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에너지·과학 등 다방면 협력… 이면엔 우크라전 무기 집중 조달[10문10답]

김규태 기자 2024. 6. 2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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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문10답 - 북러 정상회담 의미·전망
“침공 받으면 군사 원조”… ‘조·소 협력 조약’ 28년만에 부활
러, KN-23 등 신형무기 지원받고 주요 군사기술 제공할 듯
우크라전 장기화로 고립된 양국, 정상회담 정례화 움직임도
韓美日 공조 강화 전망… 中, 겉으론 환영하지만 경계 분위기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평양에서 열린 국빈 만찬 행사에서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규태·손기은·이현욱 기자, 정충신 선임기자, 베이징=박세희 특파원

북한과 러시아가 지난 19일 정상회담을 통해 동맹 관계로 복귀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 “쌍방 중 일방이 무력침공을 받으면 지체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에 합의했다. 이 조항이 삽입된 것은 1996년 폐기된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조·소 우호조약) 이후 28년 만이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24년 만의 방북을 통해 북·러 밀착 관계를 대외에 과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전 세계 안보 구도에 큰 변화가 예상되면서 한·미는 물론 전 세계가 북·러 동맹이 어디까지 나아갈지, 또 동북아와 유라시아를 넘어 국제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 핵심은 자동 군사개입 조항

북·러는 19일 평양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일반적으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협정은 ‘동맹’과는 다른 개념이다. 정치·외교·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강화할 때 맺는다. 그러나 북·러 간 협정은 전형적인 ‘군사동맹’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23개 전체 조항 중 핵심인 4조 때문이다. 이 조항엔 “쌍방 중 일방이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면 타방은 유엔헌장 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나와 있다. 남북 간 충돌이 발생하면 러시아 군대가 한반도에 주둔할 수 있는 자동 군사개입의 근거가 되는 내용에 해당한다. 다만 ‘유엔헌장 51조와 북·러 국내법에 준하여’라는 문구가 있는 만큼, 자동 군사개입 수준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대통령실 등)도 있다. 북·러 간 조약은 비준을 받아야 효력이 발생한다. 러시아는 조만간 국가두마(하원)를 통해 비준 절차를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2. 과거 북·러 조약은 뭐가 있나

북·러는 냉전 시기인 1948년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미국 등 서방 국가와 대립각을 세우며 연대 의식을 강화해 왔다. 양측이 ‘혈맹’ 관계에 이른 건 1961년 7월이다. 당시 북한과 옛 소련이 조·소 우호조약을 체결한 데 따른 것이다. 조약에선 “쌍방 중 한 곳이 무력침공을 당해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지체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군사동맹에 관한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1996년 조약도 폐기됐다. 북·러는 2000년 2월 19일 ‘친선·선린·협조 조약’을 체결했는데, 당시 자동 군사개입 조항은 없었다. 대신 ‘한반도 통일’ 등의 문구가 포함됐다. 이 조약 4조에는 “한반도의 통일이 전체 한반도 국민들의 국민적 이해관계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은 물론 아시아 및 전 세계 평화와 안정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란 내용이 담겼다. 푸틴 대통령이 2000년 7월 방북해 김 위원장과 서명한 ‘조로(북·러) 공동선언’(평양 선언)에서도 같은 해 남북 간 정상회담에서 나온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존중한다는 언급이 있었다. 당시 남북관계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3. 푸틴의 ‘군사 원조’ 약속 배경은

푸틴 대통령이 북한과의 조약에 ‘상대국이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할 경우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하도록 한 내용을 넣은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의 재래식 무기를 지속적으로 받으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제재로 무기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군사 장비 제작에 필요한 정밀 기계를 구하지 못해 중국 현지 공장에서 중고 기계를 암거래로 구할 정도다. 특히 이번 자동군사 개입 조항에 과거 조·소 우호조약과 달리 유엔헌장 51조 등 제한 조건이 달려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기보다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무기 획득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을 보여줬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초정밀 무기 공급 가능성도 열어놓음으로써 러시아 본토 공격에 자국산 무기 사용을 허용한 미국을 압박하려는 포석도 깔았다.

4. 북·러 군사 협력 수준 어디까지 가나

북·러 관계가 선린 우호 관계에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됨에 따라 북·러는 군사 분야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는 현재 베트남, 이집트, 몽골,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있다. 중국과는 ‘신시대 전면적·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 17일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보좌관도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이 체결되면 “현재의 세계 지정학적 상황과 북·러 양자 관계 수준”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러시아에 제공할 무기로 기존의 탄약 및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외에도 북한판 에이태큼스(KN-24), 초대형 방사포(KN-25) 등 신형 유도무기 3종 세트가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는 그 대가로 북한에 재래식 무기로는 미그-29 전투기·T-72 전차 기술·디젤엔진 기반 로미오급 잠수함 건조·미사일 경보 기술 등을 건넬 것으로 관측된다.

