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전공의 복귀시켜야, 놔두면 후유증 5년 간다”
“전공의 복귀를 끌어낼 시한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어 내년에 신규 전문의가 배출 안 되면 앞으로 4~5년간 중증 필수 의료 공백 사태가 이어질 것입니다.”
요즘 병원계와 의과대학 임상 교수진들은 전공의 복귀가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에 그야말로 의료 파국이 일어난다고 입을 모은다. 신규 전문의가 없어서 중증 환자 진료에 연차적으로 차질을 빚게 되기 때문이다. 전공의는 의사가 된 후 내과, 신경외과 등 특정 과목 전문의가 되기 위해 해당 과목 병원에서 3~4년 복무하는 의사를 말한다.
전국 220여 개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 있던 전공의 9600여 명은 지난 2월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발표하자마자 일시에 병원을 떠났다. 이후 정부·병원의 거듭되는 복귀 요구에도 꿈쩍도 안 하고 있다. 현재 전공의 복귀율은 7.5% 정도다. 전공의 공백 사태는 이제 4개월을 훌쩍 넘었다.
최근 이탈 전공의들을 접촉해 복귀 의사를 타진한 S대학병원 A원장은 “아예 1년을 쉬겠다고 작정한 전공의들이 대다수”라며 “앞으로 6개월 정도 병원 근무만 하면, 내년 초에 전문의가 되는 상당수 3~4년 차 전공의들은 병원에 복귀하고 싶어 하나, 전공의 사회에서 ‘배신자’ 취급받는 게 싫어 복귀를 주저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과, 내과 등 비인기 필수 의료과 전공의들은 이참에 다른 과목으로 옮겨갈 생각을 많이 하고 있더라”고 A원장은 전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내년에는 매년 나오던 신규 전문의의 90% 이상이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대학병원서 허리 역할을 하는 전임의들도 없게 된다. 요즘 대학병원 진료는 감염내과, 심장내과, 대장항문외과 등 세부 전문의 위주로 이뤄지는데, 앞으로는 세부 전문의 배출도 없게 된다. 필수 의료 분야 중추 역할을 하는 의사들이 줄면서, 중증 환자 진료에 차질이 빚어진다.
군의관 중 다수를 차지하는 전문의 출신의 군의관도 사라진다. 군의료진 부족은 물론 군병원 진료와 수술 수준도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 복무 대신 의료 취약 지역에 나가는 공중보건의에서도 전문의를 볼 수 없게 된다.
전공의 복귀가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수업 거부 중인 전국 의대생 복귀도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전원 유급되면 내년에는 현 의예과 1학년(약 3000명)과 2025년 신입생(약 4500명)이 합쳐져 7500명이 같이 의대를 다니는 초유의 현상도 벌어진다. 이들은 의대 졸업, 의사 시험, 전공의 진급 등을 같이 겪어야 하기에 수업과 실습 대란, 전공의 취업 대란도 예상된다.
의대에 들어가 전문의로 활동하려면 통상 10~14년 걸린다. 의료계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에 영향을 덜 받는 고참 전공의들에게 어떻게든 복귀 명분을 주고 전문의 배출이 끊이질 않게 해서 의료 파국만은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전공의 단체는 병원을 이탈하며 정부에 7대 요구안을 냈다. 정부는 이 중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 말고는 대다수 추진 중이거나 전향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그래픽 참조>. 전공의 단체는 ‘과학적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를 요구했는데, 의료개혁 특위에서 같은 취지의 전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전공의 단체는 불가항력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를 주장했는데, 현재 정부는 의사 면책 조항이 들어간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을 마련해 의견 수렴 중이다. 선진국처럼 전공의 교육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도 구체적으로 논의 중이다.
의료개혁 특위 위원으로 활동하는 서울 소재 대학 예방의학 B교수는 “내년도 정원은 이제 돌이킬 수 없으나,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위원회를 통해 2026년도 의대 정원은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가 이런 논의에 전공의들을 참여시키고, 필수 의료 분야에 파격적인 지원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재원 마련 근거까지 보여준다면 상당수 전공의들의 개별적인 복귀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행 전공의 수련 규정에 따르면, 전공의 병원 이탈이 3개월을 넘으면 매년 1월에 있는 전문의 시험 자체를 볼 수 없다. 이에 의료계에서는 전공의 복귀 후 수련 요건에 유연한 조정과 함께 전문의 시험 실시를 다변화해 신규 전문의 공백을 최대한 줄여 의료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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