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당원권 강화는 정말로 민주적일까
국회의장은 대한민국 의전 서열 2위다. 원내 1당이 맡는 것이 관례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제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총 네 명(우원식·정성호·조정식·추미애)이었다. 중간에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사퇴하면서 우원식 대 추미애 2파전이 됐다. 그리고 경선이 치러진 지난 5월16일, 당 안팎의 예상을 깨고 우원식 의원이 국회의장 후보가 됐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5월23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6월24일 대표직 사퇴)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생방송에서 “현재 2만명이 넘게 탈당했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 이유를 “최근에 의장 후보 선출 과정에서 실망감이 생겨났다”라고 짚었다. 국회의장은 의원들이 투표로 선출하는데, 당원들은 의원들과 달리 우원식 의원이 아닌 추미애 의원을 지지했다고 본 것이다. 해법도 제시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당원 중심 대중 정당’으로 확실히 변모시키자. 중우화되지 않는 범위 내에선 직접 민주주의를 최대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주권자는 국민이고 당의 주인은 당원이니까, 당 의사 결정에 당연히 당 주인인 당원 의사가 관철 또는 존중, 최소한 반영돼야 한다.”
민주당은 이를 실행에 옮겼다. 6월10일 최고위원회의, 6월12일 당무위원회에서 당규를 개정해 ‘국회의장과 원내대표 선출에 권리당원 유효투표 20%를 반영’하기로 했다(의원투표는 80% 반영). 여기서 권리당원이란 당비를 6개월 이상 납부한 당원을 말한다. 이재명 대표가 추진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원조 친명(친이재명)’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3선, 경기 수원병)이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주목을 받았다. “민주당을 내부로부터 멍들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결정이다. 정권교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슨 뜻일까.
민주당이 당원권 강화를 추진하는 배경이 된 명제가 있다. ‘당원들은 추미애를 국회의장 후보로 지지했다’가 그것이다. 하지만 김영진 의원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4월10일 총선이 끝나고 수많은 지역구 당원들을 만나 감사 인사를 드렸지만, 5월 초까지만 해도 ‘추미애 의원이 국회의장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4월29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추미애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적합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는 ‘여론조사꽃’의 여론조사 결과가 처음 공개된다. 전화면접조사(CATI)로는 ‘적합한 인물이 없다’는 응답이 42.2%로 가장 많았고 추미애 의원이란 응답이 29.8%로 뒤를 이었지만, 상대적으로 고관여층이 많이 응답하는 경향이 있는 ARS 조사에서는 추미애 의원을 꼽은 이들이 45.8%로 가장 많았다. 나머지 의원들은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이하 모든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앞선 4월23일 ‘박시영TV’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구독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앙케트 조사에서는 추미애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적합하다는 응답이 98%에 달했다. 미디어토마토가 4월27~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추미애 의원의 국회의장 적합도(40.3%)가 가장 높았다.
경선 나흘 전인 5월12일 ‘친명’ 후보로 꼽혔던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국회의장 후보직을 사퇴한 것은, 이런 여론조사 등을 근거로 박찬대 원내대표 등이 사실상 추미애 후보로 ‘교통정리’에 나선 결과라고 알려졌다. 그럼에도 나흘 뒤 경선 결과는 우원식 의원 승리였다. 이에 대해 김영진 의원은 “일부 의원과 유튜버들이 만들어낸 여론을 가지고 ‘왜 당원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느냐’고 하는 것은 전후 관계가 바뀐 이야기다. 정청래 최고위원이 (5월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원과 지지자들은 윤석열 정권과 맞짱 뜨는 통쾌감을 추미애를 통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사후 해석에 불과하다. 지도부든 누구든 추미애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만들고 싶었다면 의원들을 최대한 설득했어야지, 선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당원권 강화를 해법으로 내놓는 것은 견강부회다”라고 말했다.
이번 국회의장 경선 과정에서 민주당 당원들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조사한 적은 없다. 그렇다면 제대로 조사해 국회의장과 원내대표 선거에 당원 의견을 반영하면 되지 않을까? 이번 당규 개정처럼 말이다. 그러나 김영진 의원은 이에 부정적이다. “모든 의원들은 초선부터 열심히 해서 능력을 인정받아 원내대표도, 국회의장도 해보고 싶은 나름의 정치적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당원권 강화라는 미명하에 원내대표와 국회의장을 뽑는 데 당원 의사를 반영하게 되면,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열성 당원의 의사에 반하는 사람은 사실상 원내대표와 국회의장이 될 수 없게 된다. 이러면 재선 때부터 5선까지 내내 열성 당원들에게 충성하는 말과 행동밖에 하기 어렵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야 하는데, ‘개딸’과 당대표의 생각이 무엇인지 먼저 살피는 상황으로 가면 건강하고 힘 있게 민주당을 확대 강화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책 정당으로 만들 수 있겠나?”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지도부에 속한 한 의원은 “엘리트주의다”라고 말했다. “‘국민이 옳다’라는 말을 거부하는 정치인은 없는데 ‘당원이 옳다’는 명제는 터부시(금기시)하는 이들이 많다. 120만명이 넘는 권리당원을 소수의 열성 지지자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민주당 전체 당원은 500만명에 이른다. 한 번이라도 당비를 납부한 당원은 약 250만명, 꾸준히 당비를 납부하는 권리당원이 120만~130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당심과 민심이 일치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고, 또 일치할 것이라고 본다. 더 이상 정치인들이 당원과 국민을 이끌고 가는 시대가 아니다. 집단지성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강성 지지층에 끌려다니는 게 문제라면, 이미 권리당원이 투표에 참여하는 당대표나 최고위원은 괜찮나?”(앞서의 지도부 의원)
“민주주의와 정당에 대한 굉장한 오해”
이 말은 중요한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 당대표나 최고위원이 어쨌거나 민주당 전체를 대표한다면, 원내대표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국회의장은 국회 전체를 대표하는 존재다. 박상훈 전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정치학 박사)의 말이다. “입법부도 행정부도 나름의 작동 원리가 있다. 원내대표는 당 의원들을 대표해 여야 간 이견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직책이고, 국회의장은 우리가 뽑은 입법자들의 사회자이자 의사규칙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헌법이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국회법이 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는 이유다. 강력한 정당(과 그 당원들)이 해당 정당을 넘어 한 국가를 운영하는 체제를 전체주의라 부른다.”
