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SPC 노조들 싸움? 알고보니 ‘그 노조’ 정체는…

신다은 기자 2024. 6. 25.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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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가짜노조’ 적발돼도 n번째 어용노조 또 만들어… 사쪽에 지나치게 유리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2016년 6월 전국금속노동조합 유성기업지회 노동자들이 회사의 노조파괴로 고통받다 목숨을 끊은 한광호 조합원의 죽음을 추모하며 ‘꽃상여’ 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빵, 놀이공원, 골판지. 공통점은? 이를 주력상품 삼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노동자 조직을 철저히 파괴했다는 점이다.

수많은 노조파괴가 있었다. 2011년 현대차 부품사 유성기업을 시작으로 삼성에버랜드, 세브란스병원, 테스트테크, 대양판지가 있었다. 2021년 프랜차이즈 빵집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파리크라상이 뒤를 이었다. 노조에 가입한 이들에게 탈퇴를 종용하고 승진 차별로 괴롭혔다. 사쪽에 협조적인 노조를 따로 세워 교섭권을 그쪽에만 몰아줬다. 노동자들이 주도해 만든 노조는 조금씩 쪼그라들었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체다. 사용자가 노조 가입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지배력을 행사하면 최대 2년의 징역형을 받는다. 그런데도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현행 제도와 수사기관이 피해자 편이 아니었다.

교섭창구 단일화의 ‘파괴력’

한국에선 한 기업에 노조가 2개 이상 있으면 조합원이 더 많은 노조만이 교섭대표노조가 되어 단체교섭권을 독점한다. 소수 노조는 교섭에 참여할 수 없고 사후에 대표노조의 교섭 결과만 열람할 뿐이다. 우월적 지위에 선 회사가 대표노조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자생 노조를 고사시키기 쉬운 구조다.

2011년 삼성물산이 금속노조를 그렇게 파괴했다. 에버랜드를 운영하는 삼성물산은 금속노조 설립 움직임을 알아챈 즉시 사쪽노조를 대항마로 세웠다. 그러곤 12일 만에 비밀리에 단체협상을 체결했다. 금속노조 설립 전 미리 사쪽노조와 단협을 맺어버리면, 해당 단협의 유효기간(2년) 동안 금속노조와 따로 교섭을 안 해도 된다. 동시에 금속노조를 세우려던 이들은 꼬투리를 잡아 해고했다. 조합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해고 투쟁하는 동안 노조 활동은 사실상 중단됐다. 그러자 사쪽노조도 휴면 상태로 전환했다. 노조파괴라는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노조파괴 11년 만인 2022년 5월, 대법원이 사쪽노조 설립 무효 판결을 내렸다. 사쪽노조는 자진해산했다. 강경훈 전 삼성전자 부사장 등 부당노동행위 핵심 관계자들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교섭 못한 지난 세월까지 보상받긴 어렵다. 2023년 6월 서울고등법원이 사쪽노조로 방해받은 지난 10년에 대해 교섭을 다시 하라고 판결했지만, 삼성물산은 불복해 상고했다.

삼성 그룹의 에버랜드 노조 파괴 사건 진상이 담긴 ‘S그룹 노사전략’ 문건. 한겨레 자료

갈등의 불씨도 남아 있다. 최근 삼성물산 건설부문엔 기업노조가 새로 들어섰다. 조합원 수가 크게 늘어 교섭대표노조가 됐다. 에버랜드를 운영하는 리조트부문과 교섭 단위가 분리돼 있긴 하지만, 소수 노조로서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조장희 금속노조 삼성지회장은 아무리 형사처벌 됐어도 피해 복구는 요원하다고 말한다. “회사가 노조를 안 좋게 소문내고 해고·징계한 건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어요. 요즘도 직원 중에 노조 왜 하느냐, 회사에 반기 드는 일은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어요. 사쪽이 형성한 분위기가 잔재처럼 남아 있는 거죠.”

