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하는 언니들’ 보러 오세요 [사람IN]

임지영 기자 2024. 6. 25.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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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왼쪽부터) 최지영 에디토리얼 대표(52), 이현화 혜화1117 대표(54), 박희선 가지 대표(53), 박숙희 메멘토 대표(52),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52)가 '출판하는 언니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시사IN 조남진

오후 6시가 되자 최지영 대표의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퇴근 시간을 알리는 소리다. 알람을 설정해두지 않으면 근무가 저녁까지 이어지기 일쑤다. 혼자 일하기 때문에 퇴근 시간도 스스로 감지해야 한다. 6월17일, 평소 같으면 최 대표가 퇴근할 시각에 출판사 대표 다섯 명이 〈시사IN〉 편집국에 모였다. 최지영 에디토리얼 대표(52), 이현화 혜화1117 대표(54), 박희선 가지 대표(53), 박숙희 메멘토 대표(52),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52·사진 왼쪽부터)는 모두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혼자 일하는 데 익숙한 이들이 최근 자주 ‘함께’하고 있다. ‘출판하는 언니들’ 때문이다.

다섯 명의 출판사 대표 경력만 합해도 51년이고 만든 책은 216권이다. 1인 출판사 모임에서 인연이 시작되어 소모임 형태로 한 달에 한 번 만나 남산, 한양도성 등 서울 곳곳을 4~5시간씩 걸었다. ‘건강한 몸으로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심정이었다. 모두 여성이고, 1970년대생에 1990년대 초반 출판계에 입문했으며, 2010년대에 출판사를 차렸다. 생태, 인문사회, 문화예술, SF 등 다루는 영역이 조금씩 다르지만 다섯 명이 생각보다 잘 맞았다. “각자는 만만치 않은데 한 바구니에 담기면서 잘 어우러졌다(이현화 대표).” 비슷한 구석이 많은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해 뭔가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서울국제도서전이 임박하고 있었다.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어 부스를 같이 차리기로 했다. 이름하여 ‘출판하는 언니들’이다.

출판계는 늘 어렵다고 한다. ‘출판하는 언니들’도 재쇄를 찍을 수 있을지 밤잠을 설치고, SNS도 열심히 하지만 팔로어 수는 잘 늘지 않는다. 색인 작업만 안 해도 살 것 같고, 보도자료 쓰는 게 제일 싫어도 그 어렵다는 업계에서 생존 자체로 존재를 증명해왔다. 이현화 대표는 숫자를 기준으로 성공 여부를 판단하고 그걸 이루지 못하면 실패했다고 단정하는 풍토가 마땅치 않았다. “출판계 내에서도 그런 인식에 쉽게 동의하는 분위기가 있다. 출판이 사양산업이고 망해간다고 하지만 나는 안 망했고 여전히 책 만드는 게 재미있고 즐겁다. 몇만 부 못 팔았다고 해서 마이너하고 실패한 사람처럼 규정하는 분위기에 불만이 있었는데 여기 대표들을 만나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

오랜 시간 출판 일을 계속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박희선 대표는 “나답게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온 과정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처음부터 어떤 책을 만들겠다고 정한 건 아니지만 창업 후 10년이 지나니 색깔이 생겼고 돌아보니 책과 함께 성숙해온 시간이었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오래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본인과 맞지 않는 책을 만들다 무작정 퇴사를 ‘저지른’ 전은정 대표는 ‘맨땅에 헤딩’하느라 초창기 5년은 무지 헤맸다. “지금 하는 일이 나를 먹여 살리면서도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고 누군가한테는 필요한 책이었으면 좋겠다.”

출판사 대표 다섯 명이 직접 쓴 글을 모은 소책자.

최 대표에게 책 만드는 작업은 매번 새로운 일이다. 공정 자체는 매뉴얼화할 수 있지만 비슷한 분야라도 저자와 내용이 다르고 책을 둘러싼 인적 관계도 달라진다. 늘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긴장감과 그걸 끝냈을 때의 기쁨이 함께 온다. 출판계에 입문한 지 28년, 메멘토를 차린 지 11년 된 박숙희 대표는 1인 출판사를 목표로 했던 건 아니다. 직원을 늘릴까도 생각했지만 매출 압박에서 자유롭다는 장점에 더 끌렸다. 책방을 하려다 출판사를 차린 이현화 대표는 “세상일이 우리 뜻대로 잘 안되는데 책은 된다. 내 마음대로 하니까 너무 좋다”라고 말했다.

출판하는 언니들은 서울국제도서전(6월26~30일) ‘I 18번’ 부스에 상주한다. 목표 매출액은 출판사당 500만원. 세상이 ‘언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그 잣대가 되는 목표치다. 책을 사면 다섯 명의 글이 실린 소책자도 받아 볼 수 있다. 올해 도서전의 스타는 ‘우리’여야 한다고 멤버들에게 강조하기도 한 이현화 대표는 사진을 찍는 동안 “(〈시사IN〉) 표지에 우리가 나오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대체로 저자의 뒤에서 일해온 편집자들이 나서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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