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세계 ‘최강의 동맹’… 조문 상 한미동맹·나토헌장보다 강력[Deep Read]
‘유사시 지체 없이 모든 수단으로 군사원조’ 못박아… 조문만으론 북·중 조약과 함께 가장 센 강도
자유진영 조약엔 ‘공동위협에 대처’ 표현뿐… 한국은 인계철선 주한미군 존재가 동맹 강화 역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정상회담을 갖고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을 골자로 하는 ‘전략적 동반자 조약’에 서명했다. 이로써 냉전 종식에 따라 파기됐던 북한과 구소련 사이의 동맹조약(1961년 체결)이 28년 만에 완벽하게 복원됐다.
북·러 조약 제4조는 지구상 그 어느 동맹조약보다 강력한 동맹의 요건들을 낱낱이 규정하고 있다. 이는 6·25전쟁 발발 74주년을 맞는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 안보 지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형적 동맹조약
이번 북·러 조약에 관해 ‘낮은 단계의 군사동맹’ ‘명목상의 군사협력’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외연 확장’ 등 표현으로 군사동맹 성격을 평가절하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문화일보 등 극소수 언론이 동맹의 본질을 간파했을 뿐이었다.
푸틴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러 조약은 북한이 과거에 구소련과 체결했던 동맹조약(조·소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과 모든 것이 똑같은” 전형적 동맹조약이다. 제4조에 규정된 ‘자동 군사 개입’ 조항도 1961년 조약 제1조와 거의 같다.
북한이 1961년 7월 구소련과 체결한 동맹조약 제1조는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체약 상대방은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한 온갖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했다. 이것이 이른바 자동 개입 조항이다. 북한이 그 직후 체결했던 북·중 동맹조약도 제2조에서 거의 같은 문구로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체약 상대방은 지체 없이 모든 힘을 다하여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했다.
이번 북·러 간 새 조약도 제4조에서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한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1961년 조약과 동일한 표현을 사용했다. ‘유엔헌장 51조와 북한 및 러시아 법에 준하여’라는 단서가 삽입됐지만, 유엔헌장 51조는 회원국의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는 근거 규정일 뿐이며 ‘북한 및 러시아 법에 준하여’라는 것도 대부분 동맹조약에 포함되는 통상적 표현이다.
◇북·러 동맹의 강도
이번에 서명된 북·러 새 조약은 ‘전략적 동반자 조약’이란 명칭과 무관하게 의문의 여지 없는 전형적 동맹조약일 뿐 아니라, 현존하는 지구상의 동맹조약 중 북·중 동맹조약과 함께 가장 강력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을 담았다. 자유민주진영의 어느 동맹조약도 그런 수준의 자동 개입을 규정한 건 없다.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헌장도 제5조에서 회원국에 대한 무력공격 발생 시 ‘유엔헌장 제51조에 의해 인정된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무력 사용을 포함해 필요한 행동을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지체 없이’ ‘모든 수단’ ‘모든 힘을 다해’ 같은 표현은 없다.
자유민주진영의 다른 동맹조약도 조문만 놓고 보면 내용이 더 약하다. 한·미 상호방위조약(1953년)은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돼 있고, 미·일 신안보조약(1960년)은 ‘자국 헌법상의 규정 및 절차에 따라 공동의 위험에 대처한다’는 원론적 규정만 있다. 다만 한국이나 일본엔 미군이 주둔해 있어 이것이 ‘인계철선’ 역할을 함으로써 미군의 자동 군사 개입을 유도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한미연합사령부가 적의 침략에 대한 강력한 방어 기제로 작용해 미국과 강력한 동맹관계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미국이 아·태지역 동맹국과 체결한 이들 동맹조약은 미국의 자동 군사 개입은 물론 일반적 무력 지원 의무조차 규정되지 않은 관계로, 굳이 유엔헌장 51조가 원용될 필요도 없었다. 반면 북·중 동맹, 북·러 동맹조약은 19세기 유럽 비스마르크 시대의 ‘철혈동맹’ 조약을 연상시킨다. 그처럼 강력한 북·러 동맹조약을 ‘낮은 단계의 동맹조약’이라 평가절하하는 당국자나 소위 전문가들의 평가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러의 해괴한 변명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북·러 군사원조 조항은 방어적 성격의 조항이므로 한국이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해괴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자위권 행사 외의 모든 무력행사를 금지한 유엔헌장 규정으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지구상에 존재하는 군사동맹은 모두 방어적 동맹뿐이다. 한·미 동맹, 미·일 동맹, 나토 헌장은 물론, 세계 최강이라는 북·중 동맹조약 역시 ‘무력침공을 받을 때’만 적용되는 방어적 동맹일 뿐이다.