만약 민주노조가 굳건히 과반 노조 자리를 지킨다면 어떨까? 사쪽 회유에도 조합원들이 탈퇴하지 않고 버틴다면? 제도상 사쪽은 또 다른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두 노조 중 교섭대표노조를 따로 정하지 않고 모두와 개별교섭하는 것이다. 이는 소수 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있는 조항이지만, 현실에선 사쪽이 특정 노조를 은밀히 밀어주는 제도적 근거가 된다. 사쪽이 형식적으론 둘 다와 교섭하되 실질적으론 사쪽노조하고만 교섭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뒤 사쪽노조와 교섭한 결과(사실상 사쪽이 정한 임금인상률 등)를 받아들이라고 민주노조를 압박하는 방법을 쓸 수 있다.

이를 극단적으로 활용한 사례가 골판지 제조사 대양판지다. 대양판지는 2020년 3월 금속노조 대양판지지회가 들어서자 가짜 노조 2개를 잇달아 설립했다. 그 사실이 적발돼 노조 설립이 취소되고 임직원 6명이 유죄 판결도 받았다. 그러나 가짜 노조 설립을 주도했던 이들은 2022년 4월 또 다른 사쪽노조를 만들었다.

어용노조 무효로 만들어도 소용없어

회사는 이번에도 사쪽노조를 적극 밀어줬다. 민주노조 조합원이 더 많은데도 사쪽노조와 교섭하길 고집했다. 형식적으론 두 노조와 각각 개별교섭하는 모양새였지만, 실질적으론 사쪽노조하고만 교섭했다. 민주노조엔 사후통보만 하거나 교섭에 제대로 임하지 않았다. 민주노조가 협상을 주도할 수 없어 고전하는 사이, 사쪽노조 조합원이 빠르게 늘었다. 급기야 2024년부턴 민주노조보다 조합원이 많아져 사쪽노조가 또다시 교섭대표노조가 됐다. 민주노조는 또다시 교섭권 없는 소수노조로 밀려나는 고통을 겪었다.

대표적 노조파괴 사례인 유성기업도 비슷하다. 2017년 노조파괴로 유시영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가짜 노조도 설립이 무효화됐다. 그러나 사쪽노조는 또다시 만들어졌고 협상 주도권을 쥐었다. 민주노조가 더 많은 조합원을 가졌음에도 회사가 개별교섭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이 제도의 최대 맹점은 회사와 교섭대표노조의 유착이다. 직원보다는 사쪽 이해관계를 도모하는 관계로 전락하기 쉽다. “어용노조는 회사가 정해주는 임금인상률이며 직원에게 불리한 징계조항까지 전부 그대로 수용한다. 그러면 회사는 그걸 들고 우리(민주노조)한테 와서 ‘너네도 이대로 받으라’는 식이다. 우리가 반발하고 파업해야 겨우 원상 복구된다. 그마저도 파업하고 있으면 어용노조가 대신 들어가서 대체근무하고 잔업수당을 받아간다. 직원을 위해 싸우는 노조만 피해 보는 구조다.” 엄기한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이 말했다.

노란봉투법 실효성 위해서도 필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파괴력은 꾸준히 지적돼왔다. 어느 노조랑 교섭할지 사쪽더러 고르라고 해 노조 탄압 여지를 주고, 노조끼리도 조합원 빼가기를 해야 하는 등 단결권 침해 소지가 커서다. 2011년 제도 설립 때부터 사용자 교섭 편의를 봐주려 만든 제도였고 실제론 그 이상의 부작용을 낳았다. 2012년 한국노총이 먼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폐기를 요청했으나 헌법재판소는 합헌으로 판단했다. 민주노총도 2020년 같은 취지의 위헌 제청을 했으나 아직 헌재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

제21대 국회 땐 이 제도를 없애자는 취지의 법도 발의됐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폐지하자는 강은미 정의당 의원안(2020년 9월29일 발의)과 교섭 주체를 확대하자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안(2020년 10월19일 발의)이다.

