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법 만들면서 일회용 생수병”…갈 길 먼 ‘녹색 국회’

이우연 기자 2024. 6. 2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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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이우연의 우연히 여의도
지난 1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일회용 생수병 사용을 지적하는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영상회의록 갈무리

“(500㎖ 생수병을 들며) 상임위 회의장에 이런 일회용품 배치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바깥에 정수기가 있으니까 의원님들께서 텀블러 가지고 다녔으면 좋겠고, 국회가 기업과 국민들에게 탄소중립하라고 법 만들면서 국회 스스로의 실천과 노력에 대해 게으른 모습을 보이면 국민들께서 공감하시기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종이 인쇄물도 최소화해주시기를 바랍니다. (…) 각 의원실에 전달하는 상임위 관련 자료들도 종이 자료 아니고 전자파일 형태 배부를 원칙으로 정해주십시오. 특별히 종이 인쇄를 원하는 의원실에만 미리 수요를 확인해서 인쇄물 배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1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첫 회의에서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말했습니다. 환경운동가 출신 재선 의원인 이 의원은 ‘기후 위기’를 의정활동의 주요 키워드로 삼는 의원입니다. 초선 의원이던 2020년 국정감사에서 ‘종이 없는 국정감사’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소영 의원의 지적에 닷새 뒤 열린 지난 18일 국토위 전체회의에서는 의원들 자리마다 놓였던 일회용 생수병이 사라졌습니다. 이 의원을 비롯한 몇몇 의원들은 텀블러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이 의원은 “앞으로 국토교통위원회부터 녹색 국회의 흐름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소영 의원의 바람처럼 국회는 지난 4년 동안 조금씩 녹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 의원의 ‘종이 없는 국정감사’ 제안 후 국회는 2021년 ‘친환경 국회 조성 3단계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단기(2022년 6월), 중기(2024년), 장기(2030)로 나눠서 친환경 국회를 달성하겠다는 목표입니다. 디지털 기기를 보급해 종이 없는 국회를 실현하고, 생활폐기물를 20% 감축하겠다는 최종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로드맵 단기 목표의 중 절반 정도는 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소영 의원실이 국회사무처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단기 목표 7가지 중 △간행물 간행부수 20%·종수 5% 줄이기 △전기차 충전기 22대 확보 △공용차 중 친환경 차 비중 30%로 확대 등은 지켰습니다. 생활폐기물 배출량은 2022년에는 코로나19로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일이 늘으며 더욱 많아지긴 했지만, 2023년에는 48만1260㎏을 기록해 종전의 목표인 20% 감축을 뛰어넘어 30.2% 감축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친환경제품 구매비율을 연 65%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는 55%에 그쳐 달성하지 못했고, 면적당 전력사용량은 오히려 상임위 회의가 늘어나며 함께 늘었습니다.) 이밖에도 2023년에는 의원회관에 의원실 행사 포스터 등을 붙여놓는 게시판을 철거해 디지털 게시판을 116개 설치했고, 회의실에도 엘이디(LED) 전자현수막을 설치했습니다. 코로나19로 각 의원실에서 이용하기 시작한 ‘전자 법안 발의’는 이제 종이 발의를 대체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녹색국회가 되기에는 갈 길이 멉니다. 국회사무처에서 들이는 노력과 별개로, 국회를 구성하는 상임위원회의 변화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의원처럼 기후위기에 관심 많은 의원이 지적하지 않는 다른 상임위들은 여전히 일회용 생수병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상임위에서 나눠주는 회의 자료나 기관으로부터 오는 자료 역시, 종이로 받을지 전자 자료로 받을지 여부를 미리 조사하지 않는 상임위가 대부분입니다. 한 의원실 보좌진은 “어떤 상임위는 보안을 이유로 여전히 텀블러나 머그컵을 지참하지 못하는 곳도 있다. 본회의장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일례로 2017년 김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 자제’를 솔선수범하겠다며 머그컵을 쓰다가 오후에는 국회법 규정(회의 진행에 방해되는 물건 반입 금지) 때문에 종이컵을 사용한 사례도 있습니다.

의원실 차원의 노력도 중요합니다. 쓰레기 분리수거가 대표적입니다. 의원실에서 사무처에 신청을 하는 경우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을 제공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여전히 재활용품과 일반 쓰레기를 섞어 배출하는 의원실도 많습니다. 민원인이 많은 특성 때문에 일회용 종이컵을 배치해둘 수밖에 없다는 푸념도 나옵니다. 한 의원실 보좌진은 “종이컵만 찾는 손님도 있고, 손님이 몰려오면 준비된 머그컵이 부족해 종이컵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결국은 의원실을 책임지는 의원들의 의식 변화가 제일 중요해 보입니다. 기후위기 전문가로 이번 22대 국회에 처음 입성한 박지혜 민주당 의원은 최근 첫 월급으로 의원실 직원들에게 스탠리 텀블러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박 의원이 간사를 맡은 민주당 내 의원모임 ‘기후행동의원모임 비상’은 회의 때마다 의원들의 이름이 새겨진 텀블러를 배치한다고 하고요. 이처럼 22대 의원들이 녹색국회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지 주목해보겠습니다.

국회 의안과 앞 복도에 쌓인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자료. 연합뉴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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