그럼에도 방어적 동맹의 개념에는 문제가 있다. 침략자들은 전쟁을 불법화한 유엔헌장을 의식해, 상대국이 먼저 침공해 왔다고 주장하곤 한다. 북한과 중국은 지금도 ‘6·25전쟁은 미국의 침략에 항거한 방어 전쟁’이라 주장한다. 우크라이나를 3년째 침략 중인 러시아도 그 전쟁을 방어적 전쟁이라 강변한다. 그런 ‘침략의 DNA’를 공유한 러시아와 북한 사이의 동맹조약을 과연 방어적 조약이라 할 수 있을까.
북한과 러시아의 동맹 회복은 냉전체제 종식 후 약 30년간 러시아의 지원을 상실하고 중국에만 의존해온 북한에 귀중한 전략자산이 될 것이다. 그 결과로 구축될 북·중·러 삼각체제의 부활은 과거 냉전시대에 역내 평화를 위협했던 이들 3개국 사이의 새로운 연대 강화를 의미한다. 이는 또 경제 파탄과 체제 불안으로 생존 위기에 몰린 김정은 정권에도 희망의 빛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중·러 사이의 묘한 갈등을 이유로 그 의미를 축소 해석하려는 견해도 있지만, 냉전시대에도 3국 관계는 협력과 갈등이 공존하는 관계였다.
◇한국이 맞은 도전
안보 상황의 급변은 한국 외교에 커다란 도전을 제기한다. 특히 정부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불참하고 푸틴 대통령의 제5기 대관식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그간 러시아에 공을 들였던 점에서 러시아로부터 철저히 배신당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한국에 대한 회유와 협박을 병행하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적당히 넘기려는 기색이다. 우리 정부에도 그런 해결을 선호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외교는 사교가 아니다. 얻어맞고도 침묵한다면 동정받기보다는 무시당하고 더욱 학대당하는 것이 인간사회의 법칙이다. 세계가 두 진영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신냉전체제 현장에서 국제적 미아로 남지 않으려면, 이제 한국 외교도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한 일방적인 환상과 미련을 버리고 대외정책의 원칙과 중심을 새로 세워나가야 한다.
세종연구소 이사장, 전 외교부 북핵 대사
■ 용어 설명
‘자동 군사 개입’은 조약을 체결하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제3국의 침략을 받을 때 다른 일방이 지체 없이 조약국에 군사 지원을 하는 것을 말함. ‘동맹’ 관계를 맺을 때 기준점이 되는 조항임.
‘인계철선’이란 원래 클레이모어 등 폭발물에 연결돼 건드리면 자동으로 폭발하는 철선. 북한의 침략 등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자동 개입을 보장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한때 주한미군에 붙은 명칭.
■ 세줄 요약
전형적 동맹조약 : 북·러 간 새 조약은 북한과 구소련이 체결했던 동맹조약의 부활이며, ‘전형적 동맹조약’임. 새 조약 제4조에 규정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은 1961년에 체결한 구 조약 제1조와 사실상 같은 내용.
북·러 동맹의 강도 : 북·러 조약은 지구상 최강의 동맹임. 자유민주진영의 동맹엔 조문상에 자동 군사 개입은 없고 ‘공동 위협에 대처’ 규정만 있어. 다만 한국은 주한미군이 ‘인계철선’ 역할을 해 미군 자동 개입을 유도.
한국이 맞은 도전 : 러시아는 북·러 군사원조를 ‘방어적 조항’이라 강변하지만 이는 해괴한 변명. 현대 모든 군사동맹은 방어적 동맹의 형태를 띠고 있어. 새 북·러 관계가 한반도와 전 세계 안보 지형을 뒤흔드는 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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