당시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는 노란봉투법 논의가 커지며 이 조항은 뒷순위로 밀렸다. 그러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노란봉투법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데도 중요하다. 현행 제도대로라면 단체교섭 범위가 원청-하청으로 넓어지더라도 실제 교섭할 노조를 하나로 정해 오라고 사쪽이 요구할 수 있어서다. 노란봉투법은 2024년 6월18일 제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다.

노조파괴 유죄 받고도 버젓이 남은 업체

사쪽이 제도에 기대 신속하게 노조를 파괴하는 것과 달리, 이를 바로잡는 사법적 조처는 매우 더디다.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 변순애씨는 2016년 처음으로 노조(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세브란스분회)를 설립했다. 락스 냄새 가득한 근무환경과 부당한 하청 고용을 바꾸려 했다. 설립 초기 조합원이 140명에 달했으나, 원·하청 사쪽의 집요한 노조파괴로 현재 조합원이 4명만 남았다.

세브란스분회가 당했던 피해와 수사 지연은 파리바게뜨지회와 똑 닮았다. 세브란스병원과 협력업체 태가비엠(BM)은 조직적으로 민주노총 노조를 파괴했다. 조합원에게 탈퇴를 종용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험한 일을 맡겼다 . 분회가 노조파괴 증거를 모아 2016년 10월 노동부에 고소했으나 노동부와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강제수사가 된 건 재고소 뒤 1년이 지난 2018년 5월. 병원 압수수색으로 노조파괴 문건이 대거 확인됐다. 2024년 2월 병원 사무국장 등이 1심에서 벌금형을 받았다.

사법 처리까지 8년. 이 기간 교섭권을 잃고 노조는 사실상 고사했다. 반면 노조파괴에 가담한 사쪽노조는 교섭대표노조가 됐고 세브란스병원은 여전히 협력업체 태가비엠과 계약관계다. “우리가 그렇게 싸운 게 태가비엠이 입찰이라도 불리하게 받으라고 그런 거였거든요. 근데 유죄 판결 받아도 안 바뀌더라고요. 좀 허무했죠.” 변 분회장이 말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세브란스병원분회 관계자들과 노동자연대 연세대모임 소속 대학생들이 2024년 6월1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소용역업체 태가비엠 퇴출을 호소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에스피씨(SPC) 노조파괴 사건도 마찬가지다. 파리바게뜨지회는 2021년 5월 증거를 모아 피비(PB)파트너즈를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은 수사를 더 확대하지 않고 말단 실무자 9명만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이 사건을 돌려보내 윗선 수사를 지시했더니 혐의 대상자가 28명으로 대폭 늘었다. 고소 뒤 재판 열리는 데만 4년. 그사이 조합원은 3분의 1로 줄었다.

“부당노동행위는 은밀하게 이뤄지고 증거 확보가 까다로워요. 한번 발생하면 피해 복구도 거의 불가능하고요. 그만큼 신속한 강제수사로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데 여태껏 제대로 된 적이 없어요. 압수수색 영장 한 번 쳐본 적 없는 수사관이 대부분이고 부당노동행위를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인력도 없으니까요.” 세브란스분회 노조파괴를 지켜본 이류한승 조직국장의 말이다.

그는 수사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세브란스분회도, 파리바게뜨지회도 노조를 지킬 수 있었을 거라 말한다. “세브란스분회도 첫 7개월간 조합원들이 잘 버텨줬어요. 그런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조금씩 조금씩 노조가 깨지다가 교섭권을 뺏기면서 확 무너졌죠.”

“제도 폐지하고 노동위 조사 신속하게”

박주영 노무사는 노조파괴를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폐지와 신속한 부당노동행위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는 설계 구조상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하도록 마음먹게 유인하는 제도다. (사쪽노조가) 조합원을 한 명만 더 많이 확보하면 특정 노조와의 교섭은 물론 쟁의까지 막을 수 있다. 이런 제도는 폐지하는 게 맞다. 또한 부당노동행위를 판단할 때도 구제기구인 노동위원회가 마치 사법기관처럼 고의 여부를 따져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상황이다. 불이익을 신속하게 막으려면 고의 여부보단 파급력을 중점적으로 조사하고 필요하면 긴급 중지 명령 등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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