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 개미 죽이는 불법 리딩방, 캄보디아에만 100여 곳 성업 중"

이석 기자 2024. 6. 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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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제보자 A씨, 시사저널에 캄보디아 불법 주식 리딩방 실체 폭로
한 달 수익 1000억원대…고위층과 결탁해 단속 피하면서 한국 투자자 무차별 사냥

(시사저널=이석 기자)

글로벌 자산운용사를 사칭하면서 한국 개미 투자자들을 상대로 거액을 가로챈 불법 주식 리딩방 업체의 실체가 폭로됐다. 이들 업체는 주로 캄보디아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한국지사 투자 플랫폼으로 위장해 활동하기 때문에 국내 주식 투자자들의 피해가 적지 않다는 게 현지 사정에 밝은 제보자 A씨의 설명이다.

활동 역시 조직적이다. 대포전화를 이용해 투자자를 유인하는 모집책, 채팅방에서 거액의 투자를 유도하는 바람잡이, 현지 상주 인력과 가짜 SNS 아이디, 대포통장 등을 공급하는 조달책, 투자자들이 입금한 돈을 빼돌려 코인 등으로 환전하는 자금 세탁책 등 다양하다. 일부 대형 조직의 경우 수천 명의 직원을 두고 월 1000억원대 수익을 챙기기도 한다. 국내 주식 투자자들의 피해가 끊이지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일러스트 김세중

불법 리딩방 카카오톡 채팅방 들여다보니…

A씨는 그 근거로 한 리딩방 조직의 카카오톡 채팅방 캡처본을 제시했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이 채팅방 캡처본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속칭 쩐주와 운영 매니저, 회원들 간 대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채팅방 대화를 종합해 보면, 이들 조직은 자신들을 글로벌 투자회사인 모건스탠리 한국지사의 직원이라고 소개한다. 서울 신문로에 위치한 사무실 주소도 동일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을 모건스탠리 한국지사 CEO로 소개한 B씨가 매일 저녁 나와 주식 관련 강의를 하고 추천주를 제시했다. 모건스탠리의 우수한 투자 플랫폼을 한국 투자자에게 소개하고 수익을 공유하기 위함이라는 게 채팅방 개설 이유였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B대표는 2022년 모건스탠리를 퇴직한 상태였다. 미국에서 근무하다 최근 한국지사에 복귀했다고 밝힌 C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모두 모건스탠리 소속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이들은 채팅방을 통해 'G24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거액의 투자금을 모집했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트레이딩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종목에 투자할 경우 안정적으로 매일 5% 안팎의 수익을 챙길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투자금은 1000만원 이하에서 3억원 이상까지 모두 5단계로, 등급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진다. 투자 금액이 높아지면 VIP 등급으로 승격할 수 있다. VIP 등급의 최소 충전 금액은 10억원 이상으로, 월 180%에서 최대 750%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고 홍보한다. 때문에 일부는 수십억원까지 베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시사저널이 입수한 리딩방의 카카오톡 채팅창에는 3000만원에서 최대 1억5000만원을 입금한 확인서와 추천주 매수를 의뢰하는 글이 적지 않았다.

공모주 투자도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미끼 상품이다. 인기 공모주의 경우 통상적으로 경쟁률이 수천 대 1을 상회한다. 투자자들이 손에 쥘 수 있는 주식 수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채팅방은 회원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많은 공모주 물량을 확보했고, 예상 수익률은 500~700%에 이른다는 글로 투자를 유인한다. 하지만 돈을 입금하면 돌려받기가 쉽지 않다. A씨는 "채팅방의 경우 아무리 길어도 2개월 정도 운영하다가 폐쇄한다. 업체가 입금 계정으로 지정한 계좌 역시 대포통장이기 때문에 사기를 인지했을 때는 이미 늦다"면서 "이렇게 피해를 당한 돈이 매년 수천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채팅방이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10일 기준으로 G24 프로젝트의 상담 회원만 6만1178명에 이른다. 이 중에서 1만9989명이 투자 참여를 신청했고, 6754명이 최종 투자자들로 선발됐다. 이들에게 받은 예수금 입금 총액은 한 달여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 453억2400만원에 이르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리딩방 업자들에게 투자금을 편취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정부는 최근 활개치고 있는 불법 리딩방을 근절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6월4일 금융범죄수사대 및 마약범죄수사대와 협력해 불법 투자 리딩방 등을 운영한 국내 총책 99명을 검거했다. 해외 투자를 대행해 주겠다고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돈을 뜯는 게 이들의 주요 수법이다. 지난해 발생했던 롤스로이스 약물운전 사건의 주범 역시 불법 리딩방을 통해 돈을 번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원회도 최근 불법 리딩방에 대한 암행과 함께 일제 점검을 강화했다. 금감원 내에 전담 조직이 생겼을 정도다. 그럼에도 리딩방 사기 피해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모건스탠리를 사칭해 투자자를 유인한 불법 리딩방의 홍보물(위)과 G24 프로젝트의 수익 배분 규정(아래)

