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전당대회와 오바마 ‘포용의 정치’[포럼]

2024. 6. 2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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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미국(liberal America)이나 보수주의 미국(conservative America)은 없습니다. 오로지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 있을 뿐입니다. (중략) 미국인 한 명 한 명 모두가 미합중국을 지킵니다."

2004년 7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버락 오바마의 이 기조연설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간 대결이 심해지던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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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자유주의 미국(liberal America)이나 보수주의 미국(conservative America)은 없습니다. 오로지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 있을 뿐입니다. (중략) 미국인 한 명 한 명 모두가 미합중국을 지킵니다.”

2004년 7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버락 오바마의 이 기조연설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간 대결이 심해지던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서로 다른 정치적·정책적 시각과 선호를 지닌 집단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경쟁하는 집단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희망의 정치’를 약속한 것이다. 이 전당대회는 오바마가 4년 뒤 대통령에 당선되는 결정적인 자리가 됐다. 불과 몇 달 전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에 처음 당선된 그의 이 연설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물론 미국인 대다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벌써 20년 전의 연설을 다시 들춰본 이유는, 7월 23일로 예정된 집권 여당의 전당대회에 기대하는 바가 있어서다. 무엇보다 이번에 집권 여당의 당대표 후보로 출마한 이들이 현재의 한국 사회와 국민에게 충실할 리더이기를 기대한다. 이는 당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에 여론의 비중을 높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정당을 대표하는 리더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당원 여부와 무관하게 해당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도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당대표 후보들이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대내외적 상황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핵심적 국가 의제를 철저히 인식하고 그것을 앞으로 여당 리더로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와 관련한 미래 방향을 제시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일견 이런 기대는, 후보들에게서 ‘당신은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당신의 이해에 근거할 때, 어떤 미래를 만들고자 하십니까’라는 질문의 답을 듣고 싶다는 아주 기본적인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 정치를 통해 이런 뻔한 기대조차 충족할 수 없다는 체념 섞인 말도 과장이 아니다.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여야 간 상호 비방과 책임 공방 같은 공허한 수사(修辭)만이 정치의 전면을 채우고, 국민의 구체적인 삶을 담은 정책과 그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미뤄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치인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무너진 지 오래다. 새로운 선거가 치러지고 여야 간 새로운 권력구조가 형성되지만, 그로부터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통령과 정당에 대한 지지율, 국회에 대한 신뢰도 등 우리 정치를 평가하는 다양한 지표가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여당 대표 후보들이 과거와 같이 국민의 뜻을 잘 따르겠다거나, 국민을 존중하는 당대표가 되겠다는 허울 좋은 선전에만 몰두해서는 난감하다. 진정으로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과거 한국 사회의 해방 정국을 주도하거나, 민주화를 이끌었던 리더들이 그랬다. 국내 삶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삶의 각 영역에서 국민이 처한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을 해결할 정책적 대안과 굳건한 의지를 지녔었다. 여당의 전당대회뿐만 아니라 이후 각 정당의 전당대회를 통해 이와 같은 새로운 리더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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