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그룹 정조준한 공정위, 김남호 회장 일가 사익편취 손보나
(시사저널=송응철 기자)
DB그룹 핵심사인 DB손해보험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았다. 일감 몰아주기와 상표권 사용료 등을 통한 오너 일가의 사익편취 이슈와 관련해서다. 확인 결과, 오너 일가에 대한 부당 지원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다수 포착됐다.
동부그룹의 후신인 DB그룹은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이 1969년 설립한 동부건설(옛 미륭건설)이 모태다. 이후 관광과 금융, 철강, 물류, 농업, 석유화학, 반도체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2000년대에는 재계 서열 10위권 진입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급격한 외형 확장으로 인한 부채비율 상승과 철강업을 비롯한 전방 산업 불황 등의 악재가 겹친 결과였다. 동부그룹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지금의 DB그룹이 탄생했다.
DB그룹은 금융과 제조라는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DB Inc가 DB하이텍과 DB FIS, DB월드 등 제조 부문 계열사들을, DB손해보험이 DB금융투자와 DB생명보험, DB캐피탈 등 금융 부문 계열사들을 각각 거느린 형태다. DB그룹 오너 일가는 DB Inc와 DB손해보험을 별도로 지배하며 그룹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뿐, 금융과 제조 부문 사이에 유의미한 지분 관계는 없다. DB생명보험이 DB하이텍 지분 소량을 보유한 정도가 전부다.
DB손보, DB Inc에 일감 몰아줘
공정위는 최근 조사에서 DB손보의 내부거래 현황을 중점적으로 살핀 것으로 전해졌다. DB손보의 지난해 내부거래 규모는 3018억원이다. 그해 DB손보의 매출이 17조437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내부거래 비중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김준기 전 회장(5.94%)과 그의 장남인 김남호 DB그룹 회장(9.01%), 장녀 김주원 DB그룹 부회장(3.15%) 등 오너 일가는 DB김준기문화재단(5.00%)과 자사주(15.19%)를 더해 총 38.29%의 지분율로 DB손보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오너 일가의 순수 지분율은 18.10%에 불과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DB손보를 일감을 받는 쪽이 아닌 주는 쪽으로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DB손보는 DB Inc 매출에 특히 많은 기여를 했다. DB Inc는 지난해 전체 매출 3960억원 중 26.24%에 해당하는 1039억원을 내부거래로 채웠다. 이 중 50.22%에 해당하는 522억원이 DB손보와의 거래에서 나왔다.
이전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2022년에는 전체 내부거래액 837억원(내부거래율 24.09%) 중 356억원(내부거래 내 비중 42.56%), 2021년 794억원(28.52%) 중 322억원(40.65%), 2020년 849억원(37.75%) 중 314억원(37.09%), 2019년 581억원(30.15%) 중 229억원(39.39%), 2018년 481억원(23.25%) 중 157억원(32.77%)의 일감을 DB Inc에 제공했다.
이 기간에 DB손보가 DB Inc에 몰아준 일감은 총 1903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내부거래액 4583억원 중 41.52%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런 내부거래의 최대 수혜자는 오너 일가다. 김준기 전 회장(11.61%)과 김남호 회장(16.83%), 김주원 부회장(9.87%) 등 오너 일가 지분율이 43.81%에 달하기 때문이다. DB Inc가 자사주 5.04%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부거래를 통한 수익 중 절반가량이 오너 일가의 몫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오너 일가가 상표권 최대 수혜자
DB Inc의 내부거래 사례는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다. 공정거래법상 명시된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총수 일가 지분율 30% 이상인 계열사' '연간 200억원 이상 또는 매출액의 12% 이상의 내부거래' 등 규제 요건에 모두 해당하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DB손보의 상표권 사용료에 대해서도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DB손보를 포함한 계열사들이 'DB' 상표권 사용료를 지급하기 시작한 시기는 2017년 간판을 '동부'에서 'DB'로 바꿔 달면서다. 당시 사명 변경은 '동부' 상표권을 소유한 동부건설을 인수한 사모펀드가 상표권 사용료 명목으로 매년 매출액의 0.1%에서 0.23%를 요구하면서 이뤄졌다.
당시 DB그룹은 DB Inc를 통해 DB 상표권을 출원했다. DB Inc는 이듬해인 2018년 2억9000여만원을 시작으로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상표권 사용료를 수취해 왔다. 이후 DB Inc가 계열사들로부터 거둬들인 상표권 사용료는 2019년 202억원, 2020년 320억원, 2021년 361억원, 2022년 347억원, 지난해 420억원 등으로 매년 상승세를 보였다.
이 기간에 DB Inc가 상표권 사용료 명목으로 올린 수익은 1680억원이었다. 이 중 DB손보가 지급한 상표권 사용료는 1303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전체 상표권 사용료의 77.59%에 해당하는 규모다. DB Inc의 지분 구조를 보면 상표권 사용료의 최대 수혜자 역시 김남호 회장 일가였다. 고객들이 DB손보에 납부한 보험료로 오너 일가의 배를 불린다는 지적이 제기돼온 이유다.
특히 DB손보의 상표권 사용료는 과도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 공정위가 발표한 '2020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상표권 사용거래 현황'에 따르면, 2020년 DB의 상표권 사용료(320억원)는 전체 71개 집단 중 11위였다. 재계 1위 삼성(149억원)보다도 2배 많은 수준이다. 전년 대비 사용료 증가율도 전체 대기업 집단 중 5번째로 높았다.
앞서 금융감독원도 2020년 DB손보의 상표권 사용료 산정 방식을 개선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DB손보는 금감원에 2022년 계약 갱신 시점에 산정 방식을 개선하겠다며 미뤄왔다. 그러나 그해 DB손보는 DB Inc와 3년간 상표권 사용료로 770억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체결했다. 금감원의 권고를 외면한 것이다.
DB그룹 "상표권 사용료율 높지 않아"
DB손보의 상표권 사용료 지출은 공정거래법상 회사기회유용 금지 조항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거래법은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기업이 직접 수행할 경우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 기회를 오너 일가 지분율이 30%(상장사 기준) 이상인 계열사에 제공해 귀속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DB 상표권이 출원될 당시 DB손보는 그룹 전체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76%)을 차지했고, 대외인지도도 가장 높았다. DB손보가 직접 상표권을 개발·출원했을 경우 DB Inc에 불필요한 비용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DB손보는 DB Inc의 상표권 개발과 출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업 기회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DB손보의 사례는 해당 법에서 예외로 인정하는 '사업 기회를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경우'와 '사업 기회 제공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지급받은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이 밖에 DB그룹이 내부거래 과정에서 특정 계열사에 통행세를 거두게 했다는 의혹도 공정위 조사 대상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부당지원행위의 한 유형인 통행세는 거래 과정에 실질적인 역할이 없는 계열사를 끼워넣어 해당 기업이 중간에서 수수료를 거두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공정위는 현재 DB손보에 대한 조사에서 확보한 자료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부당 지원 사건의 경우 경제 및 법률 분석 등이 필수적인 만큼 제재 수위 결정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DB그룹 관계자는 "현재 공정위 조사는 마무리됐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며 "상표권 사용료율은 다른 그룹사에 비해 높지 않지만 DB그룹의 경우 공정자산에 비해 매출액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높은 상표권 사용료가 발생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DB Inc는 지금까지 한 번도 배당을 한 적이 없어 상표권 사용료 수취를 대주주 사익편취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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