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세계 양자 과학기술의 해
유엔은 인류에게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에 대한 국제 사회의 주의를 환기할 목적으로 일정한 기간을 지정해 기념하곤 한다. 예를 들어 2008년은 '세계 지구의 해'였다. 그리고 2024년부터 10년간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 과학의 10년'으로 지정해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이미 '과학'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지난 6월 7일 유엔 총회에서는 내년, 즉 2025년을 '세계 양자 과학기술의 해'로 지정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시끌벅적한 사건이 연이어 터져 나와서인지 언론에서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 게다가 양자 과학기술이라니! 용어부터 너무 어려워 기사를 내더라도 조회수 올리기가 어려웠겠다.
양자 과학기술은 원자의 세계를 지배하는 물리 법칙인 양자역학에서 시작했다. 원자나 그보다 더 작은 입자는 확률적으로 존재하고, 불연속적인 에너지를 갖곤 한다. 이는 기존 거시세계에 적용하는 뉴턴의 역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뉴턴의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으로 물리학은 완성됐고, 사소한 문제만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그중 하나는 달궈진 쇠처럼 뜨거워진 물체가 내는 빛의 색깔이었다. 이 문제와 씨름하던 독일 과학자 막스 플랑크는 빛의 에너지가 연속이 아니라 특정한 '양(量)'의 배수로만 존재한다고 가정해 봤고, 놀랍게도 계산값이 측정값과 맞아떨어졌다. 다만 플랑크 자신은 왜 그렇게 되는지까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빛 자체가 특정한 에너지를 가진 '알갱이', 즉 광자(光子)로 이뤄져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것이 그에게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준 광전효과에 대한 설명으로, 태양광 발전의 기본이 되는 이론이다.
그러나 아직 가설 수준에 머물렀던 양자 개념에 체계를 세우기 시작한 것은 독일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이다. 그는 1925년부터 발표한 일련의 논문을 통해, 그 유명한 '불확정성의 원리'에 도달했다. 미시세계에서는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아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법칙이 통용됨을 밝힌 것이다. 당시 하이젠베르크의 나이는 불과 24세였다! 내년은 하이젠베르크의 기념비적인 논문이 나온 지 꼭 100년째가 된다.
양자역학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인류 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태양광 발전, 반도체, 레이저, 그리고 병원에서 영상을 찍는 데 쓰는 자기공명영상까지 모두 그 산물이다. 인류의 과학기술은 대부분 원자로 만들어진 무언가를 대상으로 하므로, 원자를 다루는 양자역학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거기에 더해 최근의 양자 기술 개발 열풍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슈퍼컴퓨터로도 푸는 데 여러 해 걸릴 암호를 단 몇 분 만에 풀어내는 양자컴퓨터, 원리적으로 도청 자체가 불가능한 양자 통신 등이 그것이다. 양자역학으로 원자 세계의 현상을 이해해 20세기 문명을 일궜다면, 이제는 양자 중첩이나 양자 얽힘 같은 양자역학적 현상을 직접 활용하는 양자 기술 2.0의 시대가 열렸다.
우리나라도 양자 기술을 국가 전략기술의 하나로 지정해서, 우리보다 앞서나가는 나라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우리보다 훨씬 많은 예산을 퍼붓는 나라들과의 경쟁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따라가려는 노력 이상의 지혜가 필요하다. 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내세울 수 있는 시대도 지나갔다. 다행히 역사는 양자역학의 사례처럼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파괴적 혁신이 일어난 이야기가 드물지 않다.
유엔도 '세계 양자 과학기술의 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양자 광학, 양자 화학, 그리고 양자 과학을 동원한 신물질의 개발 등 아직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양자 과학기술 전반을 강조하고 있다. 눈앞의 기술 개발에만 매몰되지 않은 종합적인 양자 과학기술 전략이 필요한 때다.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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