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조절 넘어 만능치료제로....韓 제약사 비만약에 빠졌다

홍효진 기자, 구단비 기자, 박미주 기자 2024. 6. 25.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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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수면장애도 잡는 'GLP-1'…비만치료제, '만병통치약' 될까
GLP-1 수용체 작용제(RA) 글로벌 시장 규모. /사진=윤선정 디자인기자

GLP(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약물을 중심으로 한 비만약 시장이 이제 치매·수면장애·MASH(대사이상 지방간염) 등으로 치료 범위를 넓히고 있다. 비만·당뇨로 한정하던 치료 범위가 다양한 적응증으로 활용 영역을 확대하면서 '만병통치약'으로 거듭나려는 모양새다. 이런 추세에서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가 비만약 시장을 선도하는 가운데, 국내 제약사들의 '뒤늦은 성과'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GLP-1이 꿈꾸는 '만병통치약'의 세계=24일 업계에 따르면 스웨덴 카롤린스카대학은 최근 의학저널 '랜싯'을 통해 GLP-1 RA(수용체작용제)가 당뇨병을 앓는 노인의 치매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는 스웨덴의 65세 이상 제2형당뇨병(T2DM) 환자 약 8만8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결과 GLP-1 약물을 투여한 환자 1만2351명 중 278명만이 치매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DPP-4 억제제를 사용한 환자 4만3850명 중 1849명, 설폰요소제를 투여한 3만2216명 중에선 2480명이 치매에 걸렸다. 연구팀은 "우리 연구는 GLP-1 작용제를 T2DM을 앓는 노인에게 투여했을 때 DPP-4 억제제 및 설폰요소제 대비 치매위험을 낮출 수 있단 것을 뜻한다"며 "다만 추가 임상은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 관련 데이터가 수집된 기간에 스웨덴에서 가장 많이 처방된 GLP-1 RA는 노보노디스크의 '리라글루타이드'(제품명 '삭센다')로 알려졌다.

GLP-1은 인체 내 혈당을 조절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으로 비만·당뇨병 치료제로 주로 쓰인다. 최근 임상에서 MASH, 퇴행성 뇌질환, 수면장애 등 개선에도 효과가 입증되면서 약물활용 범위는 확장되고 있다. 일라이릴리는 비만약 '젭바운드'(성분명 '티제퍼타이드')를 폐쇄성수면무호흡증(OSA) 치료제로 허가받을 수 있도록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OSA는 숙면 도중 호흡이 멈춰 수면을 방해하는 상태다.

앞서 이달 초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는 T2DM 및 만성 신장질환 환자가 노보노디스크의 '오젬픽'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의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약할 경우 위약 대비 신장병·심혈관 질환 등 합병증 발병위험이 낮아진다는 연구결과가 공개되기도 했다.

한미약품 비만신약 후보물질 'HM15275' 전임상 연구결과 체중감소 효과/그래픽=윤선정

◇타사 대비 '월등한 효과'…한미약품의 '반격'=한미약품의 차기 비만 신약 후보물질 'HM15275'가 비만약 열풍을 일으킨 위고비 대비 뛰어난 체중감량 효과를 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미약품은 미국에서 해당 물질 관련 임상1상 시험에 돌입했다.
비만약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한미약품의 차기 비만약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4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이달 중순 미국에서 차세대 비만치료 삼중작용제인 HM15275의 임상1상 시험을 시작했다. HM15275는 GLP-1과 GIP(위억제펩타이드) GCG(글루카곤) 등 각각의 수용체작용을 최적화해 비만치료에 특화돼 있고 부수적으로 다양한 대사성 질환에 효력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GIP는 GLP-1 RA의 약리학적 이점을 향상하는 한편 메스꺼움과 구토, 설사 등 이 작용제의 일반적인 위장관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다. 글루카곤은 포만감 조절과 함께 에너지 소비와 지질대사 조절에도 관여한다. 이 3가지 약리작용을 적절히 활용하면 비만뿐 아니라 T2DM과 심혈관질환에 대한 치료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쥐를 대상으로 3주간 투여했을 때 체중이 40% 가까이 감량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는 기존 비만약 효과를 뛰어넘는 수치다. 한미약품은 23일(현지시간) 미국에서 개최된 미국당뇨병학회(ADA 2024)에서 이같은 내용의 전임상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식이유도 비만 쥐(DIO MICE)에게 HM15275를 단회 피하투여했더니 3주 뒤 체중이 39.9% 감소했다. 같은 방식의 연구에서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가 15.0%,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가 25.3%의 체중감량 효과를 보인 것 대비 상당한 성과다.

