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가 새겨들을 속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편집국장의 편지]

변진경 편집국장 2024. 6. 25.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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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단톡방'에서 일대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한 공공 교육기관에서 신청 학생을 모아 한 달에 두어 번 수업을 여는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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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시사IN〉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편집국장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하려는 편집국장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학부모 ‘단톡방’에서 일대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한 공공 교육기관에서 신청 학생을 모아 한 달에 두어 번 수업을 여는 프로그램이었다. 수업 시간이 3시간을 넘어가니 ‘중간에 배고프다’는 아이들 호소가 이어졌다. 학부모 중 누군가 ‘단체 간식’ 아이디어를 냈다. 학부모 한 사람씩 당번을 정해 샌드위치, 핫도그, 소포장 떡, 컵과일 등 5000원 미만의 간단한 단체 간식을 준비해 돌리고 N분의 1로 비용을 정산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문제는 선생님 간식이었다. “아이들끼리만 먹고 있기도 그런데… 선생님들께도 똑같은 간식과 커피 정도 챙겨드리는 게 어떨까요?”라는 제안이 나왔다. 의견은 엇갈렸다. “당연히 그래야지 않을까요?(학부모 A)” “그런데 학교에서는 수시로 ‘교사에게 캔 커피 한 개도 절대 안 된다’고 청탁금지법 안내를 하던데요(학부모 B).” “에이, 이 정도 갖고 청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학부모 C)”….

그때 처음으로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전문을 찾아 꼼꼼히 읽어봤다. ‘반부패 총괄기관’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홈페이지도 샅샅이 뒤져봤다. ‘스승의 날 청탁금지법’ ‘신학기 학교에서 알아야 할 청탁금지법’ ‘공공기관에서 알아야 할 청탁금지법 사례’ 등 어디까지가 청탁이고 아닌지가 Q&A, 카드뉴스, 웹배너, 영상 등으로 친절하게 설명돼 있었다.

자료들을 종합해본 결과 결론은 확실하게 정리됐다. ‘공공기관에 소속된 선생님(강사)들은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 들어간다. 이들은 직무(학생 교육 및 평가)와 관련해서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커피 한 잔에 준하는 물품이나 돈도 받아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길 시 받은 사람과 준 사람 모두 처벌(징역, 벌금, 과태료 등)받을 수 있다. 고로, 나는 선생님에게 간식을 드릴 수 없겠구나.’ 게다가 스스로가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등(언론인)’에 속하는 처지이니 더욱 신중해야 했다.

결국 나를 포함한 일부 학부모들은 단체 간식 당번에서 빠졌다. 선생님 간식 값을 내기가 곤란해서 할 수 없이 내 아이의 간식까지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나같은 필부(匹婦)조차도 누군가와 작은 것이라도 뭘 주고받는 일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고, 이게 대한민국의 상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6월11일 서울 종로구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 열린 시민단체 기자회견. ⓒ연합뉴스

최근 권익위의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종결 처리 결정’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대통령의 배우자가 300만원짜리 명품 가방을 받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나는 왜 1년에 한두 번 3000~5000원짜리 간식이 ‘청탁’이 될까 봐 그토록 전전긍긍했을까. 받은 사람이 공직자 ‘배우자’라서 괜찮고, 준 사람이 재미교포(외국 국적)이므로 선물은 뇌물이 아니라 국가 기록물에 해당한다는 권익위의 해설에는 헛웃음이 났다.

오호라, 그렇다면 나에게 누군가 찾아와 비싼 선물을 주며 자신에게 유리한 기사를 넣어달라거나 불리한 기사를 빼달라고 하는데 그가 재미교포나 재일동포면 거리낌 없이 받아도 되나? 혹은 내 배우자에게 누가 명품 선물을 안겨주며 ‘언제 한번 변 국장님과 맥주 한잔 시원하게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나?

이렇게 자꾸 불순한 상상이 고개를 든다. 자그마한 언론사 편집국장까지 오염돼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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