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촌만 없는 게 아니다…‘노 에어컨’ 프랑스 왜? [특파원 리포트]

안다영 2024. 6. 2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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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파리올림픽 선수촌 방 모습.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 있다. (사진 출처: AP)


프랑스 파리 도심 호텔 중에 에어컨 없는 곳이 많다? 네, 사실입니다. 한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파리를 여행하는 많은 이들이 놀라워하는 부분입니다. 다음 달 26일 개막하는 파리올림픽 선수촌 역시 에어컨이 없습니다. 프랑스는 친환경 올림픽을 추구하며 경기장 신규 건설을 최소화했고, 경기장 건설이나 리모델링에도 재활용 자재를 사용했습니다. '노 에어컨' 역시 그 일환입니다.

대신 센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이 잘 통할 수 있도록 선수촌 건물 배치와 크기를 다양화했다고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 측은 설명합니다. 또 70미터 아래 차가운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바닥 냉각 시스템을 가동해 실내 온도를 실외보다 6도 가량 낮출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이런 자연 공기 순환, 그리고 방마다 놓아둔 선풍기 8,200대면 충분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최대 40도씨 이상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는 한여름 폭염에 '노 에어컨'이 지나친 조처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선수들의 건강과 경기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이번 결정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파리올림픽 조직위가 '노 에어컨' 조처를 번복할 가능성은 작습니다.

■ 지하철도 가정에도 '노 에어컨'

프랑스는 왜 '노 에어컨'을 고집하는 걸까요. 우선, 프랑스에서 에어컨은 한국과 달리 여름 필수품이 아닙니다.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에어컨은 오히려 사치품에 가깝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프랑스 여름은 기본적으로 습도가 낮은 건조한 더위라 그늘에만 들어가도 시원한 편입니다. 또 극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기간도 통상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2~3주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러다 보니 굳이 에어컨을 사야 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선풍기조차 없는 가정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수도 파리는 에어컨 실외기가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에어컨을 설치하려면 구청 허가를 받아야 하고 소음 때문에 같은 건물 주민들 동의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에어컨 설치를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파리 도심의 상당수 건물은 오래전 지은 돌집이라 실내에 들어가면 덜 덥다는 점도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파리 지하철 17개 노선 가운데 7개 노선이 에어컨 없이 창문을 열어 자연 바람을 들어오게 하고 있다.


실제 프랑스에서 에어컨이 설치된 가정은 2020년 기준 17%밖에 안 됩니다. 에어컨이 없는 건 지하철이나 버스 등 교통 수단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리 지하철 17개 노선에서 에어컨이 설치된 곳은 단 5개 노선과 2개 노선 일부 전동차입니다. 전동차 비율로 보면 10대 중 4대만 에어컨이 설치돼있습니다. 나머지는 강제 기계식 환기 장치가 장착돼있거나, 지하철 창문을 열어 바람을 통하게 하는 자연 환기만 가능합니다.

일반 사무실은 물론이고, 우리 기준으로는 당연히 있을 거로 생각하는 호텔조차도 프랑스, 특히 파리 도심에서는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상당수입니다. 이러다 보니 올림픽 선수촌에 에어컨이 없는 게 프랑스인들에게는 그리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 일부 국가 대표단 "자체 에어컨 준비"

하지만 이런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 나라는 난색을 보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 대표단은 자체적으로 이동식 에어컨을 준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올림픽위원회 측은 선수들의 경기력에 필수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 중 매우 높은 순위에 에어컨이 있다며, 미국 선수단에 이동식 에어컨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호주 올림픽 위원회도 자국 선수들 방에 에어컨을 설치해, 낮 동안 휴식을 취해야 하는 선수들이 더 쉽게 잠을 잘 수 있도록 하겠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이탈리아, 영국, 독일, 그리스, 덴마크, 노르웨이, 캐나다, 브라질, 일본 등도 에어컨 도입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외 다른 많은 국가도 프랑스에 도착하면 자체적으로 에어컨을 구매할 계획이라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터는 보도했습니다.

이를 두고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이 같은 결정이 선수들 간 불평등한 대우에 대한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에어컨을 설치할 여력이 없는 일부 가난한 나라 선수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길 수 있다는 것이죠. 또 이런 결정이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시도하는 '저탄소 선수촌' 실험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에어컨 냉매는 오존층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워서 에어컨을 사용하고, 에어컨 사용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 시키고, 에어컨 사용량이 더 많아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하계 올림픽 개최 시점 검토해야!"

사실 선수촌 냉방보다 더 우려되는 건 땡볕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입니다. 영국 포츠머스 대학교의 기후학자들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지구가 점점 더 더워지는 상황에서 올림픽을 여름에 개최하는 것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 보고서는 주요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는 기후 조건이 선수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으며,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올해 파리올림픽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도쿄올림픽 기록을 능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 올림픽이 사상 가장 뜨거운 대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파리올림픽 개막식 마무리 행사가 열릴 에펠탑 건너편 트로카데로 광장. (사진 출처: 로이터)


연구진이 이를 토대로 내린 결론은 여름 올림픽 전통을 지속하는 것이 곧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올림픽, 축구 월드컵과 같은 주요 스포츠 경기 주최 측에 더 시원한 시기에 행사를 치를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 실질적인 차원에서, 경기 일정을 잡을 때 더위를 고려하고, 노출이 가장 많은 종목의 경우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을 피하고, 필요한 경우 경기 일정을 조정할 것을 권장합니다.

미국 버클리 대학교 연구진이 2016년에 실시한 또 다른 연구를 보면, 2085년에는 북반구의 8개 도시만이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을 만큼 시원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연구팀은 또 앞으로 더위 때문에 마라톤 대회가 취소될 위험이 10% 이상인 도시를 개최지 후보에서 제외하면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어떤 도시도 올림픽을 유치할 수 없고, 아시아에서는 단 두 곳만이 올림픽 개최를 희망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25개 도시만이 개최 자격을 얻게 됩니다.

100년 만에 프랑스 파리에서 다시 열리는 역사적인 2024 파리올림픽이 역대 가장 더운 올림픽으로 기록되고, 프랑스의 '저탄소 선수촌' 실험마저 실패한다면, '하계' 올림픽 개최 자체를 고민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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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영 기자 (browneye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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