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임대주택은 ‘전세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올앳부동산]

심윤지 기자 2024. 6.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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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테이·공공지원 민간임대·기업형 장기임대 비교

“전세는 우리나라에서 수명이 다한 제도”(5월13일), “전세는 서서히 없어져야 하는 제도”(6월9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 후 줄곧 ‘전세 종말론’을 입에 올리고 있다. 국내 전세시장 보증금 규모가 1000조원을 넘어섰다는 추정이 나오는 현실에선 다소 급진적인 주장처럼 들린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전세 비중이 꾸준히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국토부의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임차 가구 중 전세 비중은 2008년 55%에서 2022년 39.9%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장관이 ‘전세의 종말’을 주장하는 근거는 이렇다. 일단 전셋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과거에는 전세가 내 집 마련의 종잣돈을 모을 수 있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했다지만, 이제는 은행 대출 없이는 수 억원의 전셋값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로 인해 “월세를 은행에 내는 것과 다름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는데, 주택 하락기 역전세와 보증금 미반환 위험은 오히려 커졌다는 게 박 장관의 생각이다.

박 장관은 이러한 전세 제도가 ‘기업형 장기 임대’로 대체돼야 한다고 본다. 외국처럼 큰 기업이 운영하는 임대주택을 다양한 가격대로 공급해 세입자들의 주거 선택권을 넓히겠다는 취지다. 다만 이러한 박 장관의 주장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기업형 임대가 사업성을 확보하려면 정부 지원이 필수인데, 그러자니 고가 임대료와 건설사 배불리기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뉴스테이의 실패, ‘인센티브’과 ‘특혜’ 사이

기업형 장기 임대 논의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5년에도 중산층에게 분양 아파트와 같은 품질의 임대주택을 리츠 방식으로 공급하는 이른바 ‘뉴스테이’ 사업이 추진된 바 있다. 당시 보도자료는 “고액 전세에서 거주하는 중산층을 보증부 월세 형태의 기업형 임대로 이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정책 목표로 밝혔다.

박근혜 정부는 2년마다 퇴거 위기에 놓이는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최대 8년간의 의무 임대 기간을 두기로 했다. 대신 사업자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의무 임대 기간과 연 5% 임대료 상승제한을 제외한 나머지 규제를 모두 풀었다. 초기 임대료를 주변 시세보다 낮게 유지해야 한다는 제한을 두지 않았고, 임대주택을 담보로 사업자금 대출을 받는 것도 허용했다.

그러자 곧바로 ‘고가 임대료’ 논란이 제기됐다. 당시 서울 용산구의 한 뉴스테이 주택은 전용면적 84㎡이 보증금 7000만원에 월세 186만원이 책정돼 논란이 됐다. 이는 당시 중소득층인 소득분위 5~8분위 월 소득(292만원)의 63%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민간 건설사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저리대출과 융자·출자 등 각종 지원을 제공하면서, 임대료 등 제한 규정을 두지 않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야당을 중심으로 나왔다.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뉴스테이의 이름을 ‘공공지원 민간임대’로 바꾸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조치를 잇따라 내놨다. 임차인 조건을 두지 않았던 뉴스테이와 달리, 공공지원 민간임대는 무주택자에게 우선 공급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초기임대료를 시세의 90~95%로 제한하는 규정을 되살렸고, 임대의무기간도 8년에서 10년으로 늘렸다. 건설사 입장에선 사업성이 악화될 수 밖에 없는 조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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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형 장기임대, 임대주택 낮은 사업성 극복할까

공공지원 민간임대는 이후 시작된 부동산 호황을 타고 빠르게 인기가 식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굳이 분양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임대를 공급할 유인이 크지 않았던 탓이다. HUG의 연도별 공공지원 민간임대리츠 출자승인실적은 2019년 34개에서 2020년 15개, 2021년 10개, 2022년 8개로 꾸준히 줄었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분양시장이 침체기에 들어서면서다. 미분양 주택을 공공지원 민간임대 리츠가 매입, 임대로 전환해 손해를 만회할 수 있게 해달라는 수요가 업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SK D&D(에피소드), KT(리마크빌) 등 자발적으로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들도 늘었다. 주로 서울 알짜배기 땅을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이 땅을 매각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현금흐름을 얻으려는 동기였다.

박 장관은 임대료 규제만 대폭 해제한다면 이러한 기업형 장기임대주택도 시장 원리에 따라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기업형 장기임대주택의 임대 의무 기간도 10년(공공지원 민간임대)에서 20년으로 늘려 잡았다. 8년 임대 후 분양 전환을 통해 수익을 얻는 뉴스테이와 달리, 월세 수익으로만 운영되는 사업 모델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일반적인 임대주택의 사업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데 있다. 김형범 대한주택건설협회 정책관리본부장은 “미분양이 워낙 심해 공공지원 민간임대 수요가 일시적으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임대주택 사업은 업계에서 선호하는 사업 형태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정부가 기대하는 공모형 리츠가 자리를 잡으려면 3~4% 이상의 수익률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최소한의 수익이 보장되기 위해 취득세(13%) 전액 감면, 초기임대료 규제 완화 같은 ‘파격적인 수준의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임대료를 시세대로 받게 해준다면 들어가는 기업이 있을 수 있다”며 “은행 대출금리가 5%대인데 HUG 대출을 받으면 2%대 저리대출이 가능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3%의 안전마진이 생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뉴스테이 때 불거졌던 ‘특혜 논란’이 되풀이될 소지가 크다. 임대주택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자니 정부 지원이 불가피하고, 정부 지원이 들어가자니 특혜 논란을 피할 수 없는 딜레마다.

고가 임대료, 기업형 장기임대가 넘어야 할 벽

세입자 단체들의 부정적인 반응 역시 넘어야 할 산이다. 기업형 장기임대가 도입된다면 전세에서 월세 중심의 임대차시장 재편이 불가피한데, 이는 세입자들의 주거비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용찬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소 연구원은 “전세에서 월세 중심 시장으로 재편되는 순간 월세가 엄청나게 오르는 시장 재구조화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그러한 주거비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박 장관은 기업형 임대주택이 임차인들의 주거 선택권을 넓힐 것이라 주장하지만, 막상 고가의 월세를 부담할 수 있는 청년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SK D&D 에피소드, KT 리마크빌을 비롯해 현재 운영 중인 기업형 장기임대주택만 봐도 사업성 극대화를 위해 고급화 전략을 취하면서 주변 시세보다 높은 임대료를 받는 곳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청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전세대출의 소득 조건을 고려하면 전세사기는 돈이 많은 사람이 당하는 사기가 아니다”라며 “장기적으로 저렴한 공공임대 매입형을 늘려야지, 기업에 돈을 지원하면서 임대주택을 늘리겠다는 것은 임대료 상승만 부추길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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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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