄로 기소하긴 어렵다. 그러나 ‘주주’가 추가돼 회사의 손해가 없어도 주주 개인에게 손해가 발생하게 되면 적든 많든 언제든 이사를 상대로 민·형사상 책임을 추궁하는 주주들이 나타나 소송이 급증할 건 분명하다.

그래도 정부는 최근 우리 시장이 저평가된 점이 문제라고 보고 이를 해결해 자본시장을 선진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 방법으로는, 주주 환원과 소액주주 보호 강화책을 제시한다. 그러나 저평가 원인이, 이익배당이 적고 소액주주 보호가 미흡한 것 외에도 자본시장 규모가 작아서일 수도 있다. 오히려 우리 자본시장에 투자를 유인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정책이 저평가를 극복하는 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원장은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업무상배임죄 또는 특별배임죄의 폐지나 상법상의 경영 판단 원칙 명문화 등을 언급했으나, 이것이 바로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이다. 말 그대로 배임죄는 “삼라만상을 다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전 세계 주요 선진국 어디에도 없는 제도”이다.

오히려 상법을 개정 않고 배임죄만 폐지해도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대폭 줄여 자본시장의 선진화를 앞당길 수 있다. 부디 실효성 있는 선진화 방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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