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훈 교수의 ‘칼초 에스프레소’ - 20240625 이탈리아 vs 크로아티아

2024. 6.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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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어로 축구를 뜻하는 ‘칼초’를 이탈리아인의 아침을 여는 ‘에스프레소’ 커피처럼 빠르고 진하게 전달하겠습니다.

별점: ★★☆☆☆

“하… 이걸 비기네…”

이탈리아 선수단이 제17회 유럽축구연맹 선수권대회 ‘유로2024’ 본선 24강 B조 크로아티아전 득점 후 기뻐하고 있다. 사진=REUTERS=연합뉴스 제공
자카니의 동점골이 작렬하는 순간, 필자의 입에서 실제 육성으로 터져 나온 말이다. 진심 100%다. 단, 말의 뉘앙스는 아주 다르다. 절대 크로아티아를 폄하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크로아티아의 전력을 낮게 보고 몇 골 차로 승리할 걸 겨우 1:1로 비겼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무기력 그 자체로 무난히 패배하고 이탈리아로 돌아갈 비행기표 알아볼 일이었는데 ‘어이없게도’ 이걸 비겨버리는 바람에 요즘 표현을 빌자면 ‘16강에 진출당’해 버린 게 어처구니없다는 뜻이다.

필자가 이 지면에 관전평을 의뢰받았을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세 경기만 쓰면 되겠죠?’라고 했지만 진짜 세 경기만 쓸 뻔했다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다.

유로2024 16강 진출 후 안도하며 만족감을 드러내는 이탈리아. 사진=AP=연합뉴스 제공
스페인, 크로아티아와 말 그대로 ‘죽음의 조’에 걸려들긴 했지만 이렇게 멍청하게 16강 진출 당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정말 공은 둥글고 축구는 모른다.

크로아티아의 루카 모드리치. 정말 ‘공 진짜 잘 찬다’는 말 외에는 설명할 말이 없는 선수다. 필자는 2016년 밀라노에서 열렸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직관한 적이 있는데,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맞붙어 레알 마드리드가 ‘라 운데시마(11번째 우승)’를 이뤄냈던 그 경기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선제골은 세르히오 라모스가 뽑아냈고 마지막 승부차기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찼기에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이 둘에게 집중되었지만, 현장에서 직관으로 본 경기는 아주 많이 달랐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모드리치 밖에 안 보이는’ 경기였다.

레알 마드리드의 루카 모드리치(왼쪽),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오른쪽)가 2015-16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제공
실제 모드리치라는 선수가 축구 한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은 직접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오늘 이 경기에서도 이탈리아 미드필더 전원과 모드리치 한 명 중 선택하라고 하면 단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모드리치를 고를 거다.

PK를 실축하긴 했지만 그건 누가 봐도 모드리치의 ‘실축’이 아니라 돈나룸마의 ‘선방’인 거고, 마침내 선제골도 뽑아내지 않았는가. 그런 위대한 선수를 이제 아마 유로 무대에서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정말 슬프다.

1985년생인 모드리치는 2026 북미 월드컵 때는 41세, 클래스는 영원한 법이니 정말 어쩌면, 어쩌면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28 유로 대회는 정말 어렵지 않겠나. 이런 위대한 선수의 사실상 유로 마지막 은퇴 무대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기라니 모드리치의 팬으로서 너무 속상하다.

크로아티아 주장 루카 모드리치(10번)가 이탈리아 주장 잔루이지 돈나룸마(1번)가 지키는 골문에 유로2024 24강 최종전 득점을 성공한 후 기뻐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제공
왜 이탈리아 관전평을 쓰는 자리에서 모드리치 찬양을 하고 있겠는가. 오늘도 여전히 그만큼 이탈리아 축구팀은 축구를 못 했다. 그냥 못 했다. 그게 전부다.

공격수가 골 못 넣고 미드필더가 볼을 소유하지 못하고 전방까지 운반하지 못하고 수비수가 상대 공격수를 놓쳤으면 그게 못한 거지 뭐란 말인가. 축구 못했다는 게 별 게 아니다. 눈부시게 빛났던 센터백 칼라피오리와 돈나룸마 둘이 크로아티아 11명을 상대한 거나 마찬가지다.

휘슬이 울린 직후, 중계 화면에는 이 경기에서 필드 플레이어 중 유일하게 애국 축구한 칼라피오리가 드러누워 있고, PK까지 막아내며 여전히 수호신의 위상을 지켜낸 돈나룸마가 필드를 짚고 무릎을 꿇은 채 땅바닥만 바라보는 장면이 잡혔다.

이탈리아의 리카르도 칼라피오리(5번)가 유로2024 24강 B조 크로아티아전 루카 모드리치(10번)가 찬 공을 보고 있다. 사진=REUTERS=연합뉴스 제공
유로2024 24강 B조 최종전이 끝난 후 크로아티아 주장 루카 모드리치(아래), 이탈리아 주장 잔루이지 돈나룸마. 사진=REUTERS=연합뉴스 제공
모르긴 몰라도 자기들 말고는 단 한 명도 사람 구실 못한 팀 동료들, 그리고 답답한 모습만 보여주는 감독에 대해 육두문자를 마구 뿜어냈을 것 같다. 필자라면 진짜 그랬을 게다.

마지막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전술적 무기력함과 답답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루치아노 스팔레티가 이 글을 읽을 일은 없겠지만 꼭 한마디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2010년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팀의 마르첼로 리피를 꼭 다시 떠올려 보라고.

경기마다 다채로운 맞춤형 전술을 선보이며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 트로피를 조국의 품에 안겼던 리피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4-3-3 밖에 모르는 독선과 아집으로 이탈리아를 조별 탈락시켰다. 딱 그 꼴이 생각난다. 지금 스팔레티가 하는 모습이 그렇다.

마르첼로 리피(왼쪽) 감독이 2010년 제19회 국제축구연맹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32강 조별리그 이탈리아 탈락 후 경기장을 나가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제공
루치아노 스팔레티가 이탈리아 감독으로서 유로2024 24강 B조 크로아티아전을 지휘하다 소리치고 있다. 사진=REUTERS=연합뉴스 제공
국립창원대학교 사학과 구지훈 교수(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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