한미약품은 학회에서 HM15275가 쥐 모델에서 운동불내성, 심장비대·섬유증을 크게 개선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했다. GLP-1, GIP 이중작용제 '티르제파타이드' 대비 고혈압 매개 심장손상에서 강력한 심장보호 효과가 있고 신장손상과 섬유화를 더 효과적으로 개선했다는 결과도 공개했다.

한미약품의 또다른 장기지속형 GLP-1 제제의 비만 신약 후보물질인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성과도 기대된다. 독자 플랫폼 기술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자체개발 신약으로 임상3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한미약품은 2026년 상반기까지 임상시험을 하고 앞으로 3년 내 국내에서 상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천당제약 주가 추이/그래픽=최헌정


◇삼천당제약 며칠새 시총 1조원 급등하기도= 삼천당제약이 지난 17일 먹는 비만약 개발을 위해 자사주를 팔아 6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확보하겠다고 공시한 지 나흘 만에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2조8000억원에서 3조9000억원으로 1조원 이상 급등했다. 최근 삼천당제약의 주가 급등은 이 회사가 자사주를 팔아 자금 마련에 나선 것을 시장에선 경구용 비만약 개발이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삼천당제약은 지난해 경구용 비만치료제 개발에 대한 관심이 커진 이후 1년 만에 주가가 두배로 오르는 급등세를 이어왔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기대감이 다소 과하게 반영된 것으로도 평가하고 있어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천당제약의 종가는 전일 대비 8.71% 하락한 14만4700원을 기록했다. 지난 18일, 19일 종가가 각각 전일 대비 16%, 15% 뛰었고 지난 21일 52주 최고가인 16만7000원을 기록한 후 조정되는 모양새다. 주가 상승으로 코스닥 시장 제약 부문 시총 10위권 밖이었던 삼천당제약은 8위로 진입했다. 지난해 7월 4만9750원과 비교하면 약 1년 만에 주가가 235% 올랐다.

전문의약품을 주로 생산하면서 일반인에겐 알려지지 않은 중견 제약사에 돈이 몰리게 된 배경엔 '비만약'이 있다. 삼천당제약은 '위고비', '오젬픽' 등 주요 비만약과 동일한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을 작용기전으로 한 개량신약 SCD0506의 임상 1상을 준비하고 있다. 2018년 9월 당뇨병을 적응증으로 연구개발에 들어가 비임상 단계를 거쳤다.

주사제 형태의 비만약의 경우 일정기간 마다 주사를 맞아야하는데 이를 먹는 약으로 바꿀 경우 복용 편의성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은 연간 50조원 정도로 추정되는데 경구용 제품이 나올 경우 상업적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높단 평가다.

하지만 삼천당제약의 비만약은 비임상과 약동학적 시험이 종료된 후 임상을 위한 임상시험심사위원회 심사단계에 있어 아직 개발 성공까진 가야 할 길이 멀다. 익명을 요구한 애널리스트는 "투자하겠다는 공시는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없다"며 "아일리아와 비만약에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임상 결과나 상업화 계획, 타 제약사와의 계약 등) 결정된 것은 없고 기대감으로 주가가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삼천당제약은 자사주 50만주를 매각, 609억원을 확보하기로 했는데 이는 삼천당제약 지난해 매출 1927억원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회사 매출에 비해 투자 규모가 과도하단 우려다. 현재 이 회사의 현금성자산은 489억원 정도에 불과 신약개발까지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적잖은 상황이다.

게다가 비만약 외에도 삼천당제약이 투자하겠다고 밝힌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애플리버셉트)'는 원 개발사인 리제네론은 바이오시밀러 공략을 막기 위한 여러 특허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상업화까지 난항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삼천당제약 측은 "(아일리아 시장 축소 우려에 대해) 추후 설명하겠다"며 "자사주 처분은 기존에 밝힌 것과 같이 아일리아, 비만약 임상과 생산설비 투자 목적"이라고 답했다.

홍효진 기자 hyost@mt.co.kr 구단비 기자 kdb@mt.co.kr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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