모집책·바람잡이·자금세탁책 등 분업화

A씨는 이들 조직의 역할이 철저하게 분업화됐기 때문에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리딩방 조직의 본거지는 대부분 캄보디아에 위치해 있다. 대표는 대다수가 중국인이지만, 실무자들은 한국인이다. 대화방으로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유인책의 경우 투자 금액에 따라 건당 6만~100만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전화는 국제전화 표시가 되지 않는 후불 대포폰을 사용하는데, 최근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

A씨는 "요즘은 이동통신업계가 신분증을 제시하지 못하면 휴대폰을 개통해 주지 않기 때문에 대포폰 가격이 올랐다"면서 "때문에 일부는 번호를 바꿔주는 변작기를 사용한다. 이 변작기는 알리 등에서 쉽게 구매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투자자 물색은 보통 해킹한 유통업체 DB를 사용한다. 이 경우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직접 해킹보다 배송업체 DB를 활용한다"면서 "리딩방 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DB는 설문조사에 응한 사람들이다. 성향 자체가 불특정 다수에게 오는 전화를 잘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투자자들이 채팅방에 들어오면 종목을 추천해 투자를 유도한다. 보통 채팅창 한 곳당 수십 명이 있는데, 이들 중 절반은 실제 투자자가 아니라 실체가 없는 바람잡이다. 같은 투자자인 것처럼 행세하며 부풀린 수익률을 채팅창에 올려 입금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아이디 역시 따로 구입한다. 리딩방 업자들은 보통 여러 채팅방을 운영하는 만큼 SNS 아이디가 월평균 1만 개 이상 거래된다. 가격은 아이디 하나당 3만~1000만원까지 다양하다. A씨는 이 과정을 업자들 용어로 "밥먹인다"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중국어를 한국어로 바꿔주는 번역사까지 고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수익률을 내야 하는 만큼 종목 추천 때만큼 거액을 받고 주식 전문가들이 된다. A씨는 "이들이 받는 돈은 월 2만~4만 달러 수준"이라면서 "중목 추천을 받고 수익률의 단맛을 본 투자자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거액을 투자한다"고 말했다.

입금은 보통 자체 개발한 홈트레이딩 시스템을 통해 이뤄진다. 그날의 수익률이나 자산 역시 이 시스템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증권사 플랫폼을 흉내 낸 가짜다. 홈트레이딩 시스템에 표시된 숫자 역시 허수에 불과하다. 실제 입금된 돈은 주식을 매입하는 데 사용되지 않고 코인 등을 통해 외부로 빼돌려진다. 통장 원가는 개당 50만원 수준으로, 업자에게는 보통 1.5%의 수수료가 지급된다. A씨는 "투자자들이 주식 매도 후 출금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20~30%의 수수료를 요구하며 추가 입금을 요구하다"면서 "이후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다 채팅방을 폐쇄하기 때문에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일부 투자자는 이런 시스템을 의심한 것으로 보인다. 왜 모건스탠리 공식 계정이 아니라 지정한 별도 입금 계정으로 송금하느냐는 지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업자들은 "지정한 입금 계좌로 송금한 이유는 투자자 보호를 위함이다"면서 "투자한 돈은 안전거래 협력사 계좌에 보관돼 있고, 은행과 금융감독원의 이중 감독을 받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어물쩍 넘겼다.

캄보디아 불법 리딩방의 실체를 폭로한 제보자 A씨가 6월14일 서울의 모처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범정부 차원의 통합 대응체계 구축 시급"

문제는 조직 대부분이 캄보디아에 위치한 데다, 현지 고위층의 비호까지 받기 때문에 검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A씨는 "보통 주식 리딩방이나 온라인 도박 사이트, 로맨스(나이지리아 피싱) 조직은 중국에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면서 "캄보디아에서는 현재 이런 리딩방 조직이 100여 곳이나 암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대형 조직의 경우 직원만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을 고용하고 있다. 하루에 다루는 금액 역시 수십억원, 한 달 수익은 최소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 차원의 대응에도 한국을 겨냥한 리딩방이 활개 치는 이유다.

국내 투자자를 겨냥한 캄보디아 리딩방 조직이 급속히 늘어난 계기도 있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2019년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3년 동안 5억8800만 달러를 지원받기로 약속받았다. 그 대가로 시진핑 주석은 중국을 겨냥한 주식 리딩방이나 피싱 조직 엄단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훈센 총리 방중 이후 중국을 겨냥한 리딩방 조직이 대거 검거됐다"면서 "이후 한국과 미국, 일본을 겨냥한 현지 리딩방 조직이 급속히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경찰이나 금감원 등이 개별적으로 접근해서는 리딩방 조직 척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범정부 차원의 통합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리딩방 조직에 가담해 활동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인터폴의 적색 수배를 받고 있다. 주식 리딩방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중국처럼 정부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면서 "필요할 경우 캄보디아에서 활동 중인 주식 리딩방이나 온라인 도박 사이트는 물론이고 자금 세탁팀 관련 정보도 추가로 공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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