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팝의 황제’ 故마이클 잭슨, 오늘 15주기..국내서 추모행사[Oh!쎈 이슈]
[OSEN=강서정 기자] ‘영원한 팝의 황제’ 고(故) 마이틀 잭슨이 팬들의 곁을 떠난 지 15년이 지났다. 국내에서는 고인의 추모 행사가 진행될 예정.
고 마이틀 잭슨은 2009년 6월 25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해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고인은 1999년 6월 25일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에서 평화를 기원하며 자신의 자선 콘서트를 최초로 생중계하기도 해서 한국과는 인연이 깊다.
2010년 1주기부터 지속해온 마이클 잭슨 추모 행사는 코로나로 2년 정도 중지되기도 했지만, 2023년에 다시 그 명맥이 이어졌다. 오는 29일 오후 3시 서울 건대 블라인드 아트홀에서 리멤버링 마이클 잭슨 15주기 추모 행사가 이뤄진다.
이번 15주기 행사에는 한국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마이클 잭슨의 27년 전 첫 내한 공연을 유치하기 위해 당시 공연 주최사였던 현 태능 엔터테인먼트 정태원 대표와 유튜브 채널 음악아저씨 임진모와의 사전 현장 인터뷰도 진행된다.
올해는 마이클 잭슨 첫 공식 전기 영화 ‘MICHAEL’이 크랭크인 돼 무사히 촬영을 마쳤고, 2025년 4월 1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마이클’은 ‘보헤미안 랩소디’를 제작한 프로듀서 그레이엄 킹이 제작을 맡았으며, ‘이퀄라이저’, ‘해방’을 연출한 안톤 후쿠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고 마이클 잭슨은 재키 잭슨, 티토 잭슨, 저메인 잭슨, 말론 잭슨과 함께 1964년 잭슨 마이브 막내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1971년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1980년대 전 세계 음악 시장을 뒤흔들며 ‘팝의 황제’로 떠올랐다.
‘빗잇’, ‘빌리진’, ‘스릴러’, ‘아이 저스트 캔스탑 러빙유’, ‘배드’, ‘맨인더미러’, ‘더티다이아나’, ‘더 웨이 유 메이크미 필’, ‘블랙 오어 화이트’, ‘스크림’, ‘힐더월드’, ‘유아낫 얼론’, ‘아윌비 데어’, ‘댄져러스’, ‘러브 네버 펠트 소 굿’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문화계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마이클 잭슨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1994년 결혼했다가 2년 뒤 이혼했다. 둘 사이 아이는 없었고 2세를 원했던 마이클 잭슨은 곧바로 간호사 데비 로우와 재혼했다.
1997년과 1998년 장남 프린스와 딸 패리스를 낳았고 이듬해 10월 데비 로우와 갈라섰다. 2002년에는 대리모를 통해 프린스 마이클 잭슨 2세를 얻어 블랭킷이라는 이름을 줬다. 하지만 끊임없이 친부 논란이 터졌다. 큰 아들 프린스가 마이클 잭슨과 전혀 닮지 않았고 그가 피부과 전문의 아놀드 클라인과 데비 로우 사이에서 나온 혼외자라는 루머가 계속 돌았다.
특히 마이클 잭슨이 사망한 후 주치의인 콘래드 머레이가 마취제인 프로포폴을 과다 투여했다는 의혹이 일었고 딸인 패리스 잭슨 역시 “아버지는 살해당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2011년 콘래드 머레이는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섰다. 검찰 측은 콘래드 머레이가 마취제인 프로포콜을 마이클 잭슨에게 지속적으로 과다하게 투여하는 등 과실과 무능함이 고인을 사망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콘래드 머레이는 마취제에 관한 내용들을 검찰과 반대로 해석, 주치의가 없을 때 마이클 잭슨 스스로 투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의 사망에 자신은 전혀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마이클 잭슨이 프로포콜에 집착 증세를 보여 이를 끊도록 최선을 다했고, 죽기 전까지 최소의 양만 허락했다고 맞섰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형사법원 배심원단은 콘래드 머레이 박사에 대해 과실 치사 혐의로 유죄 평결을 내렸다. 마이클 패스터 판사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게 무엇이든지 범죄가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24일(현지시간) 현지 연예매체는 마이클 잭슨 가족 변호사는 고인의 아버지가 마이클 잭슨이 사망하기 몇 주 동안 고인과 연락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면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었을 거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2018년 사망한 조 잭슨은 마이클 잭슨이 사망하기 불과 한 달 전에 아들이 약물 과다복용 위기에 처해있다는 두려움에 마이틀 잭슨의 변호사이자 측근인 브라이언 옥스먼에게 이를 털어놓았다고.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통한 컴백을 앞두고 조 잭슨을 포함한 잭슨의 가족이 약물 복용에 대해 마음을 맞대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마이틀 잭슨은 사망 당일에도 간섭하려는 가족과 거리를 뒀다.
80년대부터 잭슨 가문의 최고 법조인이었던 브라이언은 “마이클에게 연락해서 그의 생명을 구할 유일한 사람은 조였을 거다. 나는 아직도 그렇게 믿는다”고 확신했다. 그는 “조가 나중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 ‘브라이언, 아들은 살아남지 못할 거다. 그들이 아들을 죽이고 있다. 나는 내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 아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도와달라. 아들이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안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 조의 본능은 정확했다. 마이클 잭슨은 만성 불면증을 강력한 진정제와 병원용 마취제로 치료해줄 개인 의사인 콘래드 머레이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조는 아들이 자가 치료를 하면서 심각한 약물 의존과 싸우고 있는 것을 두려워했다. 조는 마이클의 집에 찾아가기도 했지만 방문 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아들을 만나지 못했다.
마이클 잭슨의 지시에 따라 경비인력은 모든 방문객을 차단했고, 가족이 2년 동안 개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조는 심지어 “트럭을 몰고 들어가겠다”고 위협했지만 경찰이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브라이언은 “우리는 ‘마이클이 아버지를 두려워했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다. 마이클은 아버지에게 보호와 지혜를 구했다. 2005년 성추행 재판에서 조는 매일 그의 곁에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사랑이 있었다”고 전했다. /kangs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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