5. 경제·과학에서는 어떤 협력 이뤄지나

6·19 북·러 정상회담에서 체결한 조약에는 식량, 에너지, 보건, 무역경제, 과학기술, 우주 등 다방면에서의 협력이 명시돼 있다. 그중에서도 양국은 우선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도로 건설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현재 철도 교량만 있는 두만강 위로 자동차용 교량을 놓아 인적·물적 교류의 활로를 개척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현재 북한 수출·수입의 95%가량은 중국이 차지하고, 러시아와는 1∼2%에 그친다. 자동차 도로가 놓이면 북·러 무역량과 인적 교류가 대폭 늘어날 수 있다. 노동력 부족 문제가 큰 러시아 입장에선 북한 노동자 파견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도 최근 대북 제재 등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자 해외 노동자 파견을 통해 1조5000억 원가량의 외화벌이를 하는 등 노동자 파견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은 이번 조약에서 “세관, 재정, 금융 등의 분야에서 경제 협조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10조), “식량 및 에네르기(에너지) 안전,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의 안전”(9조) 등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10조에는 “우주, 생물, 평화적 원자력, 인공지능(AI), 정보기술(IT) 등 여러 분야를 포함해 과학기술 분야에서 교류와 협조를 발전시키며 공동 연구를 적극 장려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인공위성, 핵 연구 등 우주·과학 분야에서 중점적 협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6. 북·러 정상회담 정례화되나

앞으로 양국 간 정상회담이 정례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제 고립 상태인 북·러가 밀착 관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데 따른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19일 북·러 정상회담 전 모두발언에서 “다음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회담을 마친 뒤에는 김 위원장에게 “모스크바에 답방하기를 기다리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양 정상은 2019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했고, 지난해 9월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두 번째로 만났다. 김 위원장이 세 번째 회담에서 초청을 수락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모스크바 답방에 나선다면 다음 정상회담은 러시아에서 열리게 된다. 두 지도자의 만남 주기가 기존 4년 5개월(1→2차 회담)에서 9개월(2→3차 회담)로 대폭 당겨진 만큼, 내년 김 위원장의 러시아 답방이 전격적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7. 푸틴의 국제질서 구상은

푸틴 대통령이 대러 제재를 주도하는 미국에 맞서 반미·반서방연대를 확대하고 다극화한 세계 질서를 만들어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전략에 맞춰 행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5월 집권 5기를 공식 시작한 이후 동맹국인 벨라루스나 과거 동맹국, 대러 제재에 반대한 국가들을 잇달아 방문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5기 취임 후 가장 먼저 중국을 찾았고, 그 뒤로 벨라루스, 우즈베키스탄, 북한, 베트남을 방문하는 등 반서방 블록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또 다음 달엔 카자흐스탄을 방문하고, 이후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가입을 추진 중인 튀르키예를 찾는 등 우군 확보 행보를 계속할 예정이다.

8. 韓, 우크라에 직접 무기 제공 검토

장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2일 러시아를 향해 “북한에 정밀 무기를 지원하지 말라”면서 ‘레드라인’을 언급했다. 동시에 러시아가 각종 첨단 무기를 북한에 제공하면 우리 정부도 제한 없이 우크라이나에 정밀 타격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날렸다. 이에 따라 북·러 군사 협력 밀착이 본격화하면서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직접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로선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천궁-Ⅱ 같은 최신예 방공무기는 물론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 같은 정밀 무기 수출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러시아가 북한에 극초음속 미사일인 킨잘 등 정밀 무기를 제공할 경우 우리의 대응 수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향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155㎜ 포탄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우선 지원 대상이며, K9 자주포나 다연장로켓(MLRS) K-239 천무, K2 전차, FA-50 경전투기 등이 한·러 관계가 최악으로 갈 경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로 보인다.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 차원에서 말을 아끼고 있으나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비하는 군사적 능력에 영향을 미칠 위험을 차단하면서도 실질적인 효력을 얻을 수 있는 지원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정부는 한·러 관계를 고려, 우크라이나에 방독면이나 헬멧, 지뢰제거 장비, 구급차, 방탄복 등 비살상 물품만을 지원해 왔다.

9. 나토 정상회의에서 어떤 방안 나올까

정부는 국제사회와의 결속을 강화할 방침이다. 당장 다음 달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를 계기로 대서양 및 인도·태평양 안보 문제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 위협에 해당한다는 점을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북·러에 대한 제재 논의가 본격화할 수도 있다. 아울러 한·미·일 공조 강화도 러시아에 맞설 우리의 카드다. 이와 관련,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3국 정상회의가 전격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북·러 정상회담 전까지는 나토 정상회의 계기 한·미·일 정상회의에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북·러 밀착’이 상황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나토 정상회의 기간에 한·미·일이 북·러 군사 협력 대응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고, 3국 정상이 한목소리로 북·러에 엄중 경고하는 모습이 나올 수 있다.

10. 중국의 반응은

중국은 겉으로는 북·러 정상회담을 환영하면서도 속으로는 북·러 밀착에 따른 파장 확대를 경계하는 분위기다. 푸틴 대통령 방북 전인 지난 13일 린젠(林劍)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원칙적으로 중국은 러시아와 관련 국가(북한)가 전통적 우호 관계를 공고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지만 푸틴 대통령의 방북 당일부터 “관련 고위급 교류는 두 주권 국가 양자 간의 일정”이라며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북·러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 후인 20일 브리핑에서는 “조·러(북·러) 간의 양자 협력 사무로, 논평하지 않겠다”고 거리를 뒀다.

중국의 이러한 반응은 미국의 디리스킹(위험 제거) 전략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북·러 밀착으로 북·중·러 대 한·미·일의 신냉전 구도가 심화하면 서방의 대중 압박 수위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때문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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