물론 당원권 강화는 전체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정확히는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는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당내 민주화에 대한 요구, 신규 당원 모집 필요성에 따라 일반 당원들이 투표로 당대표 등을 선출하게 하는 움직임이 일부 있어왔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국가의 대표를 뽑듯, 당의 주인인 당원이 당의 대표를 뽑아야 한다’는 논리는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린다. 게다가 기술 발전과 교육수준 향상으로 과거와 달리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재명 대표)을 실현시킬 수 있게 된 듯도 하다. 이재명 대표는 당의 의사결정에 당원 참여를 반영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와 정당에 대한 굉장한 오해”라고, 박수형 정치학 박사는 말한다. “미국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민주주의는 정당 ‘내부’가 아니라 정당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당들이 세게 경쟁할수록 사회에 잠재된 이견들이 분출되고 대표될 수 있다. 정당들이 경쟁하지 않고 담합할수록 소외되는 의견이 많아진다. 중요한 건 정당 사이의 경쟁이 얼마나 폭넓고 강하게 이뤄지느냐이고, 그러려면 정당 내부는 분열하기보다 통합하고 단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원보다는 당에 더 많이 관여하고 헌신하는 국회의원, 당직자, 대의원들이 당의 의사결정에서 중심이 되어야 한다.” 월 1000원 이상 당비를 6개월 납부하면 민주당 권리당원이 될 수 있다. 국회의원과 당직자, 대의원들은 납부하는 당비도 더 높고 정당 활동에 할애하는 시간도 더 길다. 민주당 대의원 수는 2022년 전당대회 기준 1만6000명이다.
‘이재명 대표 연임’ 염두에 둔 당헌 개정
이 주장은 구태로 돌아가자는 것일까? 과거 대의원제를 통해 당대표를 뽑았을 때는 대의원 선정이 지구당위원장(지역위원장)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그 지구당위원장은 파벌 보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이런 전통적 위계를 깨뜨리고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한다는 명분하에 도입된 것이 당원 투표다. 그런데 한국의 정당들이 대표 선출을 당원, 나아가 일반 시민에게 개방하면서, 예전 국회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의 자리를 유튜브 등 SNS를 활용한 ‘인플루언서’들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박수형 박사는 지적했다. “과거의 국회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들은 그나마 직위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책임을 물을 수 있었는데, 지금의 인플루언서들은 비공식적 영역에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원권 강화라고는 하지만, 정말 당원에게 권한을 준다기보다는 당의 대표급 인물들이 중간조직이나 비주류 의원을 우회하기 위해 당원들(과 인플루언서들)을 활용하는 형태에 가깝다. 포퓰리즘의 한 유형인 ‘국민투표제적 민주주의(plebiscitary democracy)’다.”
민주당은 당원권을 강화하는 당규 개정과 함께, 당대표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 대선 1년 전까지 대표직을 사퇴하도록 한 조항에 예외를 신설하는 내용으로 당헌을 개정하기로 했다. 당직자가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될 경우 자동으로 직무를 정지하도록 한 당헌 제80조는 아예 폐지하기로 했다. 모두 이재명 대표의 연임과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조항들이다.
민주당에서 당대표 연임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다(정세균 대표가 연임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바 있다). 당헌 개정은 6월17일 중앙위원회 의결을 통과해 확정됐다. 김영진 의원은 “현재 민주당 당헌·당규는 당대표 연임을 상정하지 않은 내용이다. (이재명 외 다른 대선주자라는) 대안이 있는지와 무관하게, 정해진 절차와 과정을 지키는 게 민주주의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특정인에 맞게 규정을 이리저리 바꿔선 안 된다. 사실은 대표직 연임 자체가 불문율을 깨는 것이고 적절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는 6월24일 대표직을 사퇴했다. 정당은 누구를 대표하며 왜 존재하는가. 정당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민주당 당헌·당규 개정은 한 정당의 내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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