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이랜드의 편의점 실험…"슈퍼와 편의점의 중간쯤"
근거리 장보기 수요 큰 틈새시장에 집중
이랜드그룹은 패션을 모태로 하지만 사실 그동안 유통업에서도 굵직한 사업을 두루 펼쳐왔다. 1994년 '2001아울렛 당산점'으로 시작으로 백화점, 대형마트, 아웃렛, 슈퍼마켓 등 다양한 유통업종을 두루 영위했다. 특히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가성비'를 내세우는 한편, 경쟁 유통사들이 집중하지 않는 '틈새시장'을 찾아내는 것이 이랜드의 강점이다.
그런 이랜드그룹이 이번에는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킴스편의점'이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6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첫 파일럿 테스트 매장을 낸 뒤 현재까지 총 4개 직영점에서 사업성을 검토 중이다. 올 하반기에는 가맹사업도 시작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이랜드 표' 편의점은 어떤 모습일까.
신선식품 파는 편의점
이랜드그룹이 정한 킴스편의점의 콘셉트는 집 앞 가까운 거리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신선·공산식품을 제공하는 '신선 편의점'이다. 근거리 소비가 늘어나는 트렌드에 맞춰 편의점 사업을 하되, 신선식품과 공산식품 비중을 늘려 기존 편의점과 차별화했다.
지난 18일 킴스편의점 염창점에 방문해보니 식품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정육과 채소, 과일 코너였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중앙에는 오이, 가지 등 채소와 바나나, 키위 등 과일을 판매하는 코너가 마련돼 있었다. 또 입구 바로 왼쪽에는 일산농협과 협업해 일산 지역에서 나는 채소를 판매하는 '숍인숍'을 넣었다. 정육코너에서는 돼지고기, 생닭, 소고기 등을 판매 중이었다.
같은날 방문한 킴스편의점 신촌점도 비슷했다. 신촌점 역시 입구 바로 앞 중앙에는 과일 코너를 넣었다. 매장 바깥에서는 수박과 참외를 행사 상품으로 판매 중이었다. 공산식품류의 비중도 컸다. 밀가루, 간장, 고추장 등은 물론 만두, 피자 등 냉동식품도 판매하고 있었다. 이랜드리테일의 킴스클럽에서 판매하는 애슐리 HMR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편의점에서는 이런 신선식품을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취급하더라도 1인 가구용 소포장 상품이거나 간단히 데워먹을 수 있는 종류가 대부분이다. 최근 들어 품목을 늘리고는 있지만 여전히 비중은 작다. 반면 킴스편의점에서는 30구 짜리 달걀, 대파 한단, 400g 삼겹살, 쌀 10㎏ 등 일반적으로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찾는 식품들을 주로 판매한다.
편의점이냐 SSM이냐
이 때문에 킴스편의점은 편의점보다는 기업형 슈퍼마켓(SSM)처럼 느껴졌다. 가격을 봐도 킴스편의점은 편의점보다는 SSM이나 대형마트에 가깝다. 킴스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상품의 가격은 킴스클럽과 같게 책정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같은 상품이라도 편의점보다 킴스편의점이 저렴했다. 예를 들어 소주 640㎖ 페트병 제품이 편의점에서는 3300원이지만 킴스편의점과 킴스클럽은 2590원에 판매 중이었다. 칠성사이다 355㎖ 1캔의 가격은 일반 편의점에서 2000원, 킴스편의점에서는 890원이었다.
반면 킴스편의점에서는 일반 편의점의 '차별화 상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반 편의점들은 빵, 맥주 등 자사 편의점에서만 단독으로 판매하기 위한 차별화 상품을 개발해 판매한다. 그러나 킴스편의점에는 이런 제품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이마트의 '이마트 에브리데이', 홈플러스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처럼 킴스편의점은 킴스클럽의 SSM에 가깝다는 인상을 줬다. 실제로 킴스편의점의 취급품목은 모두 킴스클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랜드킴스클럽의 자회사 팜앤푸드가 상품을 소싱하기 때문이다. 킴스편의점의 일산농협 숍인숍 역시 킴스클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킴스편의점은 낱개 판매하는 제품이 많다는 점이 킴스클럽과 달랐다. 킴스클럽은 공산식품을 묶음판매로 저렴하게 판매한다. 이런 제품들은 킴스편의점에서는 대부분 낱개로 판매 중이다. 예를 들어 애슐리 볶음밥의 경우 킴스편의점에서는 낱개로 판매 중이었으나, 킴스클럽에서는 6개 묶음을 9990원에 판매하는 식이다.
틈새시장 찾기
이랜드는 킴스편의점이 '편의점과 SSM의 중간 형태'라고 설명한다. 취급 상품이나 가격, 매장 형태 등은 편의점과 차이가 있다. 운영 시간도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24시간이 아니다. 가맹 시 투자비용도 기존 편의점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춘다는 구상이다. 이런 점을 미뤄볼 때 킴스편의점은 '중간'보다는 SSM에 더 치우쳐 있다.
그런데도 이랜드가 킴스편의점을 편의점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의무휴업 규제 때문으로 보인다. SSM은 준대규모점포로 분류돼 대형마트와 같이 월 2회 의무휴업 등의 규제를 받는다. 반면 편의점은 이 같은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 이랜드가 일종의 '틈새시장'을 찾아낸 셈이다.
이랜드가 이미 포화 상태인 편의점 시장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국내 편의점 개수가 5만개를 넘어섰고, 출점 제한으로 인해 신규 점포를 낼 지역을 찾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SSM 역시 규제 때문에 신규 출점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이랜드그룹이 식품관 킴스클럽을 갖고 있으니 그 인프라를 활용해 사업을 확장하려는 것 같다"며 "슈퍼든 편의점이든 점포를 하나하나 열면서 사업을 키우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인수합병(M&A)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랜드그룹이 관심을 가질 매물로 이마트24,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등이 거론된다.
다만 이랜드그룹은 M&A 계획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출점 우려에 대해서는 역시 틈새시장을 발굴하는 전략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이랜드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근거리 장보기 수요가 크면서도 인근에 대형마트, 편의점, SSM이 없는 사각지대 상권에 출점할 예정이다.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이랜드가 잘하는 가성비와 틈새시장 공략을 바탕으로 천천히 사업을 키워갈 것"이라며 "현재 상권이나 취급 품목에 대한 테스트 중"이